김완서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공부를 썩 잘한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는 더욱 못했다. 쌍둥이 동생은 시험을 보면 틀린 것이 기껏해야 2개 정도였지만 난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쌍둥이 동생은 학기말에 통지표를 받으면 두 개만 ‘우’이고 모두 ‘수’였다. 반면에 난 두 개 정도만 ‘수’이고 ‘미’였다.월말시험이 있는 날이면 늘 동생을 기다렸다. 내 성적은
김완서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위원)2009년 11월 28일.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날이다. 난 진작부터 외국에서 발매된 아이폰, 블랙베리 등의 스마트폰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출시일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터였다.며칠 후 우리 사무실에서는 처음으로 최○○ 선생님이 통화와 문자 외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일반 휴대폰을 버리고 최신 스마트폰
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작년 12월 25차 공동회의에 참석한 북쪽 선생님 중에 아주 오랜만에 회의에 참석하신 분이 계셨다. 2009년 이후로 회의 참석을 안했으니 거의 6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그 6년 동안 박사원에 들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나왔다고 했는데, 얼굴이나 몸집에 살이 퍽이나 오른 모습이었다. 그분은 6년 동안 10kg 정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이제 돌이 다 되어 가는 아들이 있다. 얼마 전부터 기어 다니는 것을 떼고 슬슬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다. 겨우 몇 발자국 디디곤 자기 흥에 겨워 박수를 쳐댄다. 박수를 치는 것도 서툴러 제대로 된 ‘짝’ 소리 한번 내지 못하지만 스스로 걷을 수 있는 게 마냥 좋은 모양이다. 반달이 된 눈과 해죽하게 벌린 입으로 웃는 모습이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92년 겨울,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때의 일이다. 겨울이 농촌에서 농한기인 것처럼 의무경찰에게는 시위가 없는 ‘무시위기’여서 주로 방범 근무를 나갔다. 그런데 겨울철 방범 근무지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을 수 없는 골목길이나 대로변에 정해진다는 것이 문제 아닌 문제였다. 그래서 근무지가 배정되면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겨울바람
남초록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우리, 산보하러 갈까요?”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구에게나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북에서 이성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다가는 예기치 못한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이 말이 ‘데이트 신청’의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이다.‘산보’는 남과 북에서 모두 쓰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
고대영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완연한 여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불던 바람마저 그쳐 온종일 후텁지근한 날씨에 끈적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이다.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 있는 것이 최선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이 신식이지 못한 탓인지 시원치 않은 목과 코를 가지고 있는 탓인지 나 같은 사람에게 에어컨 바람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이번 설은 주말이 바로 이어져 여느 때보다 긴 연휴였다. 그래서인지 고향을 찾은 가족, 친지들의 움직임에도 여유가 묻어나는 듯했다.하지만 이런 여유가 늘 복이 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도 잠시일 뿐, 대개는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만 서로의 근황을 묻고 이러저러한 충고를 하고 듣다 보면 어느새 ‘말은 적을수
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군대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은 씻는 것과 빨래일 것이다. 그중에서 빨래는 더더욱 귀찮은 일이어서 늘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다들 빨래를 하느니 잠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여러 빨래거리 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팬티는 앞쪽으로 일주일, 뒤집어서 일주일, 털어서 일주일, 다시 뒤집어서 일주일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2015년 새해를 맞이한 지 좀 되었지만 아직도 새해 인사가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것은 ‘신정(新正)’이고 아직 ‘구정(舊正)’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력 1월 1일을 맞아 시무식을 하고 업무도 새로 시작했지만 친지가 모두 모여 세배를 하고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빌어 주는 우리 마음의 설(?)은 좀
김완서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2004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대학에 7년 만에 편입을 했다. 그동안 해왔던 공부와 관련지어 할 수 있는 새로운 공부를 찾던 중 언어치료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준비한 지 2년 만에 결심을 하고 새로이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새롭게 시작한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국내에는 좀 생소한 분야여서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지난 12월 2일, 담뱃값 인상과 관련한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인상안의 액면 취지도 취지이려니와 서민 살림의 압박 때문에서라도 역시 '금연'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수년 혹은 수십 년을 피워 온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끊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금연
김완서/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10여 년 전에 EBS 토론 프로그램에 질문자로 나간 적이 있었다. 방송사에서 그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시청자 겸 질문자 역할을 할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 요청을 받은 사무국장님의 ‘완서, 네가 갔다 와라’는 하달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그 토론의 주제는 ‘영어 공용어’였다. 방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나는 유일했다. 나의 이 유일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이 유일함은 내가 있는 장소를 환하게 밝히는 역할도 수행했다. 나의 유일함이 밝히는 정도는 이러했다.열심히 집필을 하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다.“일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리 위에 있는 형광등이 나가서 갈러 왔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얼마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번 월드컵은 전통의 축구 강국 독일에게 돌아갔다. 독일의 우승은 월드컵을 개최하는 대륙에서 우승 팀이 나온다는 징크스를 깬 결과라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큰 전쟁이 끝나면 으레 논공행상이 뒤따르는 법. 우승 팀에게는 FIFA의 막대한 보상금이 주어지고
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결혼 후 난 매주 주말마다 전주를 갔다. 처가가 전주인 이유도 있고 아내가 전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 1년여 만에 얻은 아들이 공부하는 엄마와 함께 전주 처갓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내가 공부하러 학교에 가고,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출타하셔서 아들과 단 둘이 남은 무료한 토요일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이제 6월인데 날씨는 한여름을 향해 거침없이 내닫고 있는 듯하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엉덩이엔 이내 땀이 차오르고 뜨겁고 탁한 공기에 머릿속은 금세 혼미해지고 만다. 더위에 지친 머릿속에선 어느새 책상이 사라지고 푸른 바다와 너른 해변이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날씨가 덥다고 짜증나고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1992년 8월, 난 시위 진압을 위해 서울대 앞에 있는 광장에 서 있었다. 서울대 광장은 전날의 시위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채 던지지 못한 돌멩이들과 발사하고 남은 최루탄 탄피들이 방패 깔고 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많았고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였다.공권력의 집행을 위해 내가 속한 부대 외
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2014년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꽃놀이 철이다. 올해는 나무들도 긴 겨울을 지내는 게 힘들었던 탓인지 일찍 기지개를 편 듯하다. 벌써 도심 곳곳에서 움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야 두꺼운 외투를 벗자마자 화사한 꽃을 볼 수 있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가볍고 밝아지는 듯해 기쁠 따름이다.그런
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익숙한 말이다. 전에는 들어보지도 않고 잘 쓰지도 않던 말들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다. 한미 에프티에이(FTA)로 인해 비준이라는 말을 매일 접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신문 기사를 보면 온통 비준이라는 말만 나온다.네이버 검색란에 ‘한미 fta 비준’을 입력하면 아래의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비준’과 같이 따라 나오는 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