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산(acid)과 같아서, 퍼붓는 대상보다는 그것이 담긴 그릇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 마크 트웨인우리나라에도 이런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다. 책 표지에는 저자를 ‘일본 최고 분노 조절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는가?’라는 부제가 무겁게 다가온다. 최근 우리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거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사실 이 책을 이야기하기에
자본주의가 착하냐 악하냐, 혹은 착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냐는 물음은 공허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냥 자본주의일 뿐이다. 민중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느냐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 윤리적 외피를 쓴 대안이 자본주의적 착취의 새로운 방식이 아닌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악한 면이나 악한 개별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넘어서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과제여야 한다. (본문 296쪽)먼저 하나 묻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착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지폐에 얼굴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 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본문 47쪽)따져보면, 이른 바 글로벌 시대에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 바로 접니다. 주머니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은 까닭도 있겠거니와, 당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내재화된 놈이라 국내는 물론 국외 여행을 많이 가지 못했다.일을 위해 중국을 제일 많이 다녀온 것 같고, 신혼여행으로 태국 한 번, 그 이후 일본 여행을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많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강남을 비롯한 시내 곳곳이 물에 잠겼던 지난해 8월 8일 밤, 대통령은 상황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일가족 세 명이 참변을 당한 신림동 반지하 주택 현장을 찾은 대통령은 위와 같은 4차원적 발언을 했다. 그 모습을 또 정부는 촬영해서, 대통령이 ‘열일’하고 있다고 홍보했다가, 그야말로 욕이란 욕을 다 들어먹어야 했다.또 왜 8일, 대통령이 상황실에 안 가고 ‘칼퇴’를 했는지 묻자, 무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웬일인가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일본이 망했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 오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다. 가슴이 뛰고, 너무 어지러워 자리에 가서 잠시 누워야 할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패망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었다. 세상은 밤을 새워 가며 미칠 듯이 좋아라고 야단을 한다. 그러나 웬셈인지 우리나라 사람들(한국 교포들)은 나와 같은 맘인지 다들 멍하여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계속 발표되는 방송을 들으며 착잡한 생각에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24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인가를 단정하고 확신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낀다. 시원시원하게 ‘이것이 정답이다’, ‘이게 맞는 것이다’라고 말하기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제법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지혜로워진 것이라거나, 마침내 중용의 도를 깨우친 것이 아니라, 그저 온갖 풍파에 시달려, 갈수록 더 회색 인간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아무튼 그렇다. 특히 나의 어설픈 확신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큰 고통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그저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다.지난 해
평생에 걸쳐 한반도의 평화와 분단된 조국의 하나 됨을 위해 헌신한 박한식 미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의 회고록이 최근 발간됐다. 책의 제목이 그의 삶을 그대로 말해준다. “평화에 미치다”. 45년간 미국에서 정치학을 가르쳐온 세계적인 석학이자, 남북관계의 고비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한반도 평화의 초침을 돌리고자 했던 통일운동가로서의 삶은 그 자체로 빛난다. 회고록을 통해 박한식 교수는 남북갈등, 남남갈등, 북미갈등을 비롯한 현안을 역사적으로 심도 있게 성찰하고 있다. 대가의 간절한 이야기에 우리는 귀 기울일 수밖에
2년째 코로나19에 발이 묶여 인간들의 지구 여행이 거의 멈춤 상태였다. 관광업계는 물론이고 항공업계, 그밖에 관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인간들이 1~2년 자연을 괴롭히지 않았더니, 쓰레기로 그야말로 ‘쓰레기’가 되어가던 세계 곳곳의 유명 관광지들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12%가 관광산업에 의해 발생 된다니, 당연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인 코로나로 인해 자연이 회복되는 이 놀라운 모순.아, 그런데
그런 줄 알았다. 세상 모든 것은 피아의 구분이 분명하고, 즉 절대선과 절대악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때문에 메마른 성정이 더욱 거칠어졌고, 나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만날 때면 위화감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곤 했다. 형편없이 굴었다.이는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판단하기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떠든다고 생각되는 책은 가혹하리만큼 비판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 비난하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으로 본 것이다. 정말 형편없이 굴었다.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뭐 그저 자연적으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니
다시 지긋지긋한 역사의 반복이 시작될 기미가 보인다. 그 누굴 탓할 일도 아니지만, 왜 매번 이래야만 하는지 허탈한 마음이다.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자신했던 현 정부는 결국 ‘되돌리고’ 말았다. 미국 탓을 할 필요도, 북한 탓을 할 필요도 없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혼동한 것일까. 그 진정성을 이해한다 해도 결과는 초라할 뿐이다.곧 4·27 판문점 선언 3주년을 맞는다. 2018년은 기적의 해였다.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일순간 환호와 무한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적어도 국민들이 보기에
