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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위원회의 철회된 출장조사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8) -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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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7  14: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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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1987년 11월 29일, 중동지역 승객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비행기가 통째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두고 KAL858기 폭파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됐고,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첫 대통령 직선제는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안전기획부(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안기부가 제시한 김현희의 어린시절 화동(花童) 사진부터 거짓으로 드러났고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국 김현희의 자백 만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오는 29일에도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어김없이 29주기 추모제를 열어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KAL858기 사건을 주제로 석.박사 논문을 쓴 박강성주 박사는 그동안 우리 정부와 외국 정부를 상대로 KAL858기 사건 관련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관련기사 보기] 박강성주 박사는 이번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조사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그 내용에 대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천안함사건과 세월호사건에 대한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속시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은 이미 KAL858기 사건이 의혹에 묻힐 때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KAL858기 사건 30주기 전에는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박강성주 박사의 기고문을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국정원의 그림자는 너무 짙었다"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1)

“김현희 사면, 국제법 위반 명백”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2)

안기부는 김현희를 알고 있었는가?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3)

“수색 노력을 포기한 것처럼…”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4)

“배후관계부터 단정...비정상적”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5)

김현희 대선 전 압송과 미국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6)

김현희와 ‘온달장군과 울보공주’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7)

진실위원회의 철회된 출장조사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8)

 

김현희는 자신이 어렸을 때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 <딸의 심정> 등의 북쪽 영화에 출연했다고 안기부(현 국정원)에 진술했다. 진실위원회는 2007년 5월 통일부에 이 자료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통일부의 통일사료관리팀은 “저희 기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아”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DA0799645).

참고로 국정원 발전위 역시 “김현희가 유년 시절 북한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제3의 객관적인 자료를 찾기 위하여”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주요 의혹사건편 下권(III)>, 362쪽).

곧바로 철회된 출장조사 계획

진실위원회는 2007년 11월 15일부터 같은 달 25일까지 바레인, 독일, 헝가리, 러시아에 출장을 가려고도 했다. 바레인의 경우 김현희가 음독을 한 뒤 실려간 살마니야 병원, 독일은 옛 동독의 정보기관이었던 슈타지 문서 보관소 등을 방문하려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문서상으로 겨우 나흘 만에 철회됐는데,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DA0799647, 25쪽).

참고로 러시아 관련해서는 협조 요청을 받은 외교부(또는 주재국 대사관)가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근거없는 의혹제기 중단해야”라는 국정원 발전위의 발표를 인용하며, “주재국측에 협조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 적절한지 검토 요망”이라고 2007년 11월 8일 답변서를 보내왔다(DA0799646, 94쪽). 국정원 발전위의 결론이 위원회의 재조사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안기부는 KAL858기 사건 직전의 김현희의 유럽 행적을 입증하는 사진들을 제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일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 씨는 김현희의 KAL858기 공작 여정에 대해 유럽 각국의 현장조사를 거쳐 그 허구성을 파헤쳐 <파괴공작>을 출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렇더라도 진실위원회는 다른 방식으로 노력을 했던 듯싶다. 예를 들어 2009년 4월, 위원회는 헝가리 국가기록원을 통해 입수한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대사관 극비보고문서”를 분석했다. “2008년 비밀해제”된 문서로 “유고 정부 자체적인 비밀 조사과정을 거쳐 베오그라드 주재 북한외교관과 자그레브 주재 북한통신사 대표를 용의자로 인식하여 추방”했다는 내용이다(DA0799651).

이에 대해 진실위원회 조사관은 유고가 “김현희‧김승일이 베오그라드에서 북공작원들과 만났다는 사실 인지하고 추방”했다며 “김현희 북한 출신 의문사항에 대한 입증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자료조사와 더불어 김현희 면담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참고로 유고는 당시 내무차관 겸 국가정보부 책임자, 외무부장관 대리, 연방대통령이 1988년 1월 20일 알렌 스펙터 미국 상원의원을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한국측이 더이상 사고항공기의 잔해 탐색 작업을 계속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동기에 탑승했던 보안관 2명이 … 공항에서 내린후 다시 탑승치 않았다는 점이 이상함”(DA0799677, 94쪽).

