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서(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군대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은 씻는 것과 빨래일 것이다. 그중에서 빨래는 더더욱 귀찮은 일이어서 늘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다들 빨래를 하느니 잠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여러 빨래거리 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팬티는 앞쪽으로 일주일, 뒤집어서 일주일, 털어서 일주일, 다시 뒤집어서 일주일 이렇게 최소 한 달을 빨지 않고 버텼던 기억이 있다. 보통 한 달 이상 입는 것이 상례였지만 말이다.

90년대 초반에는 남자 속옷이 다 흰색이었는데 의무경찰이어서 그런지 보급품 또한 국방색이 아닌 흰색의 속옷을 주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급이 잘 되지 않아 대체로 집에서 속옷을 가져다 입곤 했다. 나 역시 그렇게 했는데 빨래하는 것이 귀찮아 그 당시에는 흔치 않던 파란색, 빨강색, 초록색 팬티 3장을 가져와 입었다. 남들은 입지 않는 색깔 있는 팬티만을 가져와 입은 이유는 빨지 않고 한 달 이상을 입어도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 팬티 3장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좌우간 부대에서는 부대원들이 너무 씻지 않고 빨래를 하지 않다보니 개인 청결을 강조했고 불시에 개인 청결 검사를 진행하곤 했다. 불시에 하는 개인 청결 검사는 속옷만을 입은 채로 점호를 취하여 속옷의 청결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난 그 날도 파란색 팬티를 한 달 이상 입고 있었고 그 상태로 개인 청결 검사를 받았다. 분대장은 나에게와 물었다.

“너, 팬티 얼마나 입었냐?”
“의경 김완서. 어제 갈아입었습니다.”

파란색 팬티는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고 코를 대고 맡지 않는 이상은 걸릴 염려가 없어 난 당당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그 대답 하나로 난 무사히 개인 청결 검사를 통과했고 제대할 때까지 한 번도 걸린 적 없이 늘 ‘어제 갈아입었습니다’로 무사통과를 했다.

남쪽에서는 ‘청결’이란 말을 위의 경우처럼 ‘깨끗하고 말끔함’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북측의 용례를 살피면 ‘청결’을 사용하는 경우가 우리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장군님, 인사를 드릴 면목이 없습니다. 동네에 인간이 있어가지고 모처럼 찾아오신 유격대에게 중한 국사를 뒤로 미루고 동네 {청결을} 시키게 하였으니 도리가 안됐습니다.《두만강지구》
⁃ “여긴 깊은 산골이여서 순사놈들도 봄가을 {청결} 때에 시오리밖에 있는 구장한테까지 와서 닭 잡아먹고 돌아가군하였단다.《백철수: 세월은 가도》

유격대가 동네 청결을 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깨끗하고 말끔함’의 의미의 ‘청결’이라면 굳이 봄가을이라고 한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런 이상한 북측의 용례에 쓰인 ‘청결’ 대신에 ‘청소’를 집어넣으면 문맥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유격대에게 동네 ‘청소를’ 시킨 것이고 봄과 가을을 맞아 ‘청소를’ 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런 ‘청결’에서 보이는 남북의 의미 차이는 남북 각각의 사전에 잘 풀이되어 있다.

《조선말대사전》청결 (淸潔) [명]               《표준국어대사전》청결 (淸潔) [명]
=청소.                                                      맑고 깨끗함.

단, 북에서는 아래의 용례와 같이 ‘청결하다’의 경우에만 남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의 의미로 쓰고 있다.

⁃ 뒤산이 맑고 앞이 탁 트이고 사방에 {청결한} 기운이 돌기 때문에 비록 감옥이라고 하지마는 별로히 음불한 맛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최승일: 봉희》

아울러 북에서는 ‘청결=청소’이기 때문에 남에서는 쓰지 않는 말인 ‘청결되다’가 쓰이고 있고, 사전에도 자동사로 올라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