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KAL858기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배후』의 작가와 출판사 대표에 대한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항소가 결국 기각돼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2003년 11월 소송이 제기된 때로부터 5년여 만이다.

12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10호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 이응세 판사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현우(본명 서현필) 작가와 전형배 창해출판사 대표는 손해배상 민사소송은 물론 명예훼손 형사재판 1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통상의 독자들도 이 소설의 구체적 사실이 작가의 상상에 의한 허구로 구성되고 각색되었음을 충분히 알수 있다”는 점과 “국가기관의 수사결과에 대한 비판 등은 넓게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국 “이 사건 소설의 전체적 흐름이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음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피고인들이 이 사건소설을 집필, 출간한 행위는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에 관한 새로운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달리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심재환 변호사는 “재판에서 이겨서 기쁘다”며 “일부 사람들이 서현우 작가에 대해 공작으로 사실을 뒤집으려 했다는 비난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법원에서 인정한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소설 『배후』가 공익적 맥락의 저술이고, 이같은 비판이나 문제제기는 우리 사회가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법원에서 인정해준 것이니까 일부 사람들의 비난이나 비평이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중대한 근거를 제시해준 것이다”고 평가했다.

서현우 작가는 “사법부가 무죄를 재확인한 것은 최근 김현희와 조갑제, 이동복 등의 목소리에 대해서 진실은 변함이 없고 의혹은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의혹에 대해 시급히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KAL858 가족회와 시민대책위는 16일 오전 11시 서울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최근 김현희 씨의 편지글 공개에 대해 반박하며 남북공동조사를 포함한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판결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형사부

판 결

사 건 2008노3194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피고인 1. 서현필(000000-*******), 소설가
주거 울산 ----------
등록기준지 울산 -------
2. 전형배(000000-*******), 출판업
주거 원주시 ---------
등록기준지 서울 -------

항소인 검사
검 사 강대권
변호인 법무법인 정평(피고인들을 위하여)
담당변호사 심재환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9. 9. 선고 2008고단976 판결
판결선고 2008. 12. 12.


주 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

이 사건 소설의 본문, 표지, 띠지, 서문, 후기 등에 기재된 내용을 고려하면 비록 소설의 형식을 갖추었더라도 사실상 다큐멘터리로 작성되어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수사결과가 날조되었다는 내용이다. 또한 확정된 재판결과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고인들이 허위사실을 주장함으로써 당시 수사를 담당한 안기부 직원들을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한 점은 충분히 인정됨에도 원심은 사실오인과 법리오해로 무죄를 선고한 위법이 있다.

2.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 서현필은 2001. 말경부터 2002. 말경까지 울산 이하 불상지에서, 「안기부는 1987. 대선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자가 당선을 위하여 북한의 지령을 받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것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사전에 각본을 짜놓고, 소속 직원들로 하여금 미리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 858기 화물칸에 외교행낭을 가장한 폭약을 탑재해 놓은 후, 대한항공 858기가 1987. 11. 29. 아부다비를 이륙하여 서울을 향하여 인도양 상공을 운항하고 있을 때 폭파시키고, 바레인 당국에 의해 체포된 김현희를 한국으로 압송한 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 북한의 지령에 의한 김현희의 범행이라고 허위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안기부와 미국중앙정보국(CIA)은 위 폭파 공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남산’의 해외공작원 조용훈이 이러한 비밀을 누설할 것을 두려워하여 살해하려 하였으나, 조용훈이 사전에 눈치를 채고 피신하면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다 미국으로 송환된 전 미국중앙정보국 요원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 전직 안기부 고위 관계자 등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을 조작한 정부요인들을 협박하여 도피자금을 마련하고 해외에 은신하는데, 필자가 1997. 이후 조용훈을 우연히 만나서 이러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의 실체에 대해 듣게 된다」는 요지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이어 피고인 서현필은 2003. 3. 26.경 서울 마포구 성산동 209의5 진영빌딩 5층에 있는 위 도서출판 창해 사무실에서 피고인 전형배를 만나 위 원고를 책으로 발간해줄 것을 제의하였고, 피고인 전형배는 이를 승낙하여, 피고인들은 2003. 4. 초순경 출판계약을 체결한 후, 위 책자의 제목을 ‘배후’로 정하고, 1, 2권으로 나누어 제작에 들어갔고 2003. 11. 19.경에 ‘배후’ 보강판 제1권 및 제2권을 출판하고, 판매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사실은 1987. 11. 29.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북한 김정일의 지령에 의하여 서울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자행한 테러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발생 당시 해외업무 담당 부서인 ‘1국’의 간부 및 직원들 및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수사 담당 부서인 ‘수사국’의 간부 및 직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출판물에 의하여 공연히 위 안기부가 당시 집권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자의 대통령 당선을 위하여 마치 북한이 자행한 테러인 것처럼 꾸며 대한항공 858 여객기를 폭파하고 북한의 소행인 것처럼 날조한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는 취지의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위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이 사건 소설은 김현희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당시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하고, 소설의 형태로 구성되어 통상의 독자들도 이 소설의 구체적 사실이 작가의 상상에 의한 허구로 구성되고 각색되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편, 국가기관의 수사결과에 대한 비판 등은 넓게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의문의 제기가 믿을 수 없는 가정이나 신빙성이 희박한 근거에서 비롯되어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전혀 터무니없는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국민적 가치의 통합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 국가 및 그 산하기관으로서는 의혹에 대한 해명과 설득과정이 번잡하고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걸친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감내하고 노력을 다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내용이 설령 진실이 아닌 의혹을 토대로 하였고, 그 본문의 내용 및 선전, 광고를 위하여 표지 등에 적힌 표현에 있어 안기부의 수사결과에 배치되는 사항이 있더라도, 이러한 점만으로 피고인들이 KAL 858기 폭파사건의 수사 담당 간부 및 직원들을 비방하거나 그 명예를 훼손하려고 이 소설을 집필, 간행한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한다.

다. 당심의 판단
형법 제309조 제1항의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란 가해의 의사 내지 목적을 요하는 것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의 방향에 있어 서로 상반되는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한편,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인인지 아니면 사인에 불과한지 여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여부, 피해자가 그와 같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그 침해의 정도, 그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 이상 부수적으로 다른 개인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2137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소설의 전체적 흐름은 작가가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의혹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으나 내용 중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에 근거한 허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소설을 읽는 일반 독자들로서는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에 관한 의문을 갖게 될 수는 있어도 소설의 전체 내용을 모두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이 사건 소설이 일반 독자들에게 소설상의 내용을 직접 진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들도 주장하고 있듯이 피고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을 소설의 형식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사건 소설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소재로 한 것으로 냉전시대에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커다란 인명피해를 일으켰던 위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는 것은 피해자 가족은 물론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 전부터 ‘김현희 KAL기 사건 희생자가족 진상규명 대책위’가 KAL858기 폭파사건과 관련된 의혹 제기 및 진상규명을 끊임없이 촉구하여 왔고, 이 사건 전후로 ‘천주교 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의 여러 단체가 위 폭파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요구하였고, KAL 858기 폭파사건과 관련된 의혹이 여러 TV 시사 프로그램에서 수차례 방영된 바 있으며, 안기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이 위 폭파사건을 재조사한 바도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결과적으로 이 사건 소설의 전체적 흐름이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음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피고인들이 이 사건 소설을 집필, 출간한 행위는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에 관한 새로운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달리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소사실을 무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 검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3.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한다.


재판장 판사 이응세

판사 신지은

판사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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