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 한국과 미국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후 한국 기자로는 최초로 방북 취재해 변화하는 북의 모습을 알렸다. 그동안 맹북 언론이 조성한 남과 북의 이질성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겨레의 공감대를 넓히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은 비전을 갖고 있다.
‘2023 DMZ 국제평화 대행진’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하여 강화 교동도 망향대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13살 중학생부터 초로의 70대 후반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걸었다. 때로는 폭우를 만났고 폭염에 힘들었지만, 열흘간의 대장정을 끝내는 소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2023 DMZ 국제평화 대행진단’
“미어터지다”라는 단어를 가끔 쓰는지? 모두 아는 단어이겠지만 평소에는 쓸 기회가 자주 없는. 나도 마찬가지로 잊고 지낸 단어였다. 그런데 이번에 한반도 허리를 철조망으로 칭칭 감은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을 동서로 가로질러 걸으며 불현듯 이 단어가 튀어나왔다.
10박 11일 일정의 첫 출발지인 강원도 고성 명파해변에 도착했다. 남한 최북단 해변이다. 해변의 한 쪽엔 반공교육용 철책이 흉물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철책이 해변의 아름다움을 방해하긴 했지만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동강난 육지와 갈라지지 않은 바닷물의 차이를 생각했다.
우리들의 발걸음은 태백산맥 줄기를 넘으며 분단된 한반도 허리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장마 기간이라 중남부 지방에서는 물난리가 한창이라는 뉴스가 전해지는데 강원도 태백준령에는 폭우가 쏟아지지는 않았다. 먹구름은 태양을 가려주고 오다가다 흩뿌리는 빗줄기는 외려 우리들의 고된 행진을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터벅터벅 가는 길에 불현듯 “야~미어터진다”라는 시어 같은 표현이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동료들에게 물었다. 여기 보이는 산천초목의 푸르름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드냐고. 나는 ‘미어터진다’라는 단어 외에 더 적합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동강난 반도의 산하일지언정 그 자연은 말없이 녹음을 분출하고 있었다. 그 녹음이, 아름다움이 나에겐 ‘미어터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발걸음은 고성에서 양구로, 인제로, 철원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산하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지뢰 표식이 붙은 철조망 옆으로 걸어가면서, 심지어 지뢰밭 속에서 자라는 수목들에선 두 배, 세 배 더 푸르름과 생명력이 미어터졌다.
‘미어터지다’는 사전에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1. 공간이 꽉 차 터지거나 터질 듯한 상태가 되다. 2.(비유적으로) 심한 고통이나 슬픔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매우 괴롭다.”
철원에 도달하기까지 내 머릿속의 ‘미어터지다’는 1번이었다. 그러나 철원에서부터는 2번의 미어터짐이 더 지배적인 감정으로 변했다.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이, 그 다음엔 내 가슴이 미어터진 것이다.
한반도 근대사를 남북의 관점에서 균형 있게 연구한 최현진 해설사는 내가 몰랐거나 어렴풋하게 알던 내용을 일깨워주며 우리의 현실을 더욱 실감 나게 자각하게 했다.
60년대 미군이 헬기를 동원해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 대인지뢰를 비처럼 쏟아부었다. 그곳에서 농지를 개간하던 농민들이 숱하게 쓰러졌다는 해설을 들으면서 우리가 과연 철원 쌀이 맛있다는 입맛만 기억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농민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스며든 철원평야!
경기도 동두천 면적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 부대에 고작 3천여 명이 버티고 있으면서 땅값 협상으로 철군을 미루고 있다는 현실, 미군의 성노예와 미군속 종사자로 있으면서 미군의 범죄 등으로 희생된 줄리, 소피아 등 수 천 명의 무명 희생자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열다섯 미선 효순의 추모공원...
78년 전 승전국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의 지위는 지금 얼마나 변했을까. 그들은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의 지원군인가 암초인가. 이제는 ‘미군이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인구가 대부분이니 ‘미군 없는’ 우리 나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자주’ ‘주권’은 어디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겠지. 오래된 비정상이 ‘뉴노멀’이 되어버린 현실에 가슴이 미어터진다.
우리 일행은 7월 12일 고성에서 시작해 21일 강화 교동도까지 열흘간 220km 남짓 걸었다. 휴전선 길이가 245km이니 얼추 비슷한 길이다. 철책*은 고성과 강화 양 끝에서만 볼 수 있었다. 중간에서는 민통선 지역을 벗어나 걸어야 했기 때문에 직접 철책을 볼 수가 없었다.
(*휴전선에는 철책이 없고 임진강변에서 고성까지 200미터 간격으로 1,292개의 말뚝만 세워져 있다.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각각 2킬로 지역이 남·북방 한계선이 획정된 비무장지대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흔히 보는 철책선은 남방한계선을 가로지르는 소위 155마일(248km) 구간에 설치된 것이다. 철책선은 전쟁 직후 세워진 게 아니고 60년대 중후반 미군의 주도로 세워졌다. 휴전선에서 평균 10km(지역에 따라 5~20km) 지역이 민간인 통제구역이고, 이 구역은 실질적으로 유엔사(미군)의 허락 없이는 우리의 행정권이 작동하지 못한다. 북한 쪽 북방한계선엔 철책이 없다.)
행진 마지막 일정인 강화 교동도에선 황해도 연백 땅이 눈앞에 보였다. 전쟁 전에는 38선 이북이어서 전쟁 중에 잠시 피신한다고 내려온 피란민들이 졸지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향의 한을 새긴 곳이다. 이곳은 북녘의 임진강과 예성강 그리고 남녘의 한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조강(祖江), 즉 할아버지 강이라 불린다.
정전 후 확정된 DMZ는 원래 육지까지여서 이쪽 강엔 분계선이 없어 남북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다. 그런데 여기도 철책을 삼중으로 쌓아놓았다. 현지 지역정치인 중에는 법적 근거 없이 설치된 철책을 철거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도 있지만, 유엔사 소관이어서 마이동풍이란다.
분단 78년이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시 돋친 철망으로 칭칭 졸라맨 아픔과 슬픔을 만들어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분단 전에는 경원선을 타고 금강산 나들이도 가고, 원산에 피서도 가고, 대륙 열차로 유럽 여행도 간 조선이었건만 지금은 철조망에 허리가 잘려 섬으로 살아온지 80년 세월이 흘렀다.
한반도 아픈 허리를 따라 걸으면서 정전 70년을 맞는 오늘의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물음을 다시 던진다. 불과 5년 전에 남북은 4.27선언을 통해 불가침선언, 단계적 군축,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남북의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했다.
평화의 시계는 너무 급속하게 거꾸로 간다. 분단 78년, 정전 70년,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 그 제일 책임은 미국에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주권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통일운동은 곧 독립운동임을 믿는다.
동강난 반도의 동쪽에서 우리나라 자연의 신록이 미어터짐에 감격했고, 서쪽으로 오면서 철조망에 허리를 휘감긴 우리 땅의 피 울음에 가슴이 미어터졌다.
강물은 굽이쳐 흐른다. 물줄기가 변하는 변곡점의 물살은 거칠고 흙과 바위를 깎으며 상처를 남긴다. 변곡의 상처를 안고 강물은 기어코 바다로 간다.
우리의 ‘통일호’도 변곡의 물살에 부딪혀도 좌초하지 않고 저기 바다로 지긋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잔잔한 물결의 할아버지 강에 다다랐을 때 다시 ‘미어터지는’ 가슴으로 격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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