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은 KAL858기 사건이 발생한지 17년이 되는 날이다.

▶서현우 작가의 소설 '배후' 표지
2003. 11 도서출판 창해 출간
87년 11월 29일,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중동근로자 등 115명의 민간인을 태운 대한항공 858 비행기가 사라졌고, 얼마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에 의한 폭탄테러였다고 사건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부터 정보기관에 의한 조작설이 대학가에 파다하게 퍼졌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 가족들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KAL858기 사건의 의혹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은 작년 11월 발간된 소설 '배후'이다.
저자 서현우씨는 이 소설에서 KAL858기 사건을 안기부의 공작에 의한 폭파로 단정짓고 이야기를 끌어갔다.

책이 발간되자마자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 고영구) 소속 5명의 수사관이 저자인 서현우씨와 출판사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 고소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이들에게는 단 한 차례의 조사나 재판도 진행되지 않았다.

25일 오후, KAL858기 사건 17주년을 앞두고 서현우 작가의 이야기를 전화를 통해 들어보았다.

□ 통일뉴스 : 소설 '배후'에 대한 국정원의 고소가 어떻게 처리됐나?

■ 작년 11월 21일 국정원에 의해 고소됐고, 언론보도를 통해서 민.형사상 고소된 것을 알았다. 1주일쯤 뒤 민사 고소장을 받았고 국정원은 12월 초순에 수사하겠다고 언론상에 밝혔다.

법정투쟁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검찰이 곧 소환하겠다고 밝힌 그 즈음에 오히려 김현희가 잠적했다. 국정원으로 짐작되는 '정보관련 모 기관'이 김현희가 11월 중순경 갑자기 잠적했고 그들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그뒤 지난 7월 4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칼기사건 재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서울중앙지검이 곧 '배후'의 저자를 소환조사 하겠다고 언론에 보도돼 정말로 소환되는 줄 알았는데,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민사소송은 소송대리인인 심재환 변호사 측과 재판부 측과 서신이 한 차례 오고간 것으로 알고 있고 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검찰에서 한번도 소환하지 않고 있다.

▶작가 서현우(맨 왼쪽)는 소설 '배후' 출간을 계기로 KAL858 대책위 조사팀장을 맡고
있다. 사진은 작년 11월 3일 162명의 가톨릭 신부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사건의 의혹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벌써 1년이 넘었는데 당시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이 청구된 것으로 안다.

■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는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국정원에서 당시 KA858기 사건 수사를 담당한 수사관 5명이 1인당 1억씩 총 5억원을 나와 창해출판사 전형배 대표에게 청구했다.

올해 3월 일본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씨의 '파괴공작'이 번역 출판되자 같은 사람들이 전형배 대표를 상대로 역시 민형사상 고소를 했고, 10억원의 손해배상과 출판물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했지만 가처분 신청은 사법부가 거부했다.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사법부가 이례적으로 '밝혀야 될 역사적 사건'이라고 명시해 오히려 출판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 이후에 국정원 측이나 검찰 측에서 특별한 조치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오히려 KAL858기 가족회(회장 차옥정)가 요청한 사건기록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 사건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검찰이 이에 불복해 법적 절차가 진행중이다.

□ 1년이 넘도록 고소당한 상태로만 있는 것도 이례적인 일 아닌가?

■ 이전에 이런 사례가 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아마도 사법부가 상황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당장 반응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것 같다. 검찰은 수사의지가 없으므로 사법부가 기각해버리면 좋을 텐데...

□ 현재의 심정은?

■ 이 사건은 '국가모략사건'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폭파했다는 근거는 아직 없으니까, 이 사건 수사를 완전 조작했다는 차원에서 국가모략사건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원래 이런 확신 속에서 '배후'를 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법당국의 태도로 봤을 때 내 심증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

어쨌든 빨리 수사를 하거나 법정을 열거나 아니면 빨리 기각이나 각하를 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쪽에서도 검찰이나 재판부에 빨리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피고 신분으로 방치돼 온 것은 납득할 수 없고 비애이다. 피고소인 신분으로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이며, 국가기관의 직무유기이다. 언제까지 이 상태로 갈 것인가.

□ 피고소인 신분으로 인해 해외여행 등에서 피해를 입었나?

■ '배후'를 낸 이후 작년 12월까지 두 차례 일본에 가면서 염려했지만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7월 1일 '파괴공작'의 저자 일본인 노다 미네오씨가 입국금지된 사례가 있다. 올해는 외국여행을 해보지 않아 아직 잘 모르겠다.

□ 소설 발간을 계기로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대책위의 조사팀장을 맡고 있다.
책을 쓸 때에는 피해자 가족들과 직접 접촉이 없었다. 책을 내고 가족들의 반응을 보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 사건이 상처로 남아있고,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책을 낸 것이 더욱 뜻 깊었고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수면아래 있던 이 사건을 여론화하는 데 '배후'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니까 보람을 느낀다.

□ '배후'에 대한 고소사건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은?

■ 국가도 개인의 인격처럼 격이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갖고 있고, 실제 피해를 입은 사회구성원이 존재하는데 일방적으로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 국가격을 훼손하고 있다고 본다. 국가가 도덕성을 재확립해야 국가 권위가 제대로 서고 국가 제도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현재 하고 있는 일은?

■ 역시 칼기 관련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 제목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 새로운 소설의 모티브는?

■ 소설 '배후'는 이 사건의 조작의혹을 대중들에게 환기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지금 집필 중인 작품은 '배후' 출간 이후 이 사건 의혹을 추적한 결과들을 모아 좀더 의혹의 실체에 독자들과 함께 다가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방콕은 이 사건의 무대의 한 축이었고 사건 직후 온갖 허위 정보와 역정보의 진원지였다.

□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현황은?

■ 지금 4대 개혁입법의 하나로 과거사청산법이 추진되고 있고 현재까지 언론에 오르내리기로는 당연히 주요한 사건으로 KAL858기 사건이 거론되고 있다.

법안이 하루라도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 혹시나 이 사건이 빠진다거나 법률 통과가 지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안과 무관하게 국정원이 자체 발전위를 구성해서 국정원 간부 5명과 민간위원 10명으로 자신들의 과거 행적에 대해 재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도 이 사건이 주요하게 거론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시민시회단체에서는 면피용이라며 우려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참여한 민간위원 면면을 보더라도 믿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기대를 갖고 있다. 또한 한계가 있더라도 지금보다 한발 나아간 사건 실체에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진일보한 성과를 갖고 법안통과 이후에 더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작년에도 언론들의 보도에 들떴던 기대감이 있었지만 가족들은 나아진 것이 없고 전망만 조금 더 열려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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