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완연한 여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불던 바람마저 그쳐 온종일 후텁지근한 날씨에 끈적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이다.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 있는 것이 최선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이 신식이지 못한 탓인지 시원치 않은 목과 코를 가지고 있는 탓인지 나 같은 사람에게 에어컨 바람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 시원한 것도 잠시 이내 코에서는 맑은 콧물이 흘러내리고 목은 부어오르고 만다. 그래서 내겐 에어컨보다는 통풍이 잘 되는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게 최상책이다.
그런데 ‘그늘’을 의미하는 ‘응달’과 관련해서 남북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양측의 사전에서 ‘응달’과 관련된 어휘를 살펴보자.

《표준국어대사전》
응달 「명」 =음지3(陰地)①.
∥ {응달에서} 말리다/한여름에 {응달에서} 땀을 식혔다./백석이가 가리키는 바위 밑 {응달에} 철 늦은 진달래 몇 송이가 붉게 피어 있다.《김춘복, 쌈짓골》/피아골 골짜기의 {응달에} 미처 눈이 녹기도 전에, 양지쪽 산비탈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아났다.《문순태, 피아골》
[<음달←음(陰)+▷달]

음달(陰-) 「명」 ‘응달’의 원말.

《조선말큰사전》
능달 「명」 해빛이 잘 들지 않거나 무엇에 가리워져 늘 그늘이 지는곳. | 쉴참에 농장원들은 능달이 든 나무아래에 모여서 오락회를 열었다. (=) 능지. 음달.

음달 (陰-) 「명」 =능달.

남에서는 <응달>을 쓰고 있고 북에서는 <능달>을 쓰고 있다. 모두 한자어 <음달(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에서는 <음달>과 <응달>을 원말과 변한말의 관계로 보았으나 북에서는 단순히 같은말로만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남북의 차이는 각 측의 규범어가 어느 지역어에서 출발했느냐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큰사전》
능달 (이) →응달. (평안. 함경. 황해).

위와 같이 《우리말큰사전》에서는 <능달>을 북측 지역의 방언형으로 보였다. 북에서는 ‘평양말’을 규범어로 삼고 있어 ‘음달’이 변한 어형 가운데에서 북측 지역어가 규범어로 인정된 것이다. 반면에 남측은 <음달>에서 변한 말인 <응달>이 규범어로 인정된 것이다.
두 형태가 모두 널리 쓰인다면 <응달, 능달>을 모두 살려 쓸 수 있다. 그런데 북측 말뭉치에서 <능달>의 용례를 찾기 어렵다.

·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능달}쪽은 이 며칠동안 따뜻한 날씨에 겉의 눈이 녹았다가는 밤새의 쌀쌀한 기온에 다시 얼어버려서 번질번질하다.《리병수(1981): 붉은 지평선 제1부》
· 낮에까지도 {응달} 쪽에 허옇게 보이던 눈이 온데간데없어진 것이 캄캄한 속에서도 알리였다.《강형구(1957): 봄보리》

북의 말뭉치에서 <응달, 능달>이 각각 한 건씩 확인될 뿐이다. 북에서 두 어형이 실제 쓰이는빈도를 고려하여 <응달>과 <능달> 중 한 어형으로 통일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