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흔히 먹지라고 말하는 묵지(墨紙)는 언제 발명되었을까? 먹지는 한쪽 또는 양쪽 면에 검은 칠을 한 얇은 종이를 말한다. 이러한 먹지를 종이 사이에 끼우고 골필(骨筆)이나 철필(鐵筆)로 눌러써서 한꺼번에 여러 벌의 복사본을 만든 시기가 있었다.즉 복사기가 발명되어 사무용기기로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을 동사무소나 읍⸱면사무소에서 떼려면 등서(謄書) 방법만이 있었다. 복수(複數)의 등본을 뗄 때 먹지를 사용하여 볼펜으로 눌러써서 복수의 등본을 제작하였다.먹지를 사용
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60~70년대의 자력갱생, 간고분투, 높은 창조력' 강조"국가경제발전의 큰걸음을 내짚는 해"북은 2022년 12월 26~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이하 "전원회의")를 진행했다. 여기서 북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2021~2025)의 3년 차인 2023년을 "국가경제발전의 큰걸음을 내짚는 해"로 규정하고 경제 전반의 생산 활성화, 8차 당 대회(2021.1.)에서 결정한 정비보강 계획의 기본적 종결을 경제의 중심 과업으로 결정했다. 특히 경제 부문별 핵심 과제를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책은 그 바탕이 무엇이었건 대체로 아래와 같은 발달을 거친다. 즉, “필사본 시대 ⟶ 목판본 시대 ⟶ 목활자본 시대 ⟶ 금속활자본 시대 ⟶ 활판인쇄술 시대 ⟶ 옵셑인쇄술 시대 ⟶ 전자출판 시대” 등이다.물론 목활자본 시대에 교니(膠泥)활자가 있었고, 금속활자본 시대에도 목활자나 바가지(匏)활자 도(陶)활자 상아(象牙)활자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근대식 활판인쇄술 시대에 등사본인쇄라든가 석판인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그 시대의 가장 발달한 인쇄술의 주종은 아니었다.또한 이러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 점토판과 죽간 및 목간고대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점토판은 인간이 기록을 남긴 최고(最古)의 매체이다.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주로 죽간(竹簡)이나 직물(특히 帛書) 기록을 남겼다. 백서(帛書)는 서사용(書寫用) 비단을 의미한다.죽간(竹簡)은 대나무를 얇고 가늘고 길게 자른 것을 말한다. 나무를 대나무보다 좀 넓게 잘라 만든 것은 목간(木簡)이라 한다. 대나무로 만든 죽간은 가죽으로 연(連)이어 문헌을 적어 넣어 축본으로 만든 것이 보편적이고, 나무를 잘라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연재를 시작하며순암 안정복의 저서 가운데 『잡동산이(雜同散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유서(類書)이다. 즉 백과사전의 일종인 셈이다. 이 ‘잡동산이’란 서명(書名)에서 ‘잡동사니’라는 말이 나왔다. ‘잡동사니’란 “잡다한 것들이 한데 뒤섞인 상태”를 말한다.지난 47년 동안 내가 보아온 문화재에는 잡동사니가 많다. 그리고 나는 여러 잡다한 것에 뒤섞여 있는 천하에 유일한 문화재를 찾아내기도 하였다. 잡동사니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버릴 수는 없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이번 회로 이 연재를 마치면, 3월 하순부터 다른 주제의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현재 정해 놓은 제목은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新) 잡동산이(雜同散異)』이다. 주로 책과 문화에 관하여 쓸 것이다.이번 52회에서 나는 총 맺음말을 준비하였었다. 그러나 불법을 밥 먹듯 행하는 소송전으로 인하여 지난 10여 일을 정신없이 보냈기에 거창한 총 맺음말을 대신하여 이렇게 내 삶에 있어 미완의 사업에 대하여 소박하게 언급하고자 한다.1. 미완의 이준 사업아마도 필자만큼 이준(李儁, 1859~
분노는 산(acid)과 같아서, 퍼붓는 대상보다는 그것이 담긴 그릇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 마크 트웨인우리나라에도 이런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다. 책 표지에는 저자를 ‘일본 최고 분노 조절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는가?’라는 부제가 무겁게 다가온다. 최근 우리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거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사실 이 책을 이야기하기에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이전 글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에서 쓴 글이다. 국가나 제주도의 정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만 진취적인 개인적 사고로 쓴 글이다.1. 우주센터와 공항지난 제49회 연재 「제주도의 우주산업」 ‘5. 우리 민족의 지식과 기술을 결집하자’에서 “제주는 지금 제2공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우주센터 건설 계획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하였다. 이 말은 제주에 우주센터를 만들려면, 이 사업을 확대해서 머지않은 미래에 우주공항까지 만들 확장성을 예비해 두자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다.그러므
사설조국통일의 선봉들에게 감사한다= 서울대 민통련의 결의문을 지지하며 =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은 3일 하오 5시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남⋅북한이 「소련과 미국의 실질적인 경제적 및 정치적 식민지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으며 「남북의 내 민족은 서로의 적이 아니라 이해와 협조와 동정을 아끼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우선 그 출발로서 「구체적인 학생회담과 학생교류가 단시일내에 실현될 것」을 결의하였다고 하며 이 결의문은 멀지 않아 열릴 전국학생민족통일총연맹 결성대회에서 재확인될 예정이라고 한다.서울대학교 민통련이 결성된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21세기의 경북 울진은 오지(奧地, 두메산골) 중의 오지가 되었다. 그러나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劉永國, 1916~2002) 화백은 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거장이다. 그는 “강렬한 색과 기하학적 구성의 울림으로 서사적 장대함과 서정적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라고 평가받는다.1. 유영국 화백의 약력유영국 화백은 1916년에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경성제2고보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문화학원 미술과를 졸업하였다(
