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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관계부터 단정...비정상적”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5) -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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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6  0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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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1987년 11월 29일, 중동지역 승객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비행기가 통째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두고 KAL858기 폭파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됐고,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첫 대통령 직선제는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안전기획부(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안기부가 제시한 김현희의 어린시절 화동(花童) 사진부터 거짓으로 드러났고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국 김현희의 자백 만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오는 29일에도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어김없이 29주기 추모제를 열어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KAL858기 사건을 주제로 석.박사 논문을 쓴 박강성주 박사는 그동안 우리 정부와 외국 정부를 상대로 KAL858기 사건 관련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관련기사 보기] 박강성주 박사는 이번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조사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그 내용에 대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천안함사건과 세월호사건에 대한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속시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은 이미 KAL858기 사건이 의혹에 묻힐 때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KAL858기 사건 30주기 전에는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박강성주 박사의 기고문을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국정원의 그림자는 너무 짙었다"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1)

“김현희 사면, 국제법 위반 명백”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2)

안기부는 김현희를 알고 있었는가?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3)

“수색 노력을 포기한 것처럼…”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4)

“배후관계부터 단정...비정상적”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 (5)

 

공식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현희가 ‘자백’을 시작한 때는 1987년 12월 23일이다. 하지만 사건과 북쪽의 연관성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거의 확정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 대해 이규호 당시 일본 주재 대사는 1987년 12월 3일 외무성을 방문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용의자들의 진술도 없는 현 시점에서 배후관계부터 단정하는 듯한 아국언론의 보도는 논리적으로는 비정상적이라 할 수”있다(DA0799683, 128쪽).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군사정권의 외교관이 한 말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이규호 대사는 논리적으로 비정상적이라 하더라도 “랭군사건등 북한의 테러 PATTERN을 경험해온 한국국민들은 직감으로 북한의 소행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쩔수 없는 여론”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한국국민들”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 및 정부의 입장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12월 2일자 외무부 문서 역시 주목된다. “현지 수색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계시는 회장님의 정성어린 활동이 국내 언론 매체에 잘 전달되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이 엄청난 불행의 와중에도 KAL사고의 원인이 곧 규명될 것 같고 범죄의 진원지가 회장님께서 예감하신대로 되어가는 듯하여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습니다”(DA0799668). 여기에서 “회장님”이란 조중훈 당시 대한항공 회장을 가리킨다. 또한 “범죄의 진원지”는 북쪽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KAL858기 사건은 김현희의 ‘자백’이 있기도 전에 북의 테러로 사실상 확정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수사결과를 내놓고”

   
▲ 1988년 1월 15일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렇다고 한다면 본격적인 수사, 곧 안기부가 주도한 정부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전두환 정권에서 대선 관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었을 것 … 한국에서는 이미 수사결과를 내놓고 그 결과에 대한 논리를 구성해가는 방식이었을 것임”(DA0799647, 48-49쪽). 놀랍게도 이는 김현희 일행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당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의 말이다. 진실위원회와의 면담 내용 가운데 하나인데, 안기부 요원이 보기에도 당시 수사 과정은 문제적이었던 것이다. 이미 결과를 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증거’가 중요할 리 없었다.

