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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사면, 국제법 위반 명백”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2) -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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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8  0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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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1987년 11월 29일, 중동지역 승객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비행기가 통째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두고 KAL858기 폭파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됐고,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첫 대통령 직선제는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안전기획부(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안기부가 제시한 김현희의 어린시절 화동(花童) 사진부터 거짓으로 드러났고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국 김현희의 자백 만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오는 29일에도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어김없이 29주기 추모제를 열어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KAL858기 사건을 주제로 석.박사 논문을 쓴 박강성주 박사는 그동안 우리 정부와 외국 정부를 상대로 KAL858기 사건 관련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관련기사 보기] 박강성주 박사는 이번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조사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그 내용에 대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천안함사건과 세월호사건에 대한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속시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은 이미 KAL858기 사건이 의혹에 묻힐 때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KAL858기 사건 30주기 전에는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박강성주 박사의 기고문을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국정원의 그림자는 너무 짙었다"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1) - 박강성주

 

잘 알려져 있듯이, 김현희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1990년 3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곧바로 특별사면을 받는다(1990년 4월 12일). 이와 관련된 다음 의견을 들어보자.

“김현희가 사면이 될 경우 아국의 국제법 위반이 명백하고 지금까지 858기 처리시 우방을 동원하여 북한을 규탄한 근거를 상실한 결과가 됨. 또한 추후 858기 사건과 유사한 사건의 재발시 아국은 국제기구에서의 사건 규탄 입지를 상실할 우려가 있음”(DA0799703, 8쪽).

사면 추진이 국제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은 물론 일관적이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김현희 사면의 ‘불법성’

   
▲ KAL858기 폭파범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김현희는 이례적인 과정을 거쳐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9년 3월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 씨의 가족을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는 당시 외무부가 작성한 문서의 내용으로 ‘원칙적으로’ 사면이 불법적이며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외무부는 “김현희를 일단 수감하여 일정기간 복역(예: 84년 중공 민항기 납치범)케한 후, 단계적으로 특별감형, 형집행정지 또는 특별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하지만 특별사면은 17회 국무회의에서 당일 10건의 안건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대외비로 의결된다(DA0799645). 참고로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 검찰 수사를 지휘했던 이도 진실위원회와의 면담에서 “즉시 사면된 점은 정치적 고려일 것”이라고 밝혔다(DA0799650, 54쪽).

사건의 성격상 외무부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처음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사전에 어느 정도의 교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외무부는 안기부(현 국정원)가 작성한 특별한 문건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무지개 공작’이다.

이는 KAL기 사건을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데 활용했던 안기부의 공작으로, 관련 문건의 발견은 국정원 발전위의 중요한 성과라고 하겠다(물론 공작의 내용은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추측할 수 있었고, 중간발표 뒤 사본의 일부가 <통일뉴스>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문건에 따르면 추진 기간은 1987년 12월 2일부터 1988년 5월 31일이었고, 예산은 당시 돈으로 13,478,825원($10,215)이 배정되었다(DA0799650, 44쪽).

여기에서 외무부는 12월 5일 정도에 장관 명의로 “북괴가 사건 배후에 게재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진행사항의 중간발표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발표가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도록 하는 것이 무지개 공작의 초기 목표다. 넓은 맥락에서 이 공작에 포함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무부의 비밀문서에는 당시 정부가 해외 일부 언론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한 것으로 나온다.

언론 유도 및 여론 형성

   
▲ KAL958기 가족회는 2006년 11월 15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예컨대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이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대사관 관계자는 1988년 1월 27일자 “주재국 최대 일간 유력지 KOMPAS지에 북한의 KAL기 테러행위 부인과 미국의 대북괴 제재조치 반발은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위라는 제목으로 … 사설을 게재토록 유도”했다(DA0799652, 1쪽).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관 역시 최대 유력지인 “UTUSAN MALASIA”지의 1988년 1월 27일자 관련 기사는 “당관의 반테러 여론형성 요청을 받은 편집총국장”의 호의로 작성되었다고 말한다(DA0799655, 93쪽).

언론 유도 작업의 대상에는 당시 12명의 바레인 특파원들도 포함됐다. 공식 수사발표를 따른다고 했을 때 김현희가 자백을 하기도 훨씬 전인 1987년 12월 3일, 바레인 주재 한국 대사는 “금번 사건은 각종정황으로 볼 때 북괴의 사주하에 조총련 또는 북괴가 직접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바 자연스럽게 동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유도하겠음”이라고 보고했다(DA0799683, 135쪽).

