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2015년 새해를 맞이한 지 좀 되었지만 아직도 새해 인사가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것은 ‘신정(新正)’이고 아직 ‘구정(舊正)’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력 1월 1일을 맞아 시무식을 하고 업무도 새로 시작했지만 친지가 모두 모여 세배를 하고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빌어 주는 우리 마음의 설(?)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양력 1월 1일부터 음력 1월 1일 무렵까지 새해 인사가 이어지곤 한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으레 함께 할 놀이를 찾기 마련이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아이들은 제기차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을 하며 추운 줄도 모르고 밖에서 놀곤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빠져나간 한적한 집안에 둘러앉아 초록색 모포를 펼치고 ‘화투’를 치곤 했다. 요즘은 좀 덜하기는 하지만 예전만 해도 ‘셋만 모이면 화투’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즐기던 놀이가 바로 ‘화투’였다.

화투로 하는 놀이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골패와 같이 화투장의 끗수를 이용한 ‘섰다’가 있다. 나누어 가진 화투장 두 장의 끗수가 높은 사람이 판돈을 독식하는 놀이인데 이때 같은 끗수를 나타내는 화투장 2장이 모인 패를 ‘땡’이라고 불렀다. ‘땡’에도 종류가 많은데 높은 순서대로 보면 ‘38광땡, 13광땡/18광때, 장땡(십땡), 구땡, 팔땡 …’이 있다.

그런데 남북에서 이 ‘땡’에서 차이를 보인다. 화투 놀이에 관련된 어휘로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 올라 있는 것에는 ‘장땡’, ‘장땅’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조선말대사전》

장땡

① 화투 노름에서, 열 끗짜리 두 장을 잡은 제일 높은 끗수.

② 가장 좋은 수나 최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

장땅

① 노름에서, ‘가장 높은 수’를 이르던 말.

② 가장 좋은 수나 방도 또는 그 이상 없는 좋은 수나 방도.

‘장땡’이든 ‘장땅’이든지 간에 첫 번째 뜻풀이를 보면 화투장에서 10월을 나타내는 두 장이 모여 만들어진 패를 뜻하는 말로 표기만 다른 말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어휘로 남에서는 ‘왕땡’이, 북에서는 ‘왕땅’이 있다. 가장 좋은 수나 최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장땡/장땅’의 두 번째 뜻풀이와 같은말이다. ‘매우 큰’ 혹은 ‘최고의’이란 뜻을 더하는 ‘왕-’과 ‘땡/땅’이 결합한 말로 ‘장땡, 장땅’과 같이 ‘땡’과 ‘땅’의 표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데 남북에서 ‘땡’은 사전에 올렸으나 ‘땅’은 그렇지 않았다. ‘장땅’이 쓰이지 않는 남에서야 이때의 ‘땅’은 쓰지 않는 말이니 당연히 사전에 올리지 않았겠지만 《조선말대사전》에서도 ‘땅’은 사전에 없고 ‘땡’만 사전에 올라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조선말대사전》

① 화투에서, 같은 짝 두 장으로 이루어진 패.

② ‘뜻밖에 생긴 좋은 수나 우연히 걸려든 복’을 속되게 이르는 말.

‘우연히 굴러든 복이나 뜻밖에 생긴 좋은 수’를 이르는 말.
 

땅 (없음)

이것으로 미뤄볼 때 북에서 ‘땅’이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장땅’과 ‘왕땅’에서만 ‘땅’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몇몇 어휘에만 남아 있는 ‘땅’ 형태를 버리고 ‘땡’으로 합의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요즘은 화투가 도박이라는 의식이 강해서 다소 터부시되지만 ‘화투’도 카드놀이의 일종일 뿐이다. 약간의 도박성이 놀이의 재미와 흥미를 더해 주는 것이니 적당히 즐긴다면 백안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것이라면, ‘윷놀이’와 같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전통 놀이를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번 설에는 모포에 화투장이 아닌, 윷을 던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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