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무래도 별수 없을 것 같다. 과거와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이것이 특별한 상황이 아닌 평범한 일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마음을 짓누른다. 허무함과 함께,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르는 분노가 불안하다. 

2020년은 그야말로 인류 역사의 전환기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말이 더는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누구를 원망하고 짓누르려 하기보다는 다 함께 생존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하지 않을까. 분노와 복수는 무한 반복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그동안 역사를 통해 지겹도록 목격해 오지 않았나.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았다. 10·4선언 13주년이고, 9·19평양공동선언 2주년이다. 하지만 허망함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북관계는 팽이 마냥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만 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도 두렵다. 

정신무장력이 극도로 허약한 필자에게 코로나는 강력한 한 방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지금도 크게 각성했다고는 도저히 말하지 못하겠다. 거기에다 삶의 구차함이 함께 떠밀려 들어왔다. 애꿎게 남 탓만 하고, 거울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다 미웠고 보기 싫었다. 남을 증오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들 뿐임을 알고 있었지만, 감정의 흐름을 막기엔 너무 무력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인간들 뿐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저주들이 하나 같이 극악스러웠다. 살의와 증오가 넘쳐 났다. 물론 끝내 따뜻함을 지키려 하는, 인간임을 지키려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늘 그랬듯, 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치지 못했다. 분노를 넘어 환멸이 밀려왔다. 하찮은 권력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군상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저 고귀한 언사들이 죄다 가식과 위선으로만 보였다. 기실 크게 틀리진 않았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 따위가? 이 지긋지긋한 비관과 나에 대한 저주는 언제나 멈출 것인가. 기약할 수 없었다. 그저 잠 못드는 밤이 길어졌고, 무력한 나날이 이어졌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것인가 흠칫 놀랄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작가의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확신이 없어도 가능성이 희박해도 믿어보는 것, 그것이 약속의 의미이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나는 그대로 믿어보는 것. 그리고 확인해 보는 것.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지난 일. 어디 세상의 약속 중 과거가 있겠는가? 약속은 미래이며, 미래는 희망이다. 그리고 희망은 결국 우리 발로 찾아가는 것.  (변종모,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중)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가? 나의 마음과 나의 얼굴은 같은 표정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면서도 어쩌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내보일 내 모습 보는 것이 전부였는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잘 알면서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날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하는 겉모습에만 익숙해지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늙어간다. (같은 책)

다시금 뒤를 돌아봤다. 난 그동안 누구의 정성으로, 누구의 기도와 간절함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가. 온전히 나의 힘으로 일어서 본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이들의 눈물을 먹어가며 살아낸 생이 아니었나.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오만함은 무엇인가. 감히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을 저주하고 있었던 것인가. 내 곁에 있는 희망을 제 발로 걷어차며 다시 희망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7월엔 유난히 많은 이들이 곁을 떠난 것 같다. 가까운 인연도 있었고, 잠시 스쳐 간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이 아직은 멀게만 보이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온전히 수많은 이들의 보살핌으로 살아온 삶, 이제는 되돌려 주어야 하지 않겠나. 

▲ 정병호 지음 / 창비 펴냄 (2020년 2월)

그런 와중에 <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는 반갑고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인도적 대북지원에 힘써온 활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다. 때문에 자연스레 글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소한 것 하나도 지나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잠시 스치듯 만난 북한 아이들의 노랫소리 한 구절, 안내원 동무의 말 한마디가 저자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사실 북한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대담론이 아닌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저자의 꼼꼼한 관찰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나 분석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독서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착각 혹은 실수로 여겨지는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에 대한 해석도 기실 큰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저자는 본인의 관찰과 분석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명확한 근거나 자료 없이 마구잡이로 북한을 평가하고 정의 내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적어도 성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학자이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무래도 편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북한을 비난하고 그들의 취약한 부분을 과장 확대하여, 매우 부적절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책과 그 반대 성향의 책들이 넘치는 요즘,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이해하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겐 꽤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경험할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어떠한 대상의 일부분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에겐 독서가 필요하고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느 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북한을 이해하려 시작했다. 

염치없는 세상에선 극히 상식적인 이들의 삶도 눈물겹다. 여전히 2018년의 평화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이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고 간절하다. 이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음에도 그저 기다려주신 <통일뉴스> 편집진에 그저 송구할 따름이다. 도무지 성실함과는 담을 쌓아버린 필자에게 <통일뉴스>는 늘 감사하고 죄송한 동지다. 부디 더는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