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서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위원)


2009년 11월 28일.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날이다. 난 진작부터 외국에서 발매된 아이폰, 블랙베리 등의 스마트폰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출시일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터였다.

며칠 후 우리 사무실에서는 처음으로 최○○ 선생님이 통화와 문자 외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일반 휴대폰을 버리고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구매하였다. 난 그 소식을 듣고 당장 그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흰색의 충전기도 아름다웠다. 선생님은 내게 ‘이것도 되고요, 저것도 되고요.’ 하면서 은근히 자랑질을 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보고 나니 더 갖고 싶었다. 그런데 휴대폰 요금으로 매달 2만 원 정도를 내고 있는 내게 아이폰은 너무 고가였다. 할부금과 사용료를 포함하면 거의 6만 원에 가까웠다. 현재의 내 월 휴대폰 요금보다 3배가량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이 내 구매욕을 무자비하게 짓눌러 버렸다. 그렇게 난 스마트폰 구매욕을 애써 무의식 속에 가둬 버렸다.

어느날 아침 끙끙거리며 애써 스마트폰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있는 내게 최 선생님이 메신저로 말을 건네 왔다. 난 컴퓨터를 이용하여 답을 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최 선생님이 서 있었다. 난 당연히 자기 자리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내게 말을 건네는 줄 알았다가 내 뒤에 서 있는 그 선생님을 보고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최 선생님 손에는 내가 애써 구매욕을 무의식 속에 가둬둔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들려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이폰으로 메신저도 되요.”

그 한마디만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염장을 질러도 보통 지른 것이 아니었고 그 자랑질은 내 무의식 속에 가둔 구매욕을 확 끄집어내 버리고 말았다. 2주 동안 참고 참았던 내 수고가, 내 고생이 부질없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전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내를 만나면 꼭 사달라고 졸라야겠다는 결심을 아주 굳건히 했다. 그 결심을 간직한 채 난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아내가 공부하면서 머무르고 있는 처가로 내려갔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난 작전을 수행했다. 내 작전은 이러했다.

“여보, 이불 좀 개.”

“이불 개면 아이폰 사게 해 줄 거야?”

“여보, 쓰레기 좀 버리고 와.”

“쓰레기 버리고 오면 아이폰 사게 해 줄 거야?”

“여보 청소기 좀 돌려 주면 안 될까?”

“청소기 돌리면 아이폰 사게 해 줄 거야?”

“여보 빨래 좀 널어 줄래.”

“빨래 널어 주면 아이폰 사게 해 줄 거야?”

“여보 점심은 간단히 먹을까?”

“점심 간단히 먹으면 아이폰 사게 해 줄 거야?”

난 아침부터 아내를 종종 쫓아다니며 아내가 내게 하는 말에 토 달 듯이 무조건 끝말은 ‘아이폰 사게 해줄 거야?’라는 청유 비슷한 의문문으로 했다. 아침부터 내내 그러면서 쫒아 다니면서 아내를 성가시게 했더니 급기야 아내는 내게 천둥 치는 것과 같은 큰 소리로 말했다.

“사라. 사! 인간아!”

내 작전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소풍가는 아이마냥 설레임에 잠을 설쳤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나는 아내를 졸라 시내에 나가 그토록 갖고 싶던 아이폰을 샀다. 머리털 빠지고 내가 처음 사 본 고가의 휴대폰이며, 내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갖고 오면서 혹여나 떨어뜨리지 않을까 애지중지했고 충전할 때는 누가 발로 밟을까 봐 구석 깊숙이 넣어두고 그 앞을 지키기까지 했다.

▲ <YTN>이 북한의 스마트폰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리랑'과 '평향타치'가 눈에 들어온다.  [자료사진 - 김완서

최근 소식을 들어보면 북에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말 평양 갔을 때 보니 회의에 나온 북쪽 선생님들 중 일부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북에서는 스마트폰을 다른 말로 부르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2014년 4월 4일 YTN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것인데 거기에 북에서 스마트폰을 무엇이라고 하는지가 담겨 있다.

위의 사진에서 ‘아리랑’, ‘평양’은 ‘아이폰, 갤럭시’등과 같은 제품명이다. 그런데 북에서 만든 스마트폰 ‘평양’ 옆에 글이 하나 더 적혀 있다. ‘타치’가 그것이다. ‘타치’는 북에서 스마트폰을 이르는 말로, 정식 명칭은 ‘지능형손전화기’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지능형손전화기’라는 말보다는 ‘타치’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즉 ‘평양타치’를 남쪽 말로 바꾸면 ‘평양스마트폰’인 것이다.

‘스마트폰/타치’처럼 같은 대상을 달리 이르는 남과 북의 언어 차이 때문에 중국 대련에서 있던 회의에서 만난 북측 선생님이 아이폰을 들고 있던 내게 이렇게 물었다.

“완서 선생은 왜 타치를 남쪽 걸 안 쓰고 미국 걸 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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