“북한이 관여되었다는 것은 확실한(firmly established) 것이나, 본인은 아국 수사당국이 어떠한 구체적 evidence[증거] 밝혀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함”(DA0799696, 79쪽). 1988년 1월 7일 당시 박수길 외무부 1차관보와 유명환 북미과장이 스탠 브룩스 한국 주재 미국대사관 공사와 찰스 카트먼 정무참사관에게 한 말이다. 이에 브룩스 공사는 “한국정부가 제공하는 증거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야하며 주어진 결과(given result)에서 도출하는 성격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한다. 위에서 안기부 파견관이 말했던, 결과를 미리 내놓고 논리를 구성해가는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는 블랙박스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1988년 1월 15일 최종결과를 발표한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영문 자료를 만드는데 이에 대한 다음 의견을 들어보자. “대부분의 증거가 범인의 자백에 기초하고 있는 바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증거(intelligence evidence)가 보강 … 아직 구체적 사실관계가 좀더 상호 논리적으로 해명되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동 백서를 중간발표 정도로 제목을 수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임”(DA0799677, 59쪽). 1988년 1월 19일, 찰스 카트먼 미국대사관 참사관이 신두병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에게 한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은 안기부 수사결과에 대해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고 비논리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물론 공식적으로는 수사결과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 ‘화동 사진’. 사진 속의 화동은 귀 모양이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의문점들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예컨대 일본에서는 <TV 아사히>, <TBS>, <후지 TV> 등이 “고도 훈련 받은 확신범이 8일만에 자백을 시작할 정도로 그렇게 빨리 무너질 수 있는가”, “노동자 중시의 북이 노동자를 표적으로 했겠는가” 같은 물음을 던졌다(DA0799701, 35-36쪽). 이에 대해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은, “의문점다운 의문은 거의 없고, 발표의 완벽성에 오히려 놀라와 하고 있으며, 또 이 완벽성 때문에 일부 언론은 뭔가 트집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안기부와 정부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게 발표를 할 수 있었는가? 내가 봤을 때 그들의 입장에서는 ‘김현희’라고 하는 절대적 증거가 있어서였다. 일본 대사관이 언급한 “완벽성”의 이유라고도 하겠다. 폭파범인 그녀가 자백을 했으므로 다른 물리적 증거들은 필요가 없다. 곧, 김현희의 ‘고백 서사’ 또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증거라는 이야기다(박강성주, <슬픈 쌍둥이의 이야기: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국제관계학>, 214쪽).

   
▲ 당국이 KAL858기 잔해물이라고 발표한 기체 일부. 국과수 감정 결과 폭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안기부는 이 물증을 고철로 처분해 버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사건을 유엔으로 가져가면서 김현희를 증인으로 나서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1987년 12월 외무부가 작성한 문건을 보자. “마유미 여인이 안보리에서 … 폭로하도록 유도. 증언 유도를 위한 방안으로서 미국에 영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발적인 발언을 하도록 …”(DA0799692, 5쪽).

정부가 김현희를 미국으로 이주시키려 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핵심은 증거와 논리의 부족을 김현희의 존재 자체로 채우려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김현희는 결정적이었다(하지만 널리 알려진 대로 그녀의 진술에는 해명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한편 진실위원회는 2009년 5월 김현희와 관련된 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면담을 실시했다. 김현희를 직접 조사했던 이상형 당시 서울지검 검사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다. “김현희와 대화할 당시 정형근 [안기부] 국장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는데 “이분이 ‘인민검찰소’에서 나온 검사다”라고 … 김현희가 긴장하여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만한 에피소드 … 서소문 검찰청사 바깥에서는 연합철강 근로자들이 데모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구호가 ‘전두환, 이순자를 처단하라’는 것이었다. 김현희가 “세상에 ‘인민검찰소’ 앞에서 전직 국가원수 부처를 처단하라고 말하는데 이게 나라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북한출신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DA0799651, 82-83쪽).

김현희가 북 출신이라는 “심증”

   
▲ 사건 20년 만에 공개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에서 추가 확인된 21장의 사진 중 김현희가 비엔나에서 찍은 사진.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여기서 “심증”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에 주목하자.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는 “마음에 받는 인상” 또는 “재판의 기초인 사실 관계의 여부에 대한 법관의 주관적 의식 상태나 확신의 정도”를 뜻한다.

아울러 이상형 검사와 함께 조사에 참여했던 당시 검찰 수사관도 “김현희가 검찰 청사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북한 출신이었다는 심증”을 가졌다며 역시 같은 용어를 쓰고 있다(90쪽). 이 수사관과의 면담에 대해 진실위원회 조사관은 “북한 출신 부분을 확인하는 보강자료로 활용하겠음”이라고 적었다. 아마 종합적인 판단이 있었겠지만, 심증 차원의 이야기를 “확인” 수준의 자료로 쓰겠다는 대목은 좀 성급하지 않나 생각된다. 북 출신 여부 판단을 떠나, 이는 증거의 개념과 그 활용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참고로, 2006년 8월 1일 국정원 발전위가 재조사 중간발표를 했을 때도 김현희와 김승일이 “KAL858기 폭파범이라는 심증을 가지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며 같은 표현을 썼다(‘KAL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 중간 보고서, 45쪽). 다만 “분명한 사고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동체와 블랙박스 등의 物證[물증]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을 덧붙였다. 그러나 1년 뒤 국정원 발전위는 “물증”을 보강하지 못한 채 최종보고서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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