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포 소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일본, 중국 동포로서 한국 혹은 거주국에서의 일상과 그 삶 속에서 느끼는 문제의식, 울림, 바람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KIN의 ‘동포 소식’을 공동 게재해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요즘 사할린 거리에는 우리 동양인과 피부색이 비슷한 사람들이 넘쳐 난다. 카프카스나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이 최근 수년 간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다. 키르키즈 출신만 보더라도 사할린한인 인구와 거의 맞먹는 3만명 가량이나 된다. 수도 모스크바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러한 현상에 슬라브계 주민은 적지 않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사할린한인들이 러시아인들과 이웃하며 산지가 70여년이 되었다. 러시아어를 몰랐던 1세들과는 달리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은 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하면서 이웃으로 살아왔다. 한인들에 대한 제도상의 차별은 러시아 국적 취득과 함께 해소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했다고 2세들은 말한다. 버스 안에서 한국어로 말하면, “왜 러시아에 살면서 러시아어로 말하지 않는가? 우리 욕이라도 하고 있는가?”하면서 구박을 받았고, 시장에서 싸움이라도 할 때면 마지막엔 “거지들만 득실거리는 니네 나라로 가버려!”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 설움이 있었다. 이웃으로 살면서도 한인들과 러시아인들(물론 민족은 다양하지만 주류는 슬라브계) 사이엔 보이지 않는 가시 울타리가 걸쳐져 있었던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사할린한인들의 사회적.경제적 위상은 매우 높아졌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천대를 받는 일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차별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얼마 전 한인2세 아주머니가 빈정대는 말투로 이런 말을 했다.

“70년을 같이 살았는데 이제 와서 로스케들이 ‘우리’라고 말해주네. 요즘 카프카스나 중앙아시아에서 검은 머리들이 자꾸 자꾸 들어오지. 자기 민족은 자꾸 사할린에서 나가지. 그러니까 우리(한인들)한테, <당신들은 그래도 우리(러시아인을 의미)하고 오랫동안 같이 살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앞으로 남아 있는 ‘우리들끼리’ 더 사이좋게 지냅시다.> 이렇게 말하는거야. 참 기가 차서. 이제 와서 말이야.”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과거 20년간 사할린주 인구는 70만명에서 50만명으로 감소했다. 해마다 평균 1만명씩 줄어든 셈이다. 인구 감소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사할린을 포함해 극동지역 인구감소는 국가의 큰 근심거리며, 구소련지역 출신 이주자로라도 광활한 대지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소련시대와는 달리 최근 이주자들은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와 문화, 풍습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려는 의식이 강하다. 이런 모습이 주류 민족들은 달갑지 않고 또 나날이 이주자들의 경제적.정치적 힘이 강해짐을 느끼면서 위화감과 위기의식이 커져가는 듯하다.

불가리아 휴양지에서 한 중년부인-그녀는 유럽군에 2채의 주택을 구입해 둔 모스크비치다-은 이렇게 사할린한인 여성의 귀 밑에 속삭였다. “두고 보세요. 언젠가는 모스크바 주민들이 그루지야인들의 엉덩이 밑에 깔려 그들의 부림을 당할거에요. 그 때가 되면 우린 떠날 거에요.”하고.

사할린에서는 한인들이 주류민족의 ‘우리’라는 범주에 속하지만, 모스크바나 타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는 어떠할까? 카프카스나 중아아시아 출신 이주민들과 동급으로 취급 받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런 국내 사정이 2세들의 한국으로의 영주귀국 열을 더 하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국의 미래-경제적, 정치적-에 대한 불안감. 해외 곳곳에 자식들을 유학시키고 주택을 준비해 두고 하는 것이 ‘혹시나 그 때가 오면...’하는 불안한 심리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사할린의 인구는, 그리고 한인들의 인구는?


[필자 소개]

남혜경. 1964년생.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졸업.
오오사카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교육학)
최근 다년 간 구소련지역 한인사회 연구.
2006년 가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파견교수
사할린국립대학 한국어과에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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