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준(중학교 1년)
‘2023 DMZ 국제평화 대행진’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하여 강화 교동도 망향대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13살 중학생부터 70대 후반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걸었다. 때로는 폭우를 만났고 폭염에 힘들었지만, 열흘간의 대장정을 끝내는 소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2023 DMZ 국제평화 대행진단’
난 지난 3년 동안 여름에는 무조건 우리 땅의 철책선을 걷고 있다.
그리고 지금 2023년에 통일을 두 다리에 담은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기 때문에 DMZ에서의 모든 일정은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3박 4일이 남은 시점에 북쪽으로 북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렸다,
북한이 거의 앞인 곳으로 도착했을 때 마침 긴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에서 나와 작년을 함께한 사람 그리고 재작년을 함께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아주 많이 보였다. 나는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DMZ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우리는 추모의 날을 맞아서 다시 한번 역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간 곳은 동두천의 몽키하우스였다. 몽키하우스는 미국 군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나라 여성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여성들은 몽키하우스에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며 많은 아픔과 괴로움을 느꼈을 것 같다.
이어 윤금이 씨의 아픔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윤금이 씨가 이 땅의 사람도 아닌 미군에게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을 당한 것이 아주 마음이 아팠다.
다음 목적지는 상패동 야산이었다 그곳은 미군들에게 죽임과 폭력을 당한, 죄 없는 우리 나라의 시민들이 잠든 곳이다. 나는 이 무덤들을 보면서 이유 없이 죽임당한 사람들과 같이 손잡고 통일된 조국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 효순, 미선 평화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첫 월드컵이자 국민들의 뜨거운 열기가 한창이었던 2002년에는 그 열기가 월드컵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리고 어린 여중생 두 명이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는 길에 미군이 몰던 장갑차에 치여서 하늘로 떠난 이 일이 너무 원통하기만 하였다.
정말 미군만 우리 땅에 없었더라면 분단도, 동포가 죽임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효순이 미선이 공원에서 마음이 아팠던 시가 하나 있었다.
“푸르러 서글픈 유월의 언덕 애처로이 쓰러진 미선아, 효순아, 손에 손 촛불 횃불로 타오를 때 너희 꿈 바람 실려 피어나리니”
나는 그 후에 점심으로 비빔밥만 후딱 먹은 후에 숙소인 당포성오토캠핑장으로 가서 지원단 삼촌, 이모들을 도와주고 내일을 위해서 후딱후딱 할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에는 전 일정을 다 참여해서 좀 긴장을 많이 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대합창 노래 연습을 하면서 김포의 애기봉 전망대에 도착했다. 애기봉 정상 바로 전에 ‘평화의 종’이라고 하는 종을 치고 정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걸어야 하는 오후가 되었다. 교동대교에서부터 군인들이 검문을 하고 우리 행진단을 졸졸 쫓아왔다. 약간 부담스럽긴 해도 재작년부터 그랬던 거라서 조금은 익숙했다.
교동대교를 지난 후에 교동도를 걷기 시작했다. 들판도 걷고 구름도 보면서 비타민D 섭취도 과다하게 했다. 중간에 딱 한 번 쉬고 걸었는데 3~4km도 안 걸었다는 말에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타이거 부대 충혼비 앞에 도착했는데 작년에는 안 보이던 군인들이 보여서 놀라웠다.
그곳에서 수박화채를 먹으며 쉬고 난 후에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망향대로 향하였다.
망향대에 와 보니 다리의 힘이 풀릴 뻔하였지만 그래도 좋은 풍경과 좋은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가수 두 분이 재미있게 노래를 해주시고 신나는 곡에는 춤을 추고 슬픈 노래는 마음속에 묻어두는 시간이었다. 나는 오카리나가 그렇게 좋은 악기인 줄은 몰랐는데 오카리나를 연주한 선생님께서 그것을 알게 해주신 것 같다.
마지막 망향대 코스는 춤추기였다. 평화의 춤이라고 하는 아주 세련된 춤을 출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후에 캠핑장이 아닌 지붕이 있는 숙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감히 장담하건대 나는 그때 설거지는 달인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뜻깊은 행진의 마지막인 메달 수여식을 하게 되었다. 나는 못 받았지만 정말 많은 어른들이 통일을 위해서 고생했다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자리였다. 모두 그럴 자격이 있으니깐 그 후 나는 아주 늦게까지 어른들과 놀았고 피곤하지만 신나는 몸을 이끌고 잠을 청했다.
DMZ는 끝났지만 우리들에게는 할 일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그 일을 하려고 강화에서부터 서울로 왔고 서울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고 걸었다. 풍물패와 모여서 연설을 듣고 걷고, 현수막을 들고서 같은 목표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할 때 벅찬 감정이 들었다.
나는 현수막을 드는 것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잘 끌고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모여서 본대회를 하게 되었다.
본대회 때 갑자기 비가 왔지만 모두 꿋꿋하게 버티고 즐기기까지 했다. 빗줄기가 강해졌지만 우리는 DMZ의 마지막 일정인 대합창을 하였다. [가자 통일로]와 [평화를 위하여]를 불렀는데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집에 오는 길에서도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정말 DMZ를 다시 걷고 싶다. 이유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분단의 아픔이 있는 곳에서 통일에 대한 좋은 생각을 나누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재작년, 작년, 올해에 왔던 사람 모두가 다시 DMZ에 와서 더욱더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이 됐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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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