그 손을 기억합니다.그 뜨거운 마음을 기억합니다.2018년 4월 남북이 맞잡은 두 손은 두려움과 막연함을 반가움과 자신감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와 함께 걸은 그 길은 서러운 분단과 적대의 세월을 일순간 멈추어, 숨죽인 채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맞았고,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었습니다.하지만 2021년 3월의 지금은 다시금 우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아프게 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어떤 풍파가 닥치더라도 잡은 손을 놓지 말고 새로운
1950년 여름, 난리는 참혹했다. 남편은 “알아서 일단 남쪽으로 피신하라”는 연락만 남긴 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남편이었으니, 인민군에게 잡히게 되면 십중팔구 총살될 것이 빤했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집에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훗날 남편은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잡혀 ‘죽으러’ 끌려가다가 엎어치기로 두 병사를 때려눕힌 후 기적적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유도선수로 일정시대 일장기를 달고 일본에서 열린 유도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었다. 그 유도가 남편을 살렸다.허겁지겁 짐을 꾸렸다. 짐이랄 것도 없었다. 명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의열단 공약 제1조)설 명절 이후 약속이나 하신 듯 어른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이 땅의 민주화 그리고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백기완 선생님, 멀리 타국에서 일생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셨던 ‘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선생님, 5·18 당시 가두방송을 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의 맨 앞에서 시대를 불살랐던 전옥주 선생님까지.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남겨진 우리들은 황망하기만 하다.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현대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순간마다, 주어진 역사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미·중, 미·러 대결에 따라 거대한 세력 재편을 향해 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더욱 고도화되었다.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 외교의 고질인 이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난해한 지정학 속에 있는 나라의 경우, 외교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지 않은가? 이미 그런 일을 겪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주술을 깨야 한다. 한국 외교가 5대 수렁에서 벗어나 초당적, 국익 위주, 전략적, 정책적 외교의 길로 나가는 일은 4강에 둘러싸
“그럼에도 ‘탈북문제’와 ‘탈북 문제의 정치학’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탈북과 북한의 형상은 우리 안에 내재된 무의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진영에 있는 나라들은 한국 사회(혹은 미국 사회) 내부 문제를 직시하는 대신, 북한에 투영해 타자화시킨다. 기다렸던 민주화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여러 모순을 낳고 현재 체제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킬 때, 북한 인권 이데올로기는 이를 무마시키는 장치로 쓰여 온 것이다.”- 본문 11~12쪽, 박현옥 캐나다 요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추천사 중지난해,
199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부하는 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 2021년 지금까지 관련 분야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다. 우와, 도대체 몇 년이 지난 게냐.그동안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일반 시민들과 비교한다면 꽤 많이 북을 방문했다. 놀러 가기도 했고,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으로 공포에 질려있는(!) 아내를 데리고 금강산을 간 적도 있다. 물론 일하러 주로 많이 다녔다. 그리고 북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중국을 많이 다녔다.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지만, 참는다. 젠장.의외라고
‘결국’이라고 해야 하는지, ‘드디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2021년 1월 20일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퇴장하게 되었다. 전무후무하게 ‘지저분한’ 퇴장이다. 지난해 선거 직후부터 승리를 장담했지만, 그는 패배했다. 하지만 승복하지 않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둘로 쪼개버렸다. 급기야 지난 1월 6일에는 그의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켜 사망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그토록 자랑하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돌이켜보면 트럼프 4년은 미국은
지난 2019년 7월 발간된 『역사의 색 : 이토록 컬러풀한 세계사』라는 책이 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사의 여러 장면 중, ‘1850년부터 1960년까지 존재했던 가장 의미 있는 현장을 200장의 사진으로 압축’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와 제국의 등장과 몰락, 크고 작은 전쟁, 우주 시대의 개막까지’ 역사상 중요한 장면을 담은 흑백사진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컬러로 복원하고, 역사가가 그 사진의 전후 맥락을 소개한 책이다.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생생한 컬러로 확인하고, 사려 깊은 설명이 더해
이렇게 조용하게 새해를 맞은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2021년 신축년이 찾아왔다. 지난 한 해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얼마나 큰 충격과 고통을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담담함은 참담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새해를 맞았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올해 전망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다. 미국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통령이 마지못해 물러나고, 새로운 리더십이 출범한다. 우리의 경우는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를 맞았다. 이웃 일본
올해는 아무래도 별수 없을 것 같다. 과거와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이것이 특별한 상황이 아닌 평범한 일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마음을 짓누른다. 허무함과 함께,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르는 분노가 불안하다. 2020년은 그야말로 인류 역사의 전환기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말이 더는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