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진 KAL858기 대북규탄 작업에는 1988년 2월 9~24일까지 열린 ‘항공법에 관한 국제회의’도 포함됐다. 이 회의는 유엔 아래에 있는 전문기구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부를 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주최했다.

노재원 당시 캐나다 주재 대사(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외무위원장 역임)는 1988년 1월 19일 이곳을 방문한다. 그런데 국제민간항공기구 사무총장은 면담에서 “회의 의제가 이미 국제공항 안전으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의정서 심의과정에서 동건[KAL기 사건]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다만 회의가 시작될 때 기조연설에서 발언하는 것은 괜찮다는 의견을 덧붙인다(34137, 45쪽).

노재원 대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미국 대표도 접촉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이미 의제가 확정되어 표제건을 제기하기에는 적당치가 않다는 의견을” 듣게 된다(56쪽). 이와 같은 부정적 입장에는 무엇보다 항공법 회의 의장을 맡게 될 캐나다 외무부 법률과장도 함께했다. “KAL 폭파사건이 금번 회의 주요의제와는 다소 별개의 성격일것임에 비추어, 회의진행 자체에 DAMAGE[피해]를 초래할 우려가있다”는 것이다(131쪽).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의 논의

의제가 이미 정해진 회의에, 그것도 대북규탄이라는 정치적 성격이 짙은 항목을 보태려는 한국의 태도는 우방국은 물론 회의 주최측을 곤란에 빠뜨렸다. 고민을 거듭하던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아사드 코타이트 당시 이사회 의장이 몬트리올 주재 총영사를 상대로 직접 면담을 요청하게 된다.

▲ 주몬트리올 총영사가 외교부 장관에게 '항공법회의' 제목으로 발송한 공문(34137, 165쪽). [자료사진 - 통일뉴스]

코타이트 의장은 이 자리에서 “회의목적과 무관한 구체적인 CASE[사례]를 인용하는 것을 삼가함으로서 아국이 회의진행에 최대한 협조하여 줄것을 간곡히 당부”했다(165쪽). 이에 한국측은 회의를 방해할 의도는 없으며, 이 사건이 회의 의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제민간항공기구는 회의의 목적을 다시 설명하면서 KAL858기와 같은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재강조”한다.

회의에 참여할 정부 대표는 박쌍용 당시 외무부 차관(노태우 정부 초대 유엔 대사)이었는데, 회의를 앞두고 국제민간항공기구와 면담 자리를 가졌다. 박쌍용 차관은 회의 관계자들에게 정부의 입장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여전히 조심스러워했다. 코타이트 의장은 “금번회의의 법적, 기술적 성격에 유의 동 사건 언급을 6-7분내로 하여 줄 것을” 부탁했다. 캐나다 외무부 법률과장 역시 “한국측이 회의 성격을 감안, 회의가 원만히 진행되도록 협조하여 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213쪽).

그러나 이 회의를 정치적 기회로 여겼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곧, “북한을 규탄하는 구절이 포함될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234쪽).

정부의 무리한 접근 방식

1988년 2월 9일 회의가 시작되었는데, 첫날에는 북쪽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민간항공기구 의장은 한국을 마지막까지 설득하려 했다. 박쌍용 차관이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대표단 좌석에 와서 … 가급적 북한을 지칭하지말것과 지칭이 불가피하면 자극 적인 표현이되지않을것을 간곡히” 요청했다(244-245쪽). 회의 주최측이 정부의 태도를 얼마나 우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연설도중 불가리아 및 쏘련[현재 러시아] 대표가 각각 북한의 불참에 언급하고 수석대표의 연설이 의제와 직접 관계없는 내용이라는 의사 규칙 발언을” 했다. 회의 의장은 한국이 “의제에 관련된 발언을 하여주기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쏘련대표는 … [박쌍용 차관의] 발언 내용이 ICAO 회의의 전통과 관행에 어긋났다고 말하고, 북한대표의 불참임을 고려할때 아국대표의 발언이 객관성을 갖추지 못한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 대표는 “사건에 대한 조사 절차와 결과가 일방적이고 증거를 확립하지 못하였으며, 미리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는 취지로 발언”한다(248쪽).

2월 11일에는 의장직을 맡은 캐나다 외무부 법률과장이 대표단을 찾아와 북쪽의 제안을 전달했다. 회의록에서 “대한항공기 관련 부분의 삭제에 동의하면” 북이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절대로 동의할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274쪽).

이에 북은 다음 날 회의에서 연설을 한다. 한국은 중간에 북의 “발언내용이 의제와 무관한 정치선전이므로 발언을 중지시켜 줄 것을 요청”하고, 의장은 (한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북에 의제와 관련된 발언만 하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되고, 칠레를 비롯한 몇몇 국가가 항의를 한다. 그리고 북이 1986년 김포공항 사건이 남쪽의 조작이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자 마이크가 꺼지기도 한다. 이에 북쪽은 KAL858기 “사건내용이 밝혀져야 하며 이를 위하여 ICAO 회원국의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연설을 마친다(279-280쪽).

한국은 곧바로 발언권을 얻어 반박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가리아가 의제에서 벗어난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고, 관련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된다(34255, 52쪽).

정치적 대결로 얼룩진 회의

이처럼 항공법에 관한 국제회의는 국제민간항공기구가 우려했던 것처럼 남북/북남의 정치적 대결로 얼룩졌다. 물론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이 회의를 통해 “대북 규탄효과를 제고”했다며 만족해했다(15쪽). 그리고 노재원 대사에 따르면, (조직 차원에서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국제민간항공기구 법률국장은 남쪽 대표단이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34137, 282쪽).

▲ 주몬트리올 총영사관이 외교부장관에게 '대한항공 858기 사간 ICAO 제기' 제목으로 발송한 공문. (34137, 54쪽).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편 정부는 1988년 3월에 열린 국제민간항공기구 이사회 회의에도 참관국으로 참석해 사건을 제기하려 했고, 이를 관철시킨다. 참고로 코타이트 의장은 “사건의 제기가 정치정[정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처음에는 이 계획에 부정적이었다(54쪽).



(수정, 2020.7.8.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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