벨기에 주재 대사관의 경우 1988년 1월 15일자 문서에서 “LE SOIR”지의 한국 담당 기자를 오찬에 초대했다고 밝힌다. 이 기자는 한국의 정치에 비판적이었는데 “공보관의 수사결과 배경 설명에 앞서 과거에 종종 안보문제가 국내정치에 이용된 일이 있는데 이번건은 사실이냐?”고 물었다(DA0799701, 21쪽). 하지만 김현희의 인적사항 등을 설명하자 의심을 풀었다고 한다. 다만, 범행목적 관련해서는 “왜 무고한 근로자가 탑승한 비행기 폭파를 선택하였겠느냐는 의문을” 보였다.

   
▲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6넌 8월 1일 'KAL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 실체가 알려졌던 '무지개 공작'. 통일뉴스의 행정정보공개신청을 통해 '무지개 공작' 사본이 공개됐지만 내용의 절반 이상이 비공개 처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다시 무지개 공작으로 돌아가자면, 그 내용에는 “탑승 희생자의 유가족을 포함한 국민 각계의 대북 규탄 집회.성명 및 논설 등 수단 총동원, 북괴 규탄 분위기 확산”도 포함된다. 이와는 별도로 1988년 1월 14일 안기부가 작성한 ‘대한항공858기 폭파사건 수사결과발표 및 관련조치계획’에는 “반공연맹, 이북5도민회 등 반공 및 안보관련 단체의 대북괴 만행 규탄 운동전개”가 제시되어 있다(DA0799670, 7쪽).

위와 비슷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외 교포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방식의 반북 여론 형성이 시도되었던 듯하다. 반기문 당시 미국 주재 총영사(현 유엔 사무총장)는 1988년 1월 15일 “교포 언론사가 주최한 시국 강연회에 참석 … 교포 사회의 대북 경각심을 제고”시켰다(DA0799701, 62쪽).

스웨덴 대사관의 경우 당시 전체교민의 3분의 1 정도인 “200-300명이 … 시위를 당지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1월 23일에 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105쪽).

중동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쿠웨이트 주재 대사가 작성한 1988년 1월 28일자 문서에 따르면, 대사관은 “당초 1) 주재국이 정치성 집회를 금지하고 있고, 2) 칼기 폭파사건이 근로자들의 희생이며, 3) 근로자 및 교민들의 자발적 행사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FINTAS 현대건설 현장에서 궐기대회를 갖기로” 했다(133쪽). 하지만 현대건설 현장소장이 주재국의 “공사감독관에게 평면적으로 통보, 동감독관이 불허하자 대회 하루 전날에야 행사개최 불가를 통보해옴으로써 범교민규탄대회가 당초 의도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대사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현장 소장이 행사의 중요성내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작업상 사소한 차질을 우려한 비협조적인 자세로 업무를 너무 평면적으로 처리하는데 기인함. 당관은 문제된 현장소장등을 불러 엄중경고, 질책한 바 있아오나, 본행사의 범국민적 의의와 금후 유사한일의 재발방지를 위하고 해외파견 건설회사들의 자세정립과 국익증진을 위해 현대건설측에 행정상 제재등 가능한 조치를 취하여 주시기 건의하며 …”(같은 쪽).

과연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대사관 주최의 규탄대회를 근로자와 교민들의 "자발적 행사"로 내세운 것도 문제지만, 주재국 법규에 따라 취소된 행사에 대해 왜 현장소장에게 책임을 묻는가. 나아가 이 사건으로 50명 넘게 직원을 잃은 현대건설에 오히려 제재를 가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실종 29년, 추모제를 앞두고

   
▲ 지난해 11월 29일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KAL858기 사건 28주기 추모제 헌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편 이번에 자료를 살펴보면서 안기부가 1987년 12월에 작성한 ‘KAL기 폭파사건 관련 대북 및 해외심리전 활동지침’이라는 대외비 문서를 확인했다. 여기에는 “사건 진상은 미상이나 … 제반정황이 두 혐의자가 북괴공작원이며 폭파범이라는 단정을 갖게” 한다고 되어 있다(DA0799654, 164쪽).

그리고 심리전의 목적을 “북괴의 KAL기 폭파테러 만행을 최대로 내외에 폭로 규탄, 북괴를 세계적인 테러집단으로 재부각시켜 체제존립의 가치마저 박탈하고 선거를 위요한 국내 정국 혼란 및 올림픽 방해 책동과 향후 대남도발기도를 사전좌절시키는데 있음”으로 규정했다.

사건 진상이 “미상”인 상태에서 전개된 안기부의 심리전과 무지개 공작, 나가서는 국제법에 위배된 김현희 사면과 주재국 법규까지 무시하며 추진된 반북 여론 형성. 그렇게까지 무리를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종 29년, 또 추모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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