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포 소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일본, 중국 동포로서 한국 혹은 거주국에서의 일상과 그 삶 속에서 느끼는 문제의식, 울림, 바람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KIN의 ‘동포 소식’을 공동 게재해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입장이 다른 당신이 제 마음을 알리가 없어요”

나는 대학시절 어떤 재일조선인학생단체에서의 활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일본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다른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이 거의 없었던 6년간을 보냈는데 우연히 그 단체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재일 조선인으로서 느끼고 있었던 “삶의 어려움”을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와 공유하고, 그 해결를 향해 배우고 활동하는 것에 대해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얻는 기쁨을 “삶의 어려움”을 견디는 재일조선인 후배들에게도 맛볼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일심으로 활동에 전념했다.

하지만 어느 날 위와 같은 말을 갑자기 후배한테서 듣게 됐다. 그는 재일조선인인 모친과 일본인 부친 사이에 태어난 소위 “더블”이다. 나는 “더블”도 일본 사회에 있어서 재일조선인으로서 시선을 받기 때문에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의 어려움”을 그와 공유할 수 있다고 믿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느끼고 있었던 또 하나의 “살기의 어려움”, 즉 재일조선인사회에 있어서의 “소외감”을 놓쳐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재일조선인은 해방 후 65 년 이상에 걸쳐 차별과 배제의 시선이 넘치는 일본사회를 살아 남기 위해 “민족”에 구애하고 무엇보다도 큰 가치를 찾아내 왔다. 한편 우리는 그 내막을 되묻는 작업을 게을리 해 왔던 것 같다. “핏줄”에 민족의 정통성을 찾아낸 결과 순혈주의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더블”의 존재를 주변화해 왔다. 나는 “민족”을 알고, “민족”에 구애하는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본질적으로 주어진 “민족”의 기만성도 알고 스스로 “민족”을 개신할 필요를 인식하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연구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연구의 원래 목적이었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는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게됨으로써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초 정체성 연구는 “일본”과의 이화(異化)와 동화를 극(極)으로 설정하고 그 사이의 그라데이션을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연구는 “민족”을 본질시하는 시점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민족”은 어디 까지나 사람이 만든 “구조물”로 파악해야 한다고 하는 “사회구축주의적 연구”가 정체성연구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회구축주의자들은 “더블”의 존재와 이야기를 순혈주의를 해체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그녀들의 정체성의 “복합성”은 칭양받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체성의 복합성을 칭양하는 반면, 그/그녀들이 직면하는 "현실"의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그녀들의 “삶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과연 유용한 것인가. 오히려 지금까지 재일조선인들이 쌓아올려 왔던 운동의 기초를 파괴 할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위에도 말한 것처럼, 나는 설령 “민족”이 구축물이라고 해도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재일조선인”으로 시선을 받는 한 일본사회를 살아 남기위한 생활과 운동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민족”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연구가 맡아야 할 역할은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은 다양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몇 번이나 연호하는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 직면하는 일본식민주의에 기인한 “민족적 현실(서경식)”을 치밀하게 밝혀 나가는 것이며, 각 개인의 “현실”을 연결하는 "민족"의 구체상을 그려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서 나는 재일조선인을 연구하고 있다. 내년 이후에는 나의 구체적인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필자 소개]

리홍장
교토대학 박사(문학). 사회학 전공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조치(上智)대학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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