그리고 이미 다른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동독의 슈타지 문서는 진실위원회가 결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살펴보자면, KAL858기 사건은 슈타지가 “모든 가용지식과 정보를 점검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만큼 특별했다(DA0799681, 124쪽).

그리고 1988년 5월 11일자 보고서의 다음 내용이 주목된다. “컴포지션 C4는 미군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폭탄의 일종이다. … PLX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액체폭약물”이다(122쪽). 곧, 김현희 일행이 북쪽이 아닌 미국에서 제조된 폭발물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 안기부가 제시한 폭약 폭발력 시험.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폭약 전문가 심동수 박사는 2005년 9월 2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안기부 수사결과에 대해 반박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는 KAL858기 대책위 및 가족회가 2005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폭약 전문가 심동수 박사가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나 미국에서는 ‘콤포지션 씨 포’라고 불리지만 러시아나 북한 등에서는 러시아어로 ‘사스답페 에뜨 브로떼’로 불리운다. … 만약 테러범이 북한에서 훈련받고 연습했다면 마땅히” 러시아식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고, 또 “이같이 수사결과가 발표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한 심동수 박사는 “콤포지션 C-4는 표준제품이나 PLX액체폭약은 사제폭약의 범주에 속하는 비표준제품이다. 국가간 폭파테러에 있어 표준제품과 비표준제품이 혼용되는 경우는 기술상 상상할 수 없는 사례이다. 폭발의 확실성과 신뢰도가 저하되므로 실패를 예고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참고로 국정원 발전위는 폭약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1988.1.15 당시 발표된 폭약의 종류와 양은 추정된 것이며, 추정한 이유는 김현희 진술에 입각한 폭탄 테러 범행의 수사내용을 무리하게 물증(物證)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추정됨”(<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428쪽). 다시 말해 김현희가 진술하지도 않은 내용을 안기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지어냈다는 이야기다.

한편 국정원은 사건에 대한 의혹이 활발히 제기되던 시기에 자체적으로 해외조사를 실시했다. 2004년 7월 28일부터 8월 14일까지 두 개의 조가 활동했는데 1조는 동남아 지역을, 2조는 동구권 지역을 맡았다. 그리하여 예컨대 동구권 출장 결과, 이 사건이 “북한에 의한 테러라는 점을 주장하는 전 헝가리 총리(호른 줄러)의 자서전”을 구했다(DA0799651, 31쪽).

진실위원회도 2009년 3월 이 자서전을 입수했는데, 헝가리 외무성에 “2명의 북한 출신 테러범들이 … 부다페스트에서 지냈다”고 알려온 곳은 “부다페스트 주재 미국대사관”이었다(67쪽). 헝가리 자체의 정보망보다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진실위원회 조사관은 이 자서전을 바탕으로 “김현희가 북한을 출발하여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머물렀다는 김현희의 진술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68쪽).

폐기된 증거와 문서

   
▲ 안기부는 KAL858기 잔해를 바다에서 건져냈다고 공개했지만 이후 폐기됐다. 당시 안기부는 88올림픽 로고가 선명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안기부에 따르면 1990년 3월 KAL858기의 잔해가 태국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잔해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폭파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후 잔해가 폐기됐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다(<한겨레21>, 2003년 11월 26일; <KBS 스페셜: KAL858의 미스터리 1>, 2004년 5월 2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폭약 폭발 후 폭약류의 성분은 완전연소, 증거물 채취 방법과 시기 및 장시간 외부에 노출된 상태에서는 폭약류 성분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음”이라고 덧붙였는데(DA0799646, 45쪽), 문제는 안기부에 잔해를 반환하려 했지만 안기부가 받아가지 않았다.

진실위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확인 작업을 하려 했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잔해 폐기와 관련된 문서도 “보존기간(5년)이 경과되어 폐기”했다고 2007년 5월에 답변한다(6쪽). 결국 증거 자체가 폐기된 것은 물론,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문서도 없어진 셈이다. 당시 안기부가 잔해를 왜 거둬 가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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