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우 (작가)

▶오른쪽 작가 서현우씨. [통일뉴스 자료사진]
'KAL858' 의혹제기로 소송 당한지 22개월

나의 소설 ‘배후’(2003.5.10. 창해출판사 간)로 말미암아 내가 전직 국가정보원 수사관 6인에 의해 명예훼손과 손해배상청구라는 명목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당한지 이제 22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이하 본 사건이라 지칭) 세월이 여삼추라, 그렇게 무려 2년 가까이 나는 민사사건의 피고이자, 형사사건의 피고소인 신분으로 지내와야만 했다.

주지하다시피 나의 소설 ‘배후’는 지난 1987년11월29일에 발생한 KAL858기 사건의 의혹 제기와 그에 따른 재조사를 강력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소설 ‘배후’에서 제기된 의혹들은 현재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되어 있다.

국가의 중추기관인 국가정보원에 의해 제안되어 구성된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 KAL858기 사건 재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설 ‘배후’에서 제기된 의혹이 객관성과 공공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반증이 되었다.

국가기관이 이 사건을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어온 KAL858기 사건에 대한 광범위한 의혹들이 객관적이자 실제적이라는 데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소설 ‘배후’는 그러한 의혹의 요소들을 소설형식으로 조합하여 KAL858기 사건 재조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집필, 출판된 소설작품이다.

그런데 내가 피소된 지 무려 2년이 되는 현재까지 본 사건에 대한 관련법원이나 검찰의 사건 진행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민사법정은 한번도 열리지 않은 채이고 검찰은 어찌된 일인지 몇 차례 이 사건 의혹에 대한 여론이 고조될 때마다 언론에 곧 피고소인 소환의지를 피력하기만 하며 시간을 끌어오다, 급기야 피소 13개월째인 지난해 12월에야 겨우 한 차례의 소환조사에 그친 상태에 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1일 나는 처음으로 민사재판부 관계인과 검찰관계인과의 전화통화로 본 사건의 진행경과를 문의해보았다. 그러자 법원 측은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고난 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검찰 측은 현재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위원회에서 재조사 중이니 그 결과를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본 사건의 피고이자 피고소인으로서 이러한 법원과 검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으며 심히 유감과 놀람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검찰의 입장에 대해서 더욱 그러하다.

검찰은 KAL858기 사건 수사의 최종책임자이자,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현희를 기소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런 검찰이 국정원의 재조사 내용을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반응은 무슨 뜻인가? 검찰 스스로 과거 자신이 수사한 KAL858기 사건의 실체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 아닌가? 내게는 분명 그렇게 들린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검찰의 태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혐의 결정 내려져야

나는 단호히 주장한다. 본 사건의 나에 대한 혐의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KAL858기 사건이 과거사 조사 대상에 선정된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동안 제기되어온 의혹이 객관적이며 타당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미 KAL858기 사건은 지난해 이후 정부여당을 비롯하여 정치권에서마저 논의되어온 사안이 되었다. 또한 방송3사를 비롯하여 무수한 언론매체에 의해 객관적 의혹이 더욱 구체화되고 증폭되어온 사건이다.

현재 국가중추기관에 의해 재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 만으로라도 이제 나에 대한 혐의는 벗어진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재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검찰은 나에 대한 무혐의 처분.결정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 지면을 빌어 고소인들에게 묻고 싶다. 객관적 의혹을 받아온 국가기관으로서의 국가정보원을 제외하고 나의 소설 ‘배후’ 어디에 당신들을 지목하는 대목이 나오는가? 단언하건데 나의 소설 ‘배후’에는 국가정보원의 개별적 실제 인물들을 지칭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나는 ‘배후’를 출판하기 전까지 국가정보원의 수사관에 대해 단 한 명의 인물조차 그 이름을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의 명예를 어떻게 훼손했단 말인가?

당신들이 KAL858기 사건의 수사관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국가정보원으로 개칭되기 직전인 1998년 10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스스로 언론에 KAL858기 사건의 의혹을 언급하여 벌어진 한동안의 소동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분명히 밝히는 것은 나의 소설 ‘배후’는 그동안의 의혹에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그러한 소동에서 발단되었다. 그리고 수지 킴 사건을 계기로 소설의 구상과 집필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현 국가정보원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스스로 초동수사에 문제가 있었으며 일부 수사가 부실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문제가 있고 일부 부실했다니?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KAL858기 사건이 어디 보통사건인가? 이후 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강 수사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단 말인가? 소설 ‘배후’가 세상에 나온 1차적 원인은 바로 그 점에 있으며, 그러한 수사의 일원이었던 당신들이야말로 소설 ‘배후’의 직접적 원인제공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할 당신들이 아닌가?

사안이 이러하므로 당신들은 나를 고소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내가 소송을 당한다면 고소인은 당신들이 아니라 소설 ‘배후’에서 KAL858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국가정보원의 최고책임자인 국가정보원장이라야 그나마 합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하여 나는 왜 당신들이 소설 ‘배후’ 출간 직후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6개월이 지나, 천주교 신부들의 진상규명촉구와 MBC와 SBS방송에 의해 방송사상 최초의 KAL858기 사건 의혹 프로그램이 방영된 시점에 소송을 제기했는가도 의문이다. 혹시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인가?

