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포 소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일본, 중국 동포로서 한국 혹은 거주국에서의 일상과 그 삶 속에서 느끼는 문제의식, 울림, 바람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KIN의 ‘동포 소식’을 공동 게재해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최근 한국에서 특히 영화 ‘우리학교’의 히트와 월드컵 북한대표선수인 정대세 선수의 활약이 미디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도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구나 싶어 매우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미디어의 언설 중에 그려진 재일조선인의 이미지에 궁금함이 들었다.

재일조선인이라고 했을 때의 이미지가 ‘재일조선인=조선학교 출신자’로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동시에 민족교육의 이해 또한 ‘민족교육=조선학교’로 이해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일본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며, 조선의 언어와 역사?문화도 알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필시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재일조선인의 다수파이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한국인은 재일동포로서 ‘같은 민족’으로서 인정해 줄까?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전혀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은 내가 조선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고급 2학년 여름방학, 어떤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일본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세대의 재일조선인들이 모여 조선어와 문화를 배우고, 같은 처지에 있는 ‘자이니치’끼리의 고민을 공유하는 ‘학생회’라는 단체와 함께 일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일동포를 찾아다니는 활동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일본 학교에 다니는 수가 동세대의 전체 ‘자이니치’의 80~90%를 차지하고, 조선학교에 다니는 내가 실은 소수파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같은 나이의 A로 기억한다. 그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일조선인임을 숨겨 왔지만 학생회 멤버들과 만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어. 실은 아직 학교 친구들에게도 자신이 ‘자이니치’임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이야...”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들보다 오히려 그들이 재일조선인의 소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듣고 나는 내심 부끄러워져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의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나는 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존재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뒤흔들 정도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단지 즐기고, 울거나 웃거나 하면 그것으로 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함께 하는 것이 ‘자이니치’다 라는 식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불확실한 의문을 옆으로 제쳐두는 것이 나에게는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선어를 사실은 잘 하지도 못하고 본국에 가 본적이 없어 잘 알지 못하며, 1,2세대와는 상황이 달라 같은 ‘민족’이냐는 물음에 잘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어찌됐건 ‘우리’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조금 추상화하면, 같은 처지의 재일조선인끼리 안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학교에 다니고 있어 같은 재일동포끼리 만날 기회(학생회에 오지 않는 한)가 없었던 A에게는 그런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다녔던 조선학교에 있었던 ‘자이니치 네트워크’는 일본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에게는 닫혀 있어 민족교육 안에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A와 나는 조선학교 안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것들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충격을 당시의 부끄러움과 함께 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
재일동포들끼리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일본 사회에는 전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보장되고 나서야 비로소 민족교육은 유효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른다거나 혹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고민하고 있는 재일동포에 대해서 ‘일본인이다’라든가 ‘민족심이 없다’는 등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

한국 정부.사회가 재외동포의 민족교육을 지킨다고 할 때, ‘올바른 민족’이 되기 위한 언어.역사.문화라는 ‘자격’을 몸에 배게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재일조선인끼리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커뮤니티)이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보장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학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학교와 같은 학교 교육 형태뿐만 아니라 1세 할머니들이 다니는 야간학교나 민족학급이라는 형태, 또한 사회인 등이 모여 한글을 배우는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와 같은 사회교육의 형태와 재일동포끼리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KEY의 한글강좌는 조선어 그 자체의 학습도 중요하지만, 찾아 온 자이니치 간의 커뮤니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이 무의식중에 느끼는 민족 차별이나 인종차별주의에서 기인하는 인간 소외를 안심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조선학교 이외에도 이렇게 민족교육을 지키는 방법도 있다.

*일러두기: 재일동포, 재일조선인, 자이니치 등의 용어는 일본어 원문대로 번역한 것임

[필자 소개]
량영성 (梁英聖)
재일코리안3세. 도쿄 거주.
재일코리안청년연합(KEY) 의 상근자.
KEY는 재일코리안 청년의 임파워먼트, 사회활동 등을 하고 있는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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