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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대북손해배상 청구 유도’ 계획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9) -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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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3  02: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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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1987년 11월 29일, 중동지역 승객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비행기가 통째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두고 KAL858기 폭파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됐고,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첫 대통령 직선제는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안전기획부(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안기부가 제시한 김현희의 어린시절 화동(花童) 사진부터 거짓으로 드러났고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국 김현희의 자백 만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오는 29일에도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어김없이 29주기 추모제를 열어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KAL858기 사건을 주제로 석.박사 논문을 쓴 박강성주 박사는 그동안 우리 정부와 외국 정부를 상대로 KAL858기 사건 관련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관련기사 보기] 박강성주 박사는 이번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조사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그 내용에 대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천안함사건과 세월호사건에 대한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속시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은 이미 KAL858기 사건이 의혹에 묻힐 때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KAL858기 사건 30주기 전에는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박강성주 박사의 기고문을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국정원의 그림자는 너무 짙었다"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1)

“김현희 사면, 국제법 위반 명백”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2)

안기부는 김현희를 알고 있었는가?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3)

“수색 노력을 포기한 것처럼…”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4)

“배후관계부터 단정...비정상적”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5)

김현희 대선 전 압송과 미국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6)

김현희와 ‘온달장군과 울보공주’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7)

진실위원회의 철회된 출장조사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8)

안기부 ‘대북손해배상 청구 유도’ 계획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9)

 

사건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하나는 보험금과 관련이 있다. KAL858기는 당시 (대한항공이 소속된) 한진그룹 계열사인 동양화재에 보험을 든 상태였고, 동양화재는 영국의 ‘로이드’사에 재보험을 들었다.

이에 대해 안기부(현 국정원)는 1988년 1월 14일 기준 “"로이드" 보험회사로 하여금 대북손해배상 청구 유도”를 사건 관련 조치의 하나로 계획하고 있었다(DA0799670, 10쪽). 하지만 북쪽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만약 그랬다면 안기부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지는 문서상 알기 어렵다.

보험금 문제와 폐기된 자료

   
▲ 국정원 발전위는 KAL858기 사건 보험 처리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조사했다. 사진은 2006년 8월 1일 국정원 발전위의 중간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동안 제기됐던 보험금 관련 핵심 의혹은 당시 보험사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대한항공이 로이드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진실위원회가 이 부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국정원 발전위의 경우 당시 보험 업무를 맡았던 이를 2007년 1월 10일 전화로 면담했다.

이에 따르면, “보험금을 로이드 보험회사 등 재보험회사들로부터 받아 대한항공에 지급했고, 재보험사의 조사관이 사고조사도 했으며 2004년경 언론사들이 취재를 했으나 별 의혹이 없자 보도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주요 의혹사건편 下권(III)>, 539쪽).

그런데 문제는, “언론사 취재 당시에는 관련 자료가 있었으나 회사를 이전하면서 폐기했다”는 점이다. 동양화재의 현 이름은 메리츠화재인데, 회사 누리집(홈페이지)에 따르면 2005년 10월 사명 변경과 함께 본사를 이전했다. 발전위 조사 당시는 물론, 앞으로도 보험금 문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말이다.

참고로 나는 2009년 영국 로이드사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였다. 하지만 로이드사는 ‘공공기관’이 아니므로 청구 대상에 해당되지 않고, 따라서 답변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맞는 말이다). 다만 로이드사는 개별 ‘보험회사’(insurance company)가 아니라 ‘보험시장’(insurance market)의 개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기록들은 로이드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각 회사들이 관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1993년 이전의 모든 보험들은 1996년에 있었던 로이드사의 구조조정에 따라 변경된 사항이 있고, 따라서 더욱 확인이 어렵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반드시 안보리에 제기할 필요성이 있겠느냐”

   
▲ KAL858기 사건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박강성주 박사의 석.박사 논문과 이를 토대로 한 단행본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와 『슬픈 쌍둥이의 눈물』에 의해 상세히 드러났다. 사진은 사건 18주기를 앞둔 2005년 11월 28일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가 '유엔으로 날아간 대한항공 858기' 제목으로 주최한 간담회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영국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면, 1988년 1월 21일자 외무부 문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논의를 다루고 있다. 크리스핀 티켈 당시 유엔 주재 영국 대사는 “미국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미국이 의장국인 2월에 동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좋지 않음”이라고 했다(DA0799671, 158쪽).