김현희 잠적, 조사의 공정성 훼손 행위

따지고 보면 나는 소설 ‘배후’ 출간 이후 진행된 상황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출간 두 달 후 국회 정보위에서 정형근 의원이 나에 대한 대응책 촉구발언 보도를 접하고 나는 즉각 정형근 의원에 공개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형근 의원의 반응을 들은 바 없다.

내가 피소당한 후 나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당연히 김현희 씨의 증인 채택 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 약 보름 후 나는 김현희 씨가 갑자기 잠적했다는 보도를 접해야만 했다. 김현희 씨의 잠적은 본 사건이나 KAL858기 사건 재조사에 있어 조사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즈음 국내 유수 일간지의 하나라 자칭하는 동아일보는 신문의 얼굴이랄 수 있는 사설을 통해 KAL858기 사건과 소설 ‘배후’가 제기한 의혹은 외면한 채 나에 대한 사법처리에 적극 동조하여 수백만 구독자들로 하여금 나의 인격에 대해 오도하게끔 만들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한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사안의 공정성을 위해서 나의 목소리를 다뤄줄 지면 또한 할애했었어야 신문 본래의 위상에 걸맞은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해 6월에는 김현희 담당 국선변호인을 역임했던 안동일 변호사가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2004.6.25 동아일보사 출간)라는 제하의 저서를 출간하였는데 그 첫머리에 ‘소설 배후의 배후는?’이라는 제목을 달아 누가 봐도 나의 배후에 마치 반사회적이자 불순한 무엇이 있는 양, 나아가 나에 대해 북한 또는 친북세력과의 관련이 연상될 수 있는 소지를 낳았다.

그런 까닭에 그 얼마 후 나는 언론기고문을 통해 안동일 변호사와 공개 토론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분 역시 1년이 넘은 여태까지 위 정형근 의원과 같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같은 달 위 고소인이 제기한 또 하나의 사건인 일본인 노다 미네오 기자의 저서 ‘파괴공작’(2004.3.15 창해출판사 간)에 대한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바 있다. 위 ‘파괴공작’은 KAL858기 사건 직후부터 무려 2년여에 걸쳐 사건 당시 김현희의 행적과 사건의 무대를 직접 찾아 취재한 취재기이다.

이 저서의 가치는 법원의 기각결정문의 ‘KAL기 폭파사건은 역사적 사실로서 그 진상이 반드시 규명되어져야할 사안이고……’라는 내용이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위 ‘파괴공작’에 대한 민형사상의 소송 또한 소설 ‘배후’와 마찬가지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보다 몇 달 앞서 지난해 2월3일 서울행정법원은 KAL858기 희생자 가족이 신청한 당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에 대해 공개 판결을 내린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곧장 항소하여 현재까지 한사코 기록공개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기록공개는 사건관련자라 할 수 있는 희생자가족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말이다.

이렇듯 본 사건 처리의 미진함이나 위에서 언급한 기록공개 거부 등 그간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검찰은 KAL858기 사건에 대한 무언가를 감추고자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무혐의처분 못하겠으면 차라리 기소하라

검찰 권력은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권력이 아닌 법률에 기초한 국가공권력이다. 또한 국가공권력의 상징이자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검찰에 대한 요즘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공비처 신설이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 등은 그러한 검찰에 대한 불신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과거 군사정권하에서 검찰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모습을 보일 때만이 검찰에 대한 신뢰회복은 물론 과거 군사정권하에서의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치부에 전전긍긍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 그것만이 국민이 부여한 검찰 권력으로서의 바른 위상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검찰이 본 사건을 법적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을 하려는 것이 아니가 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본 사건을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끌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씨에 대한 수사가 한 달 만에 끝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피고소인으로 방치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나는 다시 주장한다. 분명 본 사건은 과거사 재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별개의 사건으로 독립적으로 처리되어야한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본 사건을 하루 빨리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나에 대한 기본권의 침해이자, 검찰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현재 나는 90을 앞둔 나이의 아버지 이부자리를 돌보며 대소변을 챙기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아버지는 본 사건으로 인해 생의 마지막이랄 수 있는 시간들을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지새우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피고소인 신분으로 말미암아 나는 여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마디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검찰에 당당히 말하고자 한다. 지금 내게 무혐의 처분을 내릴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나를 기소하기를 원한다고!

그래서 이름 석자 외에 주소조차 모르는, 일면식도 없는 고소인들을 법정에서 당당히 대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국가정보원에 바라는 것이 있다. 일본인 기자 노다 미네오 씨의 입국금지를 철회해 달라고 말이다. 현재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 KAL858기 사건을 재조사하는 마당에 왜 그분의 입국금지를 지속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그분은 KAL858기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사건의 무대를 두 발로 직접 확인하고 취재하여 생생한 기록을 남긴 기자이다. 그분의 자유로운 입국이야말로 KAL858기 사건의 재조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 아닌가?

국가정보원은 수지킴 사건의 재조사를 방해하려한 적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노다 미네오 씨에 대한 입국금지 철회는 과거사 재조사에 임하는 국가정보원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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