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서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2004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대학에 7년 만에 편입을 했다. 그동안 해왔던 공부와 관련지어 할 수 있는 새로운 공부를 찾던 중 언어치료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준비한 지 2년 만에 결심을 하고 새로이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새롭게 시작한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국내에는 좀 생소한 분야여서 교재도 거의 없었고 참고할 수 있는 문헌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수업 대부분이 영어 원서였고 내주는 과제도 미국의 저널에 발표된 소논문을 번역하여 발표하는 것이었다. 수업 준비도 영어, 과제도 영어이다 보니 내가 언어치료라는 공부를 하는 것인지 번역하는 훈련을 하는 것인지 헛갈린 적도 많았다.

그리고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해부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을 생성하는 부분의 해부학을 한 학기 동안 배웠다. 난 해부학에 쓰이는 영어 용어들을 외우느라고 진땀을 뺐고 그것으로 또 매주마다 쪽지 시험을 봐야 해서 외워지지 않는 용어와 머리, 입, 가슴 등의 해부도를 머리에 억지로 집어넣어야 했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그러던 따스한 어느 봄날, 생소한 용어들로 가득한 수업 내용과 더불어 봄날의 나른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좀 덩치가 큰 여학우의 뒤에 앉아서 정신줄을 놓아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졸던 내 눈에 이상한 글자가 들어왔다.

“이 연구를 하기 앞서 baseline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

 
‘바세린’을 설정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바세린’은 몸에 바르는 옆 사진 속의 ‘바세린’인데 수업 중에 뜬금없이 왜 로션 이름이 나오는 거지? 의아했다.

한참을 헤맸다. ‘언어치료’와 로션 ‘바세린’의 상관관계는 무엇이지? 알 수 없었다. 수업은 더더욱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머릿속은 미궁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미궁을 헤맨 지 30분 만에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영어식 발음으로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옆의 여학우가 ‘바세린’이 아니라 ‘베이스라인’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나서야 말이다. 즉 나는 ‘baseline'을 ‘베이스라인’이라고 읽지 않고 ‘바세린’으로 읽는 실수를 한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초선’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날 하루는 자다가 봉창 두드린 것이 아니라 자다가 망신살이 뻗친 하루였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 두 사전에는 ‘가르치다’라는 말이 모두 실려있다. 그런데 《조선말대사전》에는 ‘가르치다’와 풀이가 비슷한 ‘배워주다’라는 말도 있다. 두 말의 사전 풀이를 보면 아래와 같다.

 

가르치다
《표준국어대사전》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거나 익히게 하다.
《조선말대사전》 사상이나 지식, 기술, 기능 또는 리치나 방법 등을 깨닫도록 알려주거나 대주다.

배워주다
《조선말대사전》 가르쳐서 알게 해주다.


사전의 풀이를 봤을 때 표현만 다를 뿐이지 ‘가르치다’와 ‘배워주다’는 의미에서 별 차이가 없다. 즉, 같은말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북의 용례를 보면 ‘배워주다’에 ‘가르치다’를 넣어도 의미에는 변화가 없다.

⁃ 새 조국 건설의 드바쁜 나날에 유정은 줄창 그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말을 {배워주고} 우리글을 {배워주었다}.《김영희: 세월의 년륜속에》
⁃ 글을 {배워주는} 승철이는 사전을 펼쳐가면서 알기쉽게 우리 말 단어와 문장을 가르쳐주었습니다.(《윤경수: 우리는 친형제》)
아버지가 서당방에서 익힌 글밑천으로 짬짬이 {배워주어} 쉬운 글자들을 쓰고 읽을 줄 아는 기둥이였다.《고상훈: 다시 온 봄》
형보도 젊은 성규의 남다른 열성과 패기를 탐탁히 여기고 아낌없이 자기의 기능을 그에게 {배워주었었다.}《손응준: 해솟는 바다》

용례의 의미만을 봤을 때는 ‘가르치다’와 ‘배워주다’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용례를 보면 배워주는 주체가 ‘유정, 승철, 아버지, 형보’로 선생님이 아닌 일반 사람이다. 이점이 ‘가르치다’와 ‘배워주다’의 차이로, 북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만 ‘가르치다’를 사용하고 그 외의 관계에서는 ‘배워주다’를 쓴다고 한다.

하지만《조선말대사전》에서 ‘가르치다’의 예문으로 “아버지는 하루에 꼭꼭 두시간씩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과를 어기지 않았다”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북쪽의 언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예문으로 보인다.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회의’에 나온 북쪽 선생님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북에서는 ‘가르치다’와 ‘배워주다’는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르치다’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만, ‘배워주다’는 그 외의 관계에서만 쓴다고 북쪽 선생님은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북에서는 ‘오늘 아버지가 산수를 가르쳐 주셨다’가 아니라 ‘오늘 아버지가 산수를 배워주셨다’가 맞는 표현인 것이고, ‘바세린’의 내 경우를 북측 표현으로 하자면 ‘가르침’이 아니라 ‘배워줌’이라고 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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