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전 집행위원장) 1. 항모전단은 언제 오나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 한반도 전쟁 위기는 북과 미국의 ‘말과 행동’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북에게 핵과 미사일이 있다면 미국은 더 그렇다. 그중 북이 가장 예민하게 대하는 것은 항모전단이다. B-1B 전략폭격기가 뜨면 비난과 위협 정도지만, 항모전단이 배치되면 차원이 다른 긴장이 조성된
“다음 순서는 아주 중요한 순서입니다. 사전에 참석을 요청드린 아주 중요한 발제자입니다. ‘내가 진짜 테러범입니다’, 국정원 발표에 따른 KAL8585기 사건 테러범 김현희 씨의 발제가 있겠습니다. 김현희 씨 나오셨나요? 김현희 씨? 네. 김현희 씨는 오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30주기를 맞은 29일, 1부 토론회 사회를 맡
2007년 9월 4일 서울고등법원 제1특별부는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공판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가 실종된 지 20년 만에 끈질긴 공개 요구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무려 4천여 쪽 분량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대부분이 포함됐다.이 방대한 공판자료는 물론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
“김현희 씨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는 증거가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어느 것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나 많으니까. 내가 장담하는 것은 군사교육도 받지 않았고, 북한에서 어렸을 때 학생교육도 받아본 사람도 아니다. 당원도 아니다.”북한에서 살다 2013년 남한으로 들어온 홍강철(45) 씨는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단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29일날 어떠한 이유나 어떠한 핑계도 대지 말고 반드시 가족들 앞에 서 주셔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다면 김현희 씨의 앞날은 지금까지 30년의 그러한 평탄한 길이 아닐 것입니다.”KAL858기 사건 30주기를 앞두고 진상규명을 위해 발벗고 나선 신성국 신부는 24일 오후 2시 서울 홍익대 인근 한 사무실에서 와 인
“KAL858기 가족회는 올해 30주기 추모제 행사에 김현희씨를 공식적으로 초대합니다. 귀하의 주소와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서 국정원과 경주 시청을 통해서 초대장을 발송했습니다. 정부기관조차 답신이 없어서 부득불 언론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초대를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바랍니다.”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30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29일을 앞두고 신성국
“2008년, 제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문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외국 정부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KAL858기 사건이 세인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지난 10년간 가장 꾸준히 이 사건을 천착해온 연구자가 있다. “지금까지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사건과 관련된 문서들을 부분적
“남편과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과 만나면서 그분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심정을 저에게 보여줬다... 그것을 내가 눈여겨보면서, 정말 힘이 별로 없지만 나라도 어머니들 곁에서 함께 해줘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크게 생겼다.”천주교 신부로서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다시피 한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에 뛰어든 계기는 “순수 인간적인” 것이었지
“우리 딸이 그러잖아요. ‘맨날 아버지는 엄마 것 밖에 (선물을) 못 사온다’고. 그러면 ‘너는 사가지고 올 사람이 따로 있다’ 이러죠. 하하.”아직도 기억 하나하나가 또렷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이길 수 없는 탓일까.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서 온 차옥정 ‘KAL858기 사건 가족회’ 회장의 직책에도 ‘전(前)’자가 붙었고, 방금 전 일도 깜빡깜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이번에 자료를 살펴보면서 가장 관심이 가고 고민이 됐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전 국정원 발전위 조사관의 면담 내용이다. 진실위원회는 2008년과 2009년 그를 참고인 자격으로 최소한 3번 면담했다.그에 따르면, 발전위가 기체 잔해 조사를 위해 안다만 해역에 가는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같이 가겠다고 약속하고 같이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공식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은 KAL858기가 폭파된 뒤 바레인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사건과 관련된 논란 가운데 하나가 이때 일본에서 걸려온 의문의 전화다. 이규호 당시 일본 주재 대사는 이에 대해 “11.29.-12.1.간 바레인 리전시 호텔에 6회의 전화가 동경으로부터 … 모두가 일본 보도기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사건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하나는 보험금과 관련이 있다. KAL858기는 당시 (대한항공이 소속된) 한진그룹 계열사인 동양화재에 보험을 든 상태였고, 동양화재는 영국의 ‘로이드’사에 재보험을 들었다.이에 대해 안기부(현 국정원)는 1988년 1월 14일 기준 “"로이드" 보험회사로 하여금 대북손해배상 청구 유도”를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김현희는 자신이 어렸을 때 , 등의 북쪽 영화에 출연했다고 안기부(현 국정원)에 진술했다. 진실위원회는 2007년 5월 통일부에 이 자료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통일부의 통일사료관리팀은 “저희 기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아”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DA079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공식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현희는 115명을 죽인 ‘테러범’이다. 그런데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에게 구혼편지를 보냈다고 알려진다. 이번에 자료를 살펴보면서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한 남성은 최소한 두 번의 연락을 시도했다. “김현희씨가 안전기획부 보호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을 때 편지를 보냈던”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1987년 12월에 작성된 외무부 문서들은 당시 김현희 압송과 관련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바레인에 파견됐던 박수길 당시 외무부 1차관보는 12월 8일 로널드 포쳐 미국 중앙정보국 거점장에게서 현지 언론인의 제보를 전달받는다. 이에 따르면 무바라크 칼리파 당시 바레인 외무부장관은 김현희를 한국에 인도할 수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공식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현희가 ‘자백’을 시작한 때는 1987년 12월 23일이다. 하지만 사건과 북쪽의 연관성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거의 확정적으로 제기되었다.이와 같은 분위기에 대해 이규호 당시 일본 주재 대사는 1987년 12월 3일 외무성을 방문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용의자들의 진술도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이미 알려져 있듯이, KAL858기 사건의 공식적인 수색은 열흘 정도 진행되었다. 그 뒤에도 작업은 이루어졌지만 정부의 공식 조사단이 그렇게 일찍 철수했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외무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단의 철수는 사건이 나고 일주일이 채 되기 전부터 언급되기 시작했다.1987년 12월 5일 문서를 보자.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진실위원회는 재조사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들을 입수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옛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비밀문서가 대표적이다. 1987년 12월 30일에 작성된 문서를 보자.“정보원들의 추측에 따르면 비행기 추락사고는 남한 정보기관이 비밀리에 추진한 공작일 수 있다. 이들은 이러한 추측의 근거로 여자 범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태운 채 미얀마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 30주기가 되는 내년에는 새로운 추모탑이 세워지고, 국회 대토론회와 다큐멘터리 제작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성당에서 ‘KAL858기 사건 29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잘 알려져 있듯이, 김현희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1990년 3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곧바로 특별사면을 받는다(1990년 4월 12일). 이와 관련된 다음 의견을 들어보자.“김현희가 사면이 될 경우 아국의 국제법 위반이 명백하고 지금까지 858기 처리시 우방을 동원하여 북한을 규탄한 근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