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부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KAL858기 관련 문서를 대량 공개했다. 주UAE 한국대사관이 사건발생 당일인 87년 11월 29일 오후 5시 30분에 KAL858기 항로와 탑승인원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외교부가 32년 만에 공개한 외교문서를 통해 KAL858기 사건을 재구성해 볼 때 혐의자 체포는 기적에 가까웠고, 극적인 역할을 한 ‘수훈 갑’은 단연 유시야 주 UAE대사관 참사관이다. 또한 가장 큰 미스테리를 남기기도 했다.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출발 아부다비와 방콕을 경유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KAL858기가 115명의 승객(한국국적 113명)을 태운 채 실종됐다. 최종 교신지점은 아부다비와 방콕 사이 버마(미얀마) UDIS 지점이고 다음 교신지점인 TOVOY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비행기와 승객이 바다 상공에서 감쪽같이 ‘실종’된데다 목격자도 없어 사건 초기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 이후 이 사건 혐의자로 지목된 하치야 마유미(김현희)와 하치야 신이치(김승일)는 이미 바레인 리젠시호텔로 이동해 유럽행 티켓을 예약해뒀다. 자칫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주 UAE 대사관은 사건 당일인 11월 29일부터 다른 대사관이나 정보기관들과 달리 매우 정확한 정보를 발신하기 시작한다. 이날 오후 5시 30분 외교부에 KAL858 운행 경로와 시간, 탑승객을 당시로서는 가장 정확하게 보고했다. 승무원 20명을 포함 115명이 탑승했고 강석재 총영사 내외가 포함됐다는 것.

특별히 눈에 띄는 보고 내용은 “아부다비 출발시에는 동항공기가 양호한 상태였다함”이라는 대목이다. 사건 발생 전에 이미 모종의 파악이 있었던 것.

▲ 주UAE 한국대사관은 12월 3일자 보고에서 유시야 참사관이 사건 하루 전인 11월 28일 나우식 KAL858 부기장과 만찬을 가졌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2월 3일자 주UAE 대리대사의 외교부 보고 공문에 관련일지가 등장하는 데 사건 하루 전인 11월 28일(토) 오후 7시, “유참사관은 문제의 항공기에 탑승 예정이었던 나우식 부기장(사망추정)과의 만찬, 동항공기 항속거리 및 제원등에 대한 의견청취”했다는 것이다.[AEW0349, V2.0037]

이어 “나부기장과 만찬시 얻은 정보로 동항공기는 방콕이원 2시간(홍콩정도)밖에 연료가 실려있지 않음을 감안 방콕도착예정 8시간정도 지난 현재 납치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 아부다비 하선 15명에 대한 조사실시”에 나섰다. 이미 하루전에 사고기 KAL858 부기장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발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

유 참사관은 대한항공측에 아부다비에서 내린 15명의 명단을 제출받아 “일본인 2명외에 용의점 희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30일 정오 일본대사관 참사관에게 소재파악 등을 의뢰했다.

이날 오후 8시에는 주바레인대사관 김정기 서기관 자택으로 전화해 용의자들이 바레인 리젠시호텔에 머물고 있고, “동인들의 동정을 위한 직접접촉을 요청, 가능하다면 바레인 당국에 출국정지 요청토록하고 동인들이 12.01.08:30. 암만경유 로마향발 예정임을 전달”했다. 혐의자들의 동선과 비행티켓 예약 상황을 손바닥 살피듯 알고 상황을 사실상 주도한 것이다.[AEW0349, V2.0038]

이에 따라 바레인대사관 김정기 서기관은 30일 저녁 리젠시호텔을 방문, 하치야 신이치와 한자로 필담을 나눴지만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고, 유 참사관은 필담 내용 중 하치야 신이치가 12월 2일 출국 예정이라고 한 점에 착안, ‘탈출시도 가능성’으로 판단해 김 서기관에게 재차 연락해 긴급출동을 요청해 결국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이들을 체포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도 협조해 혐의자들이 소지한 일본 여권이 위조된 것으로 신속히 확인, 바레인 공항에서 이들을 체포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KAL858기 사건 발생 초기 대응 과정에서 유 참사관의 역할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 정확했고, 일본 당국의 위조여권 확인 등 발빠른 대응 역시 통상적인 수준보다 기민했다.

특히 혐의자들이 묵고 있는 리전시호텔로 일본 동경(도쿄)에서 정체불명의 6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11.29-12.1. 간 바레인 리전시 호텔에 6회의 전화가 동경으로부터 걸려갔는바, 이것은 모두가 일본 보도기관이 걸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음”이라고 보고했지만[JAW-7093, V3.101] 외교부는 “일본 언론 기관이 11.29와 30일에 하찌야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 사실 재확인 보고 바람”이라고 의문을 표하고 일본대사관에 재확인을 지시했다.[WJA-5508, V3.0148] 뭔가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선 정보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흔적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 유시야 참사관은 바레인 김정기 서기관과 나란히 대통령표창이 상신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어쨌든 이처럼 혁혁한 공로를 세운 유시야 참사관에 대해 외교부는 “허철 서기관 대신에 유시야 참사관으로 하여금 마유미 신변 인도 항공편에 동승하여 귀국토록 조치 바람”이라는 전문을 보냈고[WAE208, V3.0147] 마유미 한국 인도 공로로 김정기 주바레인대사관 서기관과 나란히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비록 차관보들의 훈장보다 격이 낮은 대통령표창이었지만 실제 공로로 치면 단연 ‘수훈갑’인 셈이다.[KAL기 폭파 혐의자 인수 관련 조치 사항, V4.0258]

참고로 안기부 수훈 대상자로 추정되는 이들은 이번 공개문서에서도 검은색으로 이름이 지워진 상태로 남겨졌다.

KAL858기 사건 발생 하루 전에 부기장과 운명적인 만찬을 갖고 더구나 ‘항속거리’, ‘제원’ 등에 대해 의견을 미리 청취해 둔 뒤 사건 발생 직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 정확한 대응에 나서 혐의자를 체포한 일등공신 유시야 참사관이 아니었다면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의 운명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사건으로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낙인찍힌 북한의 운명까지... 역사에 만약에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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