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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버마 아웅산 사건과 증거 문제<기고> 외교부 KAL858 문서 공개 (9) -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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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6  0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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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정보공개 청구로 외교부 문서를 포함한 KAL858기 자료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올해 공개된 비슷한 자료를 다시 보며 분명해진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1983년 아웅산 사건과 1987년 대한항공기 사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아웅산 사건은 북쪽이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역에 폭탄을 설치해 1983년 10월 9일 고위 관료와 수행원 등이 죽었다고 알려진 사건. 전 대통령은 행사에 늦게 도착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KAL기 사건을 북의 테러로 여기는 첫 번째 이유는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의 “자살기도”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공식 수사발표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은 바레인에서 음독자살을 시도했는데, 그때 현지에 급파됐던 안기부 요원이 3명 있었다. 이들은 “랑군(버마의 수도 양곤) 사건때 수사를 담당한 전문가”였다(2016070040, 124쪽). 1987년 12월 초에 쓰여진 듯한 “KAL기 추락 사건 원인 규명(북한 공작원에 의한 폭파로 간주되는 이유)” 문건을 봐도 그렇다. 이에 따르면 KAL기 사건이 북의 테러로 여겨지는 첫 번째 이유는 “자살기도”다. 곧, “북한은 자신들의 범행이 발각되는 경우” 자살을 시도하는데, “랑군 암살 폭발 사건시에도 진모, 강민철 두 범인이 체포 되었을 때도 수류탄으로 자폭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2016070041, 161쪽).

1983년 아웅산 사건과의 연관성

김현희와 동행했던 김승일의 위조여권도 마찬가지다. 위 문건에 따르면, 여권 위조에 “미야모토 아키라(한국명 이경우)”가 관여했는데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북 “간첩망의 중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랑군 암살 폭발 사건에 관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163쪽).

1987년 12월 18일 외무부가 재외공관장들에게 보낸 “KAL기 폭파사건 관련 대주재국 홍보 지침”도 주목된다. 정부로서는 세계에 북을 “국제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버마 랑군 아웅산 사건” 등의 사례를 들어 KAL기 사건을 홍보하라는 것이다(2016070045, 260-261쪽).

그래서였을까. 예컨대 남홍우 당시 가나 주재 대사는 KAL기 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에 “이어 북괴만행 현장을 보여주는 랑군사태에 관한 영화(도발과 만행의 현장)을 상영”했다(2016070066, 75쪽). 이처럼 초기에 KAL858기 사건을 북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아웅산 사건이다.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증거’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본다면, 이는 KAL기 사건 자체의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과거 사건을 통한 정황증거, 또는 심증 확보에 주력했다고 일러준다. 다시 말해, ‘북이 어떤 집단이냐? 과거 아웅산 사건을 저지른 테러 집단이다. 그러니 KAL기 사건도 틀림없이 북이 했다’라는 논리가 나온 것이다(물론 이는 아웅산 사건이 북의 테러라고 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참고로 이 사건이 남쪽의 자작극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강진욱, <1983 버마>).

KAL858기 사건의 속성상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북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김현희라는 폭파범의 ‘자백’ 외에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물증’의 중요성은 자료의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물적 증거가 있었다면”

예를 들어 공식 수사발표가 있었던 1988년 1월 15일, 말레이시아는 대북규탄 성명을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사결과가 “범인의 자백만에 의한것인지 여타 물증이 있는지를 문의”했다(2016070068, 67쪽). 캐나다 역시 대북규탄 성명에 대한 요청을 받았는데, 발표에 시간이 걸리는 것과 관련해 “조사 내용이 대부분 범인 김현희의 자백에 근거하고 있어, 동 사실을 법률적면에서 정부성명문으로 연결시키는데 다소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2016070058, 15쪽).

그 뒤 성명을 발표한 캐나다는 사건이 북의 “국가테러 행위라는 인식에있어서는 … 모든 관계자들이 의심하지아니하였으나, 이번 사건과 북괴 정부를 직결 시킬수있는 물적 증거가 있었다면” 더 강력한 성명과 행동도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22쪽). 북이 개입했다고 믿지만 물증이 없다고 본 것이다.

1988년 2월 25일치 문서를 보면, 유종하 당시 벨기에 주재 대사는 유럽의회의 대북규탄 결의안 추진을 위해 노력했는데, 20명 정도의 의원과 접촉한 결과 “북한을 결정적으로 규탄하는데는 확정적 증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견해”가 있었다(2016070063, 147쪽). 또한 같은 달 유럽공동체(현 유럽연합) 의장국은 서독이 맡고 있었는데, 박근 유엔 주재 대사에 따르면 유엔의 서독 대사가 “자백을 한 여인(김현희)외에 어떤 다른 증거를 갖고있는지” 물어왔다(2017060073, 12쪽).

몇몇 해외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 후쿠오카의 <니시니혼신문>은 1988년 1월 17일 사설을 통해 “물증이 없기는 하나 한국측 발표전체가 신뢰할 만”하다고 밝힌다(2016070059, 105쪽). 공식 수사발표를 믿는 입장에서도 물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증거 부족의 문제는 결국 여러 가지 의혹 제기로 이어진다.

태국의 영문 일간지 <The Nation>은 1988년 1월 16일 사설에서 김현희가 언급한 김정일 친필지령과 관련, 일개 “공작원은 누구에게서 지령이 왔는지 알 필요가 없다”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김정일이 비행기 폭파로 서울올림픽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믿기 어렵다”고도 했다(2017070084, 103쪽). 그럼에도 이 신문은 사건이 “북의 공작(A NORTH KOREAN PLOT)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힌다(104쪽). 수사발표가 맞지만 해명되지 않은 점들이 있다는 얘기다.

“더욱 철저하고 독립적인 조사”

   
▲ 외교부가 공개한 문건을 통해 북측이 국제조종사연맹의 질문에 답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러니 수사발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어땠겠는가. 1988년 2월 2일 북은 국제조종사연맹이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남한측은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과 절차에 따른 사고 원인 규명과 사고기 잔해 및 항공 기록기기 등 사고조사에 필요한 증거수집을 하기에 앞서 사고책임을 우리측에 돌렸음”(2016090591, 61쪽).

미국에서 활동하던 스탠리 폴크너 변호사도 1988년 1월 29일, 김현희의 자백 자체에 의혹을 제기하며 “더욱 철저한 조사 … 독립적인 조사(a more thorough investigation … an independent investigation)”가 필요하다고 유엔 서독 대표부에 편지를 보낸다(2017060071, 66-67쪽). 수사발표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그랬지만, 결국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의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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