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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그 가족이 실신한 이유<기고> 외교부 KAL858 문서 공개 (10) -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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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30  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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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19987년 11월 29일 사고 발생 직후 시점으로 추정되는 외무부의 청와대 보고서 제목은 'KAL기 실종사고 보고'로 돼 있다. '실종'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 온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KAL機[기] 실종事故[사고] 報告[보고]”(2016070046, 2쪽). 1987년 11월 29-30일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외무부 청와대 보고서 제목이다. “실종”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정확한 장소, 원인, 생존자 여부 등을 모르지만 비행기가 사라진 것만은 분명한 상황.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 실종이라 할 수 있다.

외무부가 청와대에 올린 보고서는 최소한 12월 10일까지 “KAL기 실종사고 보고”라는 제목을 유지한 듯하다(29쪽). 하지만 1988년 1월 15일 공식 수사발표 전후로 보고서 제목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KAL기 폭파사건 …”(105쪽). “실종사고”가 “폭파사건”이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답은 김현희에 있다.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 김현희가 테러 ‘혐의자’로 바레인에서 서울로 압송되고, 12월 23일 ‘폭파범’이라고 자백을 시작하여, 1월 15일 기자회견을 한다. 정부가 실종사고를 폭파사건으로 확정할 수 있게 해준 결정적 증거, 바로 김현희다.

김현희 자백,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증거”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부의 수사는 김현희 압송을 계기로 사실상 끝났었다고도 할 수 있다. 1987년 12월 14일 “신병인수에 관한 발표문 (안)”에서 “정부는 “하찌야 마유미”[김현희]와 … “하찌야 신이찌”[김승일]가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한항공기를 폭파했다는 제반 증거를 바레인 당국에 제공”했다고 명시했다(2016070042, 87쪽). 이 사건이 북의 테러라는 증거를 (김현희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전에) 이미 확보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정부는 “북한간첩들은 철저한 사전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을 쉽사리 자백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바레인을 설득해 김현희를 데려오고(2016070045, 136쪽),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는 김현희는 8일 만에 안기부에서 자백을 한다. 정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김현희와 그의 자백은, 미국 하원의 KAL858기 청문회에서도 언급됐지만,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증거(The most important and detailed evidence)”라고 하겠다(2016070057, 176쪽).

하지만 김현희의 자백을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일본 언론들은 “테러목적이 일반 상식적으로 납득할수 없다는점, 공항에서 폭발물 검색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점, … 공작원이 8일이라는 빠른시간내에 전향할수 있는가 하는점, 한국의 국내정치 타이밍과 사건의 진전이 잘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의문점을 지적”했다(2016070059, 112쪽).

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사고의 중대성에 비추어 한국측이 사고항공기의 잔해 탐색 작업을 계속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등이 이상하다고도 했다(2016080004, 18쪽). 그랬기에 나이지리아의 유력 일간지 <더 가디언>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개입하여 독자적인 조사를 하거나 한국측 조사결과를 입증할수 없음을 개탄”했다(2016070066, 131쪽).

실제로 유엔 아래에 있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1988년 1월 “한국정부의 통보내용을 신용하기 때문에 … 별도로 ICAO 관계관을 파견할것을 고려하지않고 있다고” 밝혔다(34137, 44쪽).

유엔과 버마도 제대로 조사 하지 않아

한편 버마는 1988년 2월 16일 국제민간항공기구에 사고 관련 예비 보고서를 보냈는데, 이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김현희와 김승일이 설치한] 콤포지션 C4와 PLX 액체폭약의 폭발(explosion)”이었다(2017060058, 69쪽).

그런데 알려진 바와 같이, 이 폭약 부분은 안기부가 임의로 추정한 것이다(국정원 발전위원회,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주요 의혹사건편 下권(III)>, 470쪽). 다시 말해, 버마 당국이 안기부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 유엔 기구에 보고했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조사는 한국에서는 물론, 유엔과 버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와 김현희 기자회견 다음날 외교부 장관은 주미 대사로 하여금  “미.북한 외교관 접촉 지침 완화 조치의 철회” 등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요청한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래도 정부는 심증과 자백을 바탕으로 한 공식 입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북을 압박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 “미.북한 외교관 접촉 지침 완화 조치의 철회” 등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요청한다(2016070057, 9쪽).

미국은 조지 슐츠 당시 국무장관의 표현대로, (단지 형식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서 높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고(2017060069, 85쪽), 이에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다.

