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특히 영화 ‘우리학교’의 히트와 월드컵 북한대표선수인 정대세 선수의 활약이 미디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도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구나 싶어 매우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미디어의 언설 중에 그려진 재일조선인의 이미지에 궁금함이 들었다. 재일조선인이라고 했을
3월 세 번째 일요일에 막내딸이 다니는 히가시오사까(東大阪)조선초급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큰딸도 아들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조선학교에는 대개 ‘어머니회’라는 엄마들의 단체가 있어서 학교 재정을 돕기 위한 바자회, 아이들을 위한 급식 그리고 학교 미화를 위한 일 등 무슨 일이든 다 맡아한다. 우리학교에서는 아이 하나에 유치원 때 한 번, 초급학교에서 한 번
서론 사할린주는 러시아 연방의 극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대륙, 동해와 태평양 사이에 있다. 59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러시아 연방의 유일한 사할린주면적은 87,100평방킬로미터이다. 사할린주는 사할린섬과 모네론섬, 쭐레니섬, 쿠릴 열도의 56개의 섬으로서 이루어져 있다.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의 섬들을 둘러싼 바다는 생물자원이 풍부하고 산은 동물
김붕앙(코리아NGO센터) 작년 일본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입관법)이 크게 변화했음은 이전 글( 참고)에서 소개한 바 있다. 7월 9일 시행 이후, 유감스럽게도 예상대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미나
저는 요코하마시 도츠카(?塚)구에 거주하는 재일한국인입니다.1970년 저는 국적을 이유로 히타치제작소에서 채용을 취소당했습니다. 그러나 요코하마 지방법원에 제소하여 1974년 국적에 의한 취직(민족)차별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받고 전면 승리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저는 히타치제작소에서 일하며 동일본대지진과 히타치와 도시바가 만든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
리홍장 (일본 조치대학 연구원)전번 기사의 시작 부분에서 「더블(ダブル)」인 후배 말이 계기가 되어 연구생활을 시작했다고 썼다. 그래서 내 연구는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더블」이「민족」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요즘 조총련이나 민단을 비롯한 민족단체에서 심각한 문제는 「조직이탈(組織離れ)
“입장이 다른 당신이 제 마음을 알리가 없어요” 나는 대학시절 어떤 재일조선인학생단체에서의 활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일본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다른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이 거의 없었던 6년간을 보냈는데 우연히 그 단체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재일 조선인으로서 느끼고 있었던 “삶의 어려움”을 같은
남혜경(사할린국립대학 한국어과 파견교수) 요즘 사할린 거리에는 우리 동양인과 피부색이 비슷한 사람들이 넘쳐 난다. 카프카스나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이 최근 수년 간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다. 키르키즈 출신만 보더라도 사할린한인 인구와 거의 맞먹는 3만명 가량이나 된다. 수도 모스크바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러한 현상에 슬라브계 주민은 적
일제 식민지 시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대가 일본으로 건너오셨다. 어쩌다가 이곳에 정착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재일 3세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나의 기억이 시작하는 곳은 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라는 지역에 있는 조선유치원이다. 내가 만으로 3살, 언니가 5살이 되는 해였고 남동생은 돌도 맞기 전이었다. 사이타마에 사는 동포들은 우리 유치원을 만들기로 작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