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흔히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생명으로 한다고 이야기된다. 물론 (공정성과 객관성의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를 떠나) 이 원칙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KAL858기 사건 관련해 국내 언론이 ‘받아쓰기’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곧, 언론이 적극적인 취재나 검증 없이 정부 자료를 거의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면 해외 언론은 어땠을까?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일부’ 해외 언론 역시 받아쓰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대사관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 정부가 바라는 기사나 논평을 써냈다. 핀란드 일간지 <Länsi-Suomi>는 1988년 1월 28일 편집국장의 글을 통해 “북한의 테러행위를 신랄히 비난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대사관의 “협조요청에 의한것”이었고, 편집국장은 대사관이 “88언론인 방한초청 대상자로” 추천한 언론인이었다(2016070062, 194쪽).

▲ 핀란드 대사가 외교장관에게 보낸 "KAL 기 사건 홍보활동결과" 공문. "동 기사는 당관의 협조요청에 의한것인"이라고 명기돼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쪽을 비난해서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글을 썼다기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대사관이 원했던 논조의 글을 그대로 써냈다는 것이다.

해외 언론 상대로 대북규탄 유도

덴마크의 주요 일간지 <Jyllands-Posten>은 1988년 1월 24일 “북괴 김정일을 국제테러 원흉으로 상세히 해설,비판한 대형 해설 기사를” 실었는데, 이는 “KAL기 폭발사건 관련 북괴규탄 홍보의 일환으로 유도”된 것이었다(118쪽). 홍콩 주재 총영사는 “주요언론에 사설게재 협조요청 및 협조제공” 활동을 했고, 이는 1988년 1월 18일 <South China Morning Post>와 <The Asian Wall Street Journal>의 사설 게재로 이어진다(2016070068, 10쪽). 말레이시아의 <Malay Mail>은 1988년 1월 24일 기사를 통해 KAL기 사건은 “김정일의 지령에 의한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편집국장이 대사관의 “요청으로 직접 집필”한 것이었다(78쪽).

포르투갈의 <Capital>은 사건 관련해 북한대사관을 폐쇄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이 역시 한국대사관의 “홍보활동 결과”의 하나라 할 수 있었다(2016070062, 197쪽). 코스타리카 <La Prensa Libre>의 경우 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1988년 1월 18일 “한국 비행기 실종은 테러 행위에 기인”이라는 제목으로 정부 자료를 “전문 게재”했다(2016070058, 90쪽). 그리고 어느 “친한 언론인”은 코스타리카 최대 유력지 <La Nación>에 1988년 1월 30일 대북규탄 논평 기사를 냈는데, 마찬가지로 대사관 홍보 활동의 결과였다(2017050042, 19쪽).

베네수엘라 최대 일간지 <El Universal>의 경우 1988년 1월 20일, 한국대사관이 전달한 수사결과 및 정부 성명을 “거의 수정없이 전면 게재”했다(2016070058, 161쪽). 파라과이의 주요 일간지 <La Tarde>는 1988년 1월 20일 “북괴 테러를 규탄하는 사설”을 실었고, 이 역시 대사관이 “북괴규탄기사를 게재토록 노력하여 온” 결과였다(167쪽). 과테말라의 <El Gráfico>는 1988년 1월 21일치 사설 및 논평란에 대사관이 제공한 “수사내용 및 설명자료에따라” 글을 실었다(173쪽). 페루 주재 대사는 최대 일간지 <Expreso>의 “부주필을 접촉 … 2-3일내 북괴 규탄사설 게재”를 약속받기도 했다(174쪽).

세네갈 주재 대사관은 <Le Soleil>에 대북규탄 “기사 유도를 위해 약1주일동안 각종자료”를 제공했고, 결국 편집국장은 1988년 1월 25일 논평을 쓰게 된다(2016070066, 114쪽).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Trinidad Guardian>은 1988년 2월 13일 대북규탄 사설을 실었는데, 이는 신문사의 사장 겸 주필이 직접 쓴 것으로 대사관의 “사전조정에의한” 글이었다(2017050042, 93쪽).

한편 북쪽도 해외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파키스탄의 국영 언론 <Pakistan Times>는 최웅 당시 파키스탄 주재 대사(전두환 신군부의 사조직 ‘하나회’ 출신)의 기자회견 내용을 1월 24일 “스포츠면”에 실었다. 기자회견은 1월 18일에 있었는데, 대사관에 따르면 북쪽이 편집장과 조판공을 “매수”해서 그날 저녁 인쇄 직전에 기사가 삭제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른 기자가 기사를 썼지만 이 역시 삭제되어 며칠 뒤에야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2016070069, 153쪽).

국경없는 언론 통제

한국대사관들은 주재국 언론을 통한 대북규탄 활동에 힘을 기울였고,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을 때는 적극 나섰다. 독일의 <Frankfurter Rundschau>는 1988년 1월 16일 정부의 수사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자 독일 주재 대사관은 신문사에 “귀지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로서 완전히 주관적인 인상에의한 근거없는 보도이며 … 응분의 시정조치를 바란다는 요지의 항의서한”을 보냈다(2016070062, 186쪽).

▲ 캐나다 대사가 외교장관에게 보낸 "GLOBE MAILl 지 대한항공 폭파사건 기사" 제목의 공문. 신문과 신문사 기자에 대한 "제재방안"을 언급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캐나다의 <The Globe and Mail>의 경우 동경 특파원이 한국을 방문하고 취재한 기사를 1987년 12월 4일 실었는데, 여기에는 조총련이 북 관련성을 부인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그러자 노재원 당시 캐나다 주재 대사(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외무위원장 역임)는 “금번사건이 북괴에 의하여 자행된 사실에 의구심을 나타낼지도 모르게 보도되어 있으므로” 정부가 적절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신문사와 “기자에 대한 제재방안등에 대하여는” 나중에 건의를 하겠다고 보고한다(2016070058, 16쪽). 이후 대사관은 신문사에 공보관 이름으로 항의서한을 보내는데, 해당 기자에 대해 “제재”를 가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에 국경은 없었다.

 

(수정, 23:39)

관련기사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