이러한 우방국의 지지 등을 바탕으로 정부는 북을 거세게 몰아세웠다. 그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사건이 북의 테러라고 ‘확신’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 지나친 면이 있었다. 항공기와 관련 없는 국제기구에도 규탄에 함께해줄 것을 요청했다. 해양 정책을 담당하는 국제해사기구, 교육 문제 등을 담당하는 유네스코, 종교 단체인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등이다. 이 기구들은 각각 “어디까지나 선박에 국한되는 것”(2016070061, 48쪽), “그같은성명을 발표한 선례가 없고”(105쪽), “종교단체로서 정치성을 띤 규탄성명을 대외적으로 발표하기는 곤란함”(2016070062, 42쪽) 등의 표현을 써가며 난처함을 드러냈다.

실종자 가족들을 비롯해 상식을 지닌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바랐던 것은, 꼼꼼한 수색과 철저한 조사였을 것이다. 바로 그런 부분에 외교력이 집중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부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었던 듯싶다. 곧, 대북규탄이다.

예컨대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전두환 신군부의 사조직 ‘하나회’ 출신)는 “북괴 주체사상 비판 저서를 출판한바 있는 비엔나대 … 교수부부를 오찬에 초청”해 언론을 통한 북 비판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2016070064, 46쪽). 이탈리아 주재 대사의 경우, 규탄 기사를 써준 최대 주간지 기자와 관련해 “협조 유대가 깊은 친한인사인바 필요시 활용을 위한 지원비용” 조치를 건의한다(2017070086, 171쪽).

정부 입장에 어긋나면 색깔론 공격

반대로 정부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조에 대해서는 매서웠다. 캐나다 토론토 주재 총영사는 문제의 기사와 관련된 독자편지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친공산주의자들(COMMUNISTIS AND THEIR SYMPATHIZERS)을 제외한 모두가 북의 국가 테러행위의 악명을 인식하고 있다”며 “북 공산주의자들이 해당 기사에 대해 기뻐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2016070058, 25쪽).

   
▲ 미국 LA 총영사는 외교부 장관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기고문을 문제삼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미국 주재관의 경우,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교수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은 글에 대해 “북괴가 KAL기 사건을 규탄하는 국제여론이 비등하자 친북학자인 BRUCE CUMINGS를 동원, 동 기고문을 기고케한 것으로” 판단하고 대책을 고민했다(148쪽). 전형적인 색깔론 공격이다.

스리랑카 자유당 기관지가 한국 대사의 기자회견을 비난한 “친북단체” 성명을 게재한 것 관련해서는, 자유당 공천이 예정되어 있던 인물에게 “친북단체 성명 게재는 신중을 가하도록하는 당내여론을 조용히 유도토록 종용”하기도 했다(2017070086, 68쪽).

색깔론과는 좀 다른 맥락에서, 당시 한국 언론이 김현희의 미모를 부각시키며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고 알려진다. 해외 언론도 마찬가지다.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 <Jyllands-Posten>은 “미인 김현희”라는 표현을 썼고(2017070084, 184쪽), 볼리비아 신문 <El Diario>도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말을 제목에 포함시켰다(2017070086, 164쪽). 오스트리아의 최대 일간지 <Kronen Zeitung>은 김현희를 “예쁘고 해를 끼치지 않을듯한” 공작원으로 그렸다(2016070064, 48쪽).

금도 재조사 요구하는 실종자 가족들

이상으로 10회에 걸쳐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를 나름대로 살펴봤다. 이 자료들은 2016년 정보공개 청구로 열람했던 진실화해위원회 기록에 포함됐었는데, 그때는 시간 및 장소의 제약으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번에는 좀 여유롭게 볼 수 있었는데, 그렇더라도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리한 내용이 더 있지만 여기서 마칠까 한다. 연재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문서를 공개한 외교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국정원은 이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무지개 공작’ 문건을 전면적 또는 충분한 수준에서 공개해야 한다).

1987년 12월 8일, KAL858기 승무원 가족들과 대한항공사가 면담을 했다. 가족들은 “사고이후 아직까지 위치파악도 못하고 있느냐? … 수색을 과학적으로 해라. … 사고 원인에 대해 아직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2016070041, 85-86쪽). 며칠 뒤 가족들은 김포공항에서 시위를 벌인다.

그 가운데 1명이 “실신”해서 병원으로 후송되는데, 바로 차옥정 전 KAL858기 가족회장이다(2016070042, 82쪽). 차옥정 전 회장을 비롯한 많은 실종자 가족들이, 지금도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32년이 되는 올해도 시위를 한다. 이 가족들이 또 실신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를 어찌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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