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나는 유일했다. 나의 이 유일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이 유일함은 내가 있는 장소를 환하게 밝히는 역할도 수행했다. 나의 유일함이 밝히는 정도는 이러했다.

열심히 집필을 하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다.

“일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리 위에 있는 형광등이 나가서 갈러 왔는데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렇다. 건물을 관리하는 분이었다. 내 자리의 형광등이 나간 것을 알고 갈아주러 온 것이었다. 난 그분이 나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 형광등이 나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옆자리, 뒷자리의 동료들조차 사무실이 전보다 어두워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나의 유일함이 내는 빛으로 형광등이 나간 것을 전혀 모르고 전과 같은 밝기에서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유일함은 남과 북을 통틀어서도 유일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회의를 가면 머리가 이쁘게 벗겨진 사람은 내가 유일했던 것이다. 이 유일함은 내가 입사한 2006년부터 쭉 지속되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있었던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회의에서 나의 유일함은 깨지고 말았다. 드디어 북에서도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참석을 했던 것이다.

나는 북의 그 사람을 보고 반가왔다. 그래서 그를 보자마자 다가가 인사했다.

“드디어 남과 북이 균형을 맞췄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을 통틀어 머리가 이쁘게 벗겨진 사람이 저 혼자였는데, 선생님으로 인해 남과 북이 균형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이 균형 깨뜨리지 않도록 회의에 빠지지 말고 계속 나와 주세요.”

이 말에 북의 그 사람은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남쪽에서는 대머리를 무어라고 부릅니까?”

“<빛나리>라고 합니다. 북에서는 뭐라고 하는데요?”

“<뻔대>라고 합니다.”

“왜 <뻔대>라고 하는데요?

“그야, 뭐 ‘번번하다’ 그런 뜻이지요.”

남과 북의 대머리가 서로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며 ‘빛나리’, ‘뻔대’라는 말을 주고 받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유쾌하게 웃어댔다.

‘뻔대’는 북에서만 쓰이는 말로, ‘뻔대’와 더불어 그와 관련있는 말들을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좌우간 서로 인사를 주고 받은 그날 이후부터 우리는 서로 눈인사를 했고 나는 북의 그분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우린 7박 8일간 함께 하면서 회의 장소를 밝혔고 남과 북의 균형을 맞추었다.
열정적인 회의가 모두 끝나고 남과 북은 저녁 회식을 했다. 한참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북의 그분이 술병을 들고 내게로 왔다.

“어이, 빛나리 동무 술 한잔 받으시라요.”

“네, 뻔대 형님.”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또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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