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익숙한 말이다. 전에는 들어보지도 않고 잘 쓰지도 않던 말들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다. 한미 에프티에이(FTA)로 인해 비준이라는 말을 매일 접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신문 기사를 보면 온통 비준이라는 말만 나온다.

네이버 검색란에 ‘한미 fta 비준’을 입력하면 아래의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비준’과 같이 따라 나오는 말들을 살펴보면 ‘의회, 국회, 의원, ○○○당’ 등이다. 모두 국회와 관련이 있는 말들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남쪽에서 ‘비준’은 실생활에서는 쓰이지 않고 정부가 추진하는 협정이나 조약 등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비준’은 정부나 국회에서만 사용하는, 그 사용역이 매우 제한적인 말인 것이다. 그런 말이 한미 에프티에이로 인해 신문과 지상파 티브이에서 매일 언급하다보니 결국에는 국민들의 귀에 익은 말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남쪽 사전에서는 ‘비준’을 이렇게 풀이했다.

《표준국어대사전》
비준 (批准) [법률]
조약을 헌법상의 조약 체결권자가 최종적으로 확인ㆍ동의하는 절차.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행한다. ¶ 국회 비준/비준을 거부하다/국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면 이번 조약은 성립되지 않는다.

남쪽 사전은 ‘법률’ 전문어로 설정하고 풀이와 예문에서도 기사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국회’를 쓰고 있다.

그럼 북쪽은 어떨까?

《조선말대사전》
비준 (批准)
(공식적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단위 책임자나 일정한 기관이 공식적으로 승인하거나 확인하는 것.

북쪽의 사전에는 전문영역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일반어로 처리하고 있다. 풀이에서도 정부의 공식적인 기구의 명칭이나 직함이 들어 있지 않다. ‘단위 책임자, 일정한 기관’이라 하여 ‘비준’의 사용역을 남쪽에 비해 넓게 두고 있다. 북쪽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과 북의 차이를 더 잘 알 수 있다.

⁃ 공장 운동장에서는 초급 직맹 위원장의 {“비준”까지} 받은 대전표를 놓고 직장별로 대항하는 축구경기가 백열전을 이루었고 남자합숙마당은 물론 야간정양소에서마저 탁구, 장기 등등의 경기가 승부를 다투는가 하면 공장진료소 곁에서는 녀성들의 널뛰기가 이채를 끌어 이날을 더 즐겁게 장식했다.《황용국: 이 땅을 사랑하라》
⁃ 자재와 품도 얼마 들이지 않아도 될 창안이여서 그는 자재 청구서를 작성하고 {비준을} 받고 하는 구차스러운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었다.《최종현: 쇠물을 끓이는 사람들》
⁃ 마동호는 오늘 유격대입대가 {비준되여} 가슴에 기쁨과 자랑이 차고 넘치였으나 창억이때문에 시원한 웃음 한마디 웃어보지 못하고 저도 속이 괴로운듯 이따금 한숨만 후- 후- 내쉬였다.《415문학창작단: 근거지의 봄》
⁃ 그는 자기의 청원을 상부에서 {비준했다는} 희소식에 접하자 그만 환성을 올렸다.《림재성: 입당 청원자》

남에서는 ‘비준’이 법률 용어로 정부 문서나 기사문에서만 사용되는데 반해 북에서는 ‘비준’이 두루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에서는 ‘비준’의 주체가 대통령인 반면 북에서는 ‘비준’의 주체가 훨씬 다양하다. 남에서 ‘승인’이 사용되어야 할 자리에 북에서는 ‘비준’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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