결론적으로 영국 대사는 “자신과 몇몇 이사국은 KAL기 폭파사건 이후 상당시일이 경과한 점과 현재 미국, EC[현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가 대북규탄하고 있으며, 중‧쏘가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등 한국측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안보리에 제기할 필요성이 있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안보리 긴급회의는 한국의 요청에 따라 ‘미국’이 의장국이었던 1988년 2월 16일-17일에 열린다. 한편 프랑스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논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서독 주재 대사와 독일 외무성 유엔국장의 면담이 주목된다. 1988년 2월 5일자 문서에 따르면, 독일은 “만약 안보리의 토의가 한국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제시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게 될 것임을 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DA0799680, 37쪽).

그런데 정부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한 문서에 따르면 “24개 안보리 비이사국도 동회의에 참석, 지지발언키로 약속했으나 아국은 안보리에서 동서대결 양상을 피하고 안보리 구성상 아측 지지국이 많음을 고려하여 발언국을 안보리 이사국으로 국한(단, 바레인은 사건 관련국으로 발언)키로 우방국과 합의”했다(DA0799697, 164쪽).

참고로 나는 안보리 회의에서 “KAL858기 사건의 책임소재가 북한에 있다는 결의안 채택이 추진되었지만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산되었다”고 쓴 적이 있다(<통일뉴스>, 2007년 2월 15일).

아니다. 정부는 당시 소련과 중국의 안보리 거부권 행사를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 대목은 당시 유엔 주재 대사와의 면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슬픈 쌍둥이의 눈물: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국제관계학>, 75-76쪽).

안보리 논의에서 쟁점이 됐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블랙박스(비행기록장치)다. 당시 유엔 주재 대사는 “북한 및 동조세력의 주장에 대한 반박시 참고코자 하니, 858기의 BLACK BOX[블랙박스] 수색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달라고 정부에 요청한다(DA0799672, 68쪽).

이에 대해 교통부는 “BLACK BOX 및 잔해발견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검토하여 볼 때 어려운 실정임. … 30일 동안 유효한 신호발신장치는 수신장비를 가지고 유효거리 2마일 이내로 접근이 가능할 때라야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답변한다(72쪽). 아울러 “지난 83년 9월의 KAL 007 사고의 경우 … 실패한 사실이 있음”이라고 덧붙였다.

KAL007기는 당시 소련 전투기에 의해 1983년 9월 1일 격추되었고, 269명 모두가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블랙박스의 존재는 공개되고 있지 않다가, 1991년 소련 언론(Izvestia)이 두 개의 블랙박스가 1983년 9월 15일-11월 7일 사이에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블랙박스를 1992년 11월 19일 받게 되는데, 그 내용물은 빠져 있는 상태였다(<뉴욕타임스>, 1992년 12월 3일). 이는 블랙박스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고 일러준다.

버마에 안기부 수사내용 포함 요청

   
▲ 버마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출한 조사 보고서 표지 복사본. [자료사진 - 통일뉴스]

KAL858기 사건은 국제협약에 따라 ‘사고 발생 국가’인 버마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보고서 작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1988년 2월 25일자 외무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버마 주재 대사는 이 사건이 “북괴공작원에 의한 것임을 주재국의 대ICAO FINAL REPORT[최종 보고서]에 포함되기를 요청”하였다(DA0799697, 135쪽).

실제로 버마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한국 당국은 … 하치야 신이찌 씨와 하치야 마유미 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 한국 당국에 했던 진술을 통해, 하치야 마유미 씨는 대한항공기 파괴의 원인이 되었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이야기했다”(버마 조사 보고서, 7쪽).

이는 보고서와 관련, ‘사고 발생 국가’와 ‘항공기 등록 국가’ 사이의 소통에 대해 규정한 국제민간항공협약 26조를 적극 해석한다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요청 또는 영향력 행사는 정부가 수색 작업에 쏟았던 정성과는 대비된다.

1988년 1월 7일자 문서를 보자. “현재 항공기 잔해를 추가로 발견하기가 거의 어려운 상황에서 사고조사팀을 파견한다해도 실질적인 사고조사에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으나 사고기 등록국가의 입장에서 ICAO에 보고될 정식 사고조사 보고서가 원만히 완결될 수 있도록 …”(DA0799698, 103쪽).

정부로서는 ‘현실적인’ 입장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색에 대한 다소 형식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수색 초기에 실종 지점을 파악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던 정부. 게다가 공식 조사단은 열흘 만에 철수했다. 그랬던 정부가 버마 보고서 관련해서는 (안기부 수사내용이 포함되도록) 끝까지 노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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