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2014년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꽃놀이 철이다. 올해는 나무들도 긴 겨울을 지내는 게 힘들었던 탓인지 일찍 기지개를 편 듯하다. 벌써 도심 곳곳에서 움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야 두꺼운 외투를 벗자마자 화사한 꽃을 볼 수 있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가볍고 밝아지는 듯해 기쁠 따름이다.

그런데 예년보다 일찍 피기 시작한 벚꽃 때문에 축제를 준비하던 지자체는 손길이 분주해지고 누구를 향해서인지 모를 볼멘소리를 내는 모양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공원이나 길가에서 벚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 은행나무나 회양목들이 서있던 자리까지 어느 샌가 벚나무로 바뀌어가는 추세인 듯하다. 도심의 미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바뀌는 것이리라. 시절에 따라 화사하게 피는 벚꽃이야 무슨 죄가 있으련만 그 꽃을 보고 굴곡진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속 좁은 사람의 도리 없는 인지상정일지 모르겠다.

따뜻한 봄날 이러저러한 감상에 빠지게 하는 이 ‘벚나무’, ‘벚꽃’ 등의 표기는 남북에서도 다르다. 남에서는 표준어 규정 27항에서 소리에서 차이가 거의 나지 않고 의미의 차이가 없이 두 형태가 함께 쓰이는 경우 그 중 널리 쓰이는 하나의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벗나무’와 ‘벚나무’ 가운데 널리 쓰이는 형태인 ‘벚나무’만을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벚나무’에서 뜻풀이를 하고 자주 보이는 잘못으로 ‘벗나무’를 등재하였다.

그런데 북에서는 남과 반대로 ‘벗나무’와 ‘벚나무’가 함께 쓰이고 있지만 그 중 ‘벗나무’를 규범어로 보았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과 반대로 <조선말대사전>에서는 ‘벗나무’에서 뜻풀이를 주고 자주 보이는 잘못으로 ‘벚나무’를 등재하였다. 이런 규범적 처리를 벗어나 남북에서 ‘벚나무, 벚꽃’과 ‘벗나무, 벗꽃’ 형태가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이런 경우에는 그 말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벚꽃/벗꽃’과 관련해서는 ‘멎’과 '벚'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버찌’의 옛말로 ‘멎’이 등재되어 있다. 중세국어에서는 ‘멎’은 “가야온 籠애 니근 머지 곳답도다{두시-초 1481}”와 같이 쓰였다. 또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 모두에 ‘버찌’의 준말로 ‘벚’이 등재되어 있는데 그 근대 문헌형은 ‘벗{역어유해 1690} > 벋{물명고 1824}’이다. 문헌을 통해 ‘멎 > 벗 > 벋’으로 변화했음이 확인된다. 즉 중세어형인 ‘멎’을 통해서 ‘벚나무’, ‘벚꽃’의 ‘벚’의 끝소리가 ‘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말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벗나무, 벗꽃’과 ‘벚나무, 벚꽃’ 가운데 ‘벚나무, 벚꽃’이 원래의 형태와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뜻 없이 시절에 따라 피고 지는 ‘벚꽃’을 보고 굴곡진 과거를 되새기다가 다시 오늘날 남북으로 갈린 현실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하룻날 밤에 벚꽃/벗꽃이 지고 말면 검붉게 익은 버찌를 입안에서 굴리며 어려운 과거를 추억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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