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가 1908년 『독사신론』을 쓰면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주족(主族)은 부여족(扶餘族)이다’, 이렇게 설정하게 돼요.”
임찬경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은 19일 오후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동호(東胡), 선비(鮮卑), 거란(契丹) 등과 한국고대사 및 홍산문화 관련성 탐색”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부여족을 우리 민족의 주족이라고 강조했다.
임찬경 연구위원은 “신채호가 조선은 하나의 나라 이름으로 쓰이는데, 그것이 우리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은 아니라는 것”이라며 “기자를 앞에 내세우다 보니까 조선이라는 나라를 내세우고, 조선의 우리 역사를 서술하게 되니까 항상 한계가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가 흔히 우리 민족국가의 시원으로 생각하는 고조선(古朝鮮)은 중화사상에 찌든 조선시대에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숭앙하는 분위기에서 부풀려진 것이고,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조선이라는 용어보다 부여로서 한국고대사를 서술했다”는 것.
나아가 “조선은 평양의 옛 명칭에 불과하다”며 “부여왕은 임금이며 기자(箕子)는 신하이고, 부여본부(本部)는 왕도(王都)이며 평양은 속읍(屬邑)”이라고 『독사신론』을 근거로 주장했다.
임 위원은 또다른 근거로 1925년 중국 흑룡강성 목릉(穆陵)에서 북만주의 독립운동단체를 통일하기 위한 독립운동단체 대표자회의를 개최할 때 회의 명칭을 ‘부여족통일회의(扶餘族統一會議)’로 부른 사실을 제시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스스로 ‘부여민족’이란 자긍심을 갖고 있었으며, 독립운동을 통해 고대의 부여를 잇는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고자”했었고 “고대 부여를 계승하는, 대륙국가를 복원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것.
이같은 흐름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신도였던 대종교(大倧敎)의 대륙사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배달족’이라는 명칭과 일맥상통한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발행인 김승학이 기록한 당시 애국가의 가사는 “무궁화 화려한 금수강산 / 배달 민족 배달 나라 길이 보전하세”로 맺고 있다. 김승학은 1930년 옥중에서 『배달족이상국건설방략』을 저술하기도 했다.
“만주는 우주가 개벽되고 씨족이 생기고 국가가 건설된 이후부터는 계속하여 우리 배달족의 보금자리”라는 관점이다. 배달국 건설시 수도로는 압록강 신의주 건너편 단둥지역 일대를 지목하기도 했다.
특히 김승학이 독립신문사 안에 교과서편찬위원회를 꾸려 박은식, 김두봉 등 편집위원들과 함께 저술한 『배달족역사』(1922)는 임시정부 공식 국사교과서로 쓰였고, 여기에는 광범위한 만주지역이 포함된 배달국의 ‘강역’이 지도로 제시돼 있다.
국학연구소의 이번 강좌는 오는 5월 2일부터 4박5일 동안 진행할 “흉노, 동호, 선비, 오환, 거란 등의 북방민족과 한국고대사의 관계 고찰을 위한 역사답사” 준비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홍산문화, 한국의 언어, 혈통, 문화적으로 연결 가능성
임찬경 연구위원은 “신석기 시대에 와서 구석기 시대와는 다르게 문화 양식이 생긴다”며 한반도 북부지방의 주요 신석기시대 유적 분포도를 제시하고 서기전 4,700~3,000년 만주, 요동, 요서, 내몽고 지역에 나타난 ‘홍산문화’를 주목했다.
그는 홍산문화를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형성돼서 만들어진 어떤 그런 것”이라고 우리 민족의 ‘시원문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국 학자 근풍우(靳枫毅)는 1987년에 “요서지역의 하가점상층문화는 바로 역사상의 동호 문화임을 비교적 명확하게 추론할 수 있다”는 글을 발표했고, 복기대는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연관성에 관한 시론」을 2007년에 발표한 바 있다고 적시했다.
특히 2021년 11월 『Nature』에 발표된 논문, 「삼각검증법으로 밝힌 농경의 확산과 트랜스유라시아어의 확산」을 중요한 논거로 제시했다. 이 논문은 10개국의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자 등 많은 학자들의 공동작업 결과물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국어를 포함하여 98개 언어가 속해 있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의 언어 기원지가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지역’이며, 신석기 시대인 서기 전 5,500년경에 ‘원시 한국어-일본어’가 형성이 돼서 서기 전 5,000년경에 ‘원시 몽골어-퉁구스어’로 1차 분화됐고, 청동기 시대에 원시 한국어, 원시 일본어로 2차 분화됐다는 것이다.
첨부한 지도에는 홍산문화지역에서 1차 분화가 이뤄진 모습이 뚜렷하다. “홍산문화지역이 현재 한국의 언어, 혈통, 문화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준 연구”인 셈이다.
임찬경 전문위원은 “독립운동가들이 배달족 역사를 쓸 때 왜 거란이나 선비나 이런 세력들을 다 우리의 같은 혈족으로 해서 배달족이라는 큰 개념을 만들면서 했는지, 우리가 이번 답사, 그리고 앞으로 연구과정에서 깊이 검토해 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