자본주의가 착하냐 악하냐, 혹은 착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냐는 물음은 공허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냥 자본주의일 뿐이다. 민중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느냐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 윤리적 외피를 쓴 대안이 자본주의적 착취의 새로운 방식이 아닌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악한 면이나 악한 개별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넘어서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과제여야 한다. (본문 296쪽)먼저 하나 묻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착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지폐에 얼굴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제8기 제주 도정은 우주산업을 추진하려 한다. 그렇다. 우리나라도 우주로 진출하여야 할 것인데, 그 목표로 향해 나가고 있다. 나는 제8기 도정이 그러한 우주산업 진흥을 도정의 중대한 목표로 설정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우리 민족이 수천 년간 염원하여 온 하늘 여행에 대한 몽환은 이제 현실로 시작하는 것이므로 이는 분명 반가운 목표 설정이다.1. 83 우주과학박람회(SPACE SCIENCE EXPO ’83)꼭 40년 전인 1983년 4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 KBS
결의문 - 서울대학「민족통일연맹」 대의원 대회 - 허망한 미신을 버리고우리대로의 살길 찾자미⋅소의 「애교」가 우리를 잘살게 할 수 있느냐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에서는 남북문화교류의 전제로서 먼저 남북한학생들의 모임을 가지자고 제의하였다. 지난 3일 하오 5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구내다방에서 열린 동 대학교 민족통일연맹 대의원대회서는 이상과 같은 획기적인 결의문을 낭독 채택하였다.2천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결의문을 통하여 이들은 대립되는 양체재 속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없애기 위하여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서로의 감정을 융화시키는 문화⋅교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남과 북, 해외에 ‘민족미술공모전’을 제안한다민족사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한국(남)과 조선(북)이 대치 및 공존하는 남⸱북국시대이다. 지금 중국의 동북 3성이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어도 그곳의 현대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의 옛 미술은 신라나 백제의 옛 미술과 함께 지금 우리 민족미술사의 본류에 속한다.즉 현대 남과 북의 미술은 통일의 미래에 현재 분단시대의 미술사를 논할 때 우리 미술사의 본류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우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 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본문 47쪽)따져보면, 이른 바 글로벌 시대에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 바로 접니다. 주머니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은 까닭도 있겠거니와, 당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내재화된 놈이라 국내는 물론 국외 여행을 많이 가지 못했다.일을 위해 중국을 제일 많이 다녀온 것 같고, 신혼여행으로 태국 한 번, 그 이후 일본 여행을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많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부여잡고 독립운동의 혈투를 벌인 최고의 민족주의 집단이 있다면 홍암 나철(羅喆, 1863~1916)이 1909년 1월 15일 「단군교포명서」를 선포하여 중광한 대종교(大倧敎)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대종교는 타 종교에 비하여 크게 위축되어 있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대종교인은 3,766명으로 확인된다.1. 중광한 대종교필자는 대종교는 우리 민족종교의 핵심이라 본다. 나철은 새로운 가르침의 창교(創敎)가 아니라, 단군 성조의 가르침을 중
초점과 맹점 남북교류주장실현불원?학생들 주창에 보수정객도 눈뜨고통일의 첨병된 학생민족통일운동 〇... 후진국의 청년학도- 이들은 배우면서 실천해야할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다. 광녀의 머리처럼 헝클어진 구질서속에서 헤어나갈 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과 혼미를 뼈저리게 느낀 청년학도들은 상아탑속에서 안일하게 공부에만 열중할 수 없어 사회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일어서게 된 것이다. 사.이육의 감격도 일순-위정자에 대한 기대가 무산된 후 이들은 독재타도의 힘을 다시 통일의 전위대로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을 비롯하여 각대학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확인해 보니, 백두산 최정상부 장군봉과 북의 천지는 량강도 삼지연시이다. 한라산 최정상부와 백록담은 제주도 서귀포시(토평동)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은 갑작스럽게 올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은 백두산 화산 폭발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과연 백두산 폭발이 통일을 앞당겨 올까? 현실적으로 검토해 보자.1. 백두산 화산 연구를 위한 남북의 공동 노력이 있었다남북의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를 위한 협상은 크게 4차례 진행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중 앞서 3번은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강남을 비롯한 시내 곳곳이 물에 잠겼던 지난해 8월 8일 밤, 대통령은 상황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일가족 세 명이 참변을 당한 신림동 반지하 주택 현장을 찾은 대통령은 위와 같은 4차원적 발언을 했다. 그 모습을 또 정부는 촬영해서, 대통령이 ‘열일’하고 있다고 홍보했다가, 그야말로 욕이란 욕을 다 들어먹어야 했다.또 왜 8일, 대통령이 상황실에 안 가고 ‘칼퇴’를 했는지 묻자, 무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본 연재의 제42회~제44회에서 제3회 제주비엔날레 관련 비평은 도내와 도외에서 큰 반응을 불러오고 있다. 미술계의 한 언론인은 “그렇게 지적해도 일없겠냐?”라고 염려하더니만, “이 선생이 무슨 직책을 맡겠다고 욕심부리는 글이 아닌데‥‥‥”하며 나의 순수한 의도를 인정한다. 필자의 비평에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이고, 항의성 전화는 전혀 없다. 이제 나는 “어떻게 문화를 재창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예산을 집행할 것인가?”라는 대안의 일면을 제시하고자 한다.필자는 제44회 연재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