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코로나19에 발이 묶여 인간들의 지구 여행이 거의 멈춤 상태였다. 관광업계는 물론이고 항공업계, 그밖에 관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인간들이 1~2년 자연을 괴롭히지 않았더니, 쓰레기로 그야말로 ‘쓰레기’가 되어가던 세계 곳곳의 유명 관광지들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12%가 관광산업에 의해 발생 된다니, 당연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인 코로나로 인해 자연이 회복되는 이 놀라운 모순.

아, 그런데 백신 접종자들이 어느 정도 늘어나자 다시 해외여행에 대한 움직임들이 보인다. 업계 종사자들을 위해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의 관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면 결국 다 죽는다.

인간은 늘, 언제나 자신들이 만물의 영장이라 떠들어왔다. 지구 최강의 포식자. 모든 지구 생명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위대한 존재. 아니지, 자기들끼리도 늘 못 죽여 안달인 타고난 학살자들. 인간은 도무지 ‘멈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들로 보인다.

부모님 댁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를 가끔 찾는다. 그 어마무시한 규모도 규모지만, 그곳에 쌓여있는 온갖 상품들을 쳐다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그것들은 상품일 뿐, 지구상에 살고 있는 나머지 무수히 많은 생명들에게 그것은 다만 지구를 썩게 만드는 쓰레기일 뿐 아닌가. 전 세계에 이런 마트가 도대체 몇 개가 있을 것이며, 매일 배출되는 쓰레기는 또 얼마나 거대할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자신 있게 ‘행동하는 지식인’이라 말하는, 존경하는 강수돌 교수는 우리 시대의 ‘반 생명’의 징후들을 말하며, 이 고통의 배후에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속에 작동하는 현 경제 시스템이 있고, 또 그 배후 추동력은 자본과 권력”이라고 지적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다. 하지만 난 거기에 또 하나의 거대한 배후세력을 지목하련다. 그것은 애초부터 글러먹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당장의 이익과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시원하게 파괴하고, 또 같은 인종을 화끈하게 학살하는 것들이 바로 인간이다. 게다가 치명적인 약점은 인류의 역사가 흘러온 과정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고새 그걸 까먹고 같은 짓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흔히 금방 잊어버리는 이들에게 “금붕어냐?”, “닭대가리”등의 조롱을 하는데, 이런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 금붕어와 닭은 핵전쟁이나 기후파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속에서 만들어도, 자본에 의한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은 이어진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자식들을 안아주고 출근 한 뒤, 영영 퇴근하지 못한다. 또 다른 김용균, 또 다른 이선호가 매일 죽어간다. 최근 발생한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돈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지 말라는 간절한 호소가 매일 씹히고 또 씹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랩퍼 엠씨 스나이퍼는 <솔아 솔아 푸르는 솔아>에서 이렇게 외쳤다.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법은
사라진 지 오래
먼지를 먹고 폐병에 들어
비참히 쫓겨날 때
여전히 부패한 이들은 술 마시며
숨통 조이는 닭장에서 버는 한 달 봉급을
여자의 가슴에 꽂아주겠지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자면 3박 4일 밤을 새워 떠들어도 부족하다.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절망할 만하고,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미친 듯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 누가 이 미친 레이스를 멈출 것인가? 슈퍼 코로나라도 다시 창궐해야 할까?

톰 필립스 지음 / 홍한결 옮김, 『인간의 흑역사』, 윌북, 2019.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톰 필립스 지음 / 홍한결 옮김, 『인간의 흑역사』, 윌북, 2019.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인간의 흑역사』는 그야말로 배꼽을 잡고 킥킥거리게 만드는 책이다. ‘아니, 당최 이 작자 뭐 하는 인간이냐?’할 정도로 글을 너무 재미있게 썼다. 그런데 내용들은 전부 다 우울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인간이 유사 이래 저질러 온 기상천외한 삽질과 황당무계한 실수들이 퍼레이드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간, 그 화려한 바보짓의 역사”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으로 그야말로 단 하나밖에 없는 자연이 어떻게 철저히 파괴되어갔는지, 그리고 절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인간들 수십~수백 명이 어떻게 수백만, 수천만의 같은 인종을 지옥으로 몰아갔는지, 또 과학의 발전이라는, 문명의 진보라는 허울 속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들이 벌어졌는지 솔직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여기엔 물론 이념이라는 숭고한 껍데기 속에 가려진 미친 짓거리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움찔할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우리가 왜 아직도 분단 상태로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반성의 사다리를 올라가다 보면 확인할 것이다. 이념이라는 쓸쓸한 껍데기를.

마오쩌둥은 위대한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생태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로 인해 벌어진 참사가 참새 박멸작전이었다. 인민이 먹어야 할 소중한 곡식을 쪼아 먹으니 참새는 나쁜 놈이었다. 대대적인 박멸작전이 벌어졌다. “새는 자본주의의 대표 동물”이라는 당최 이해하기 힘든 구호까지 등장하며 대대적으로, 전국민적으로 참새들을 사냥했다. 여기에 쥐, 모기, 파리까지 합하여 ‘제사해 운동’은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쥐 15억 마리, 모기 1,100만 킬로그램, 파리 1억 킬로그램, 참새 10억 마리가 ‘소탕’되었다고 자랑스레 발표했다. 그럼 그 결과는? 인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나요?

마오 동지는 진정 모르셨다. 참새는 해충도 잡아먹었다. 특히 벼를 아주 좋아라 하시는 메뚜기를.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대기근이 중국대륙을 강타했다. 물론 대기근의 원인이 오직 참새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대기근 동안 사망한 중국 인민들의 수는 많게는 3,000만 명까지 추산된다. 저자는 말한다.

“이 참사가 남긴 교훈은 자명하다. 뒷일을 아주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다면 자연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장담할 수 있어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자. 앞으로라도 명심하면 좋겠지만…그럴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중국의 대기근 이후에도 줄기차게, 일관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아주 신나게 말이다.

『인간의 흑역사』에는 이러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고, 때론 분노가 치솟는다. 하지만 뭐, 나라고 할 말이 있을까. 나도 엄연한 인간이니 말이다.

책은 ‘그러니, 인간들아.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아라’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멍청하고 개념 없고 예의도 없는 종족이라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제발 10개 중 1개라도 실수를 덜 반복하며 살자고 호소하고 있다. 책이 웃기면서도 눈물겨운 이유다. 자, 우리 이제는 좀, 더 이상 지구도 버티기 힘들다는데, 이러다 우리도 싹 다 죽을 텐데, 아니 그리고 우리 애들은 뭔 죄여?

당연히 책을 덮고 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나 역시 그 무슨 위대한 일을 한답시고, 온갖 자연을 파괴하고 타인을 못살게 굴고, 제 잘 났다고 까불며 살아오지 않았나. 정말 뭣이 중한지 모르고, 달이 아닌 손가락만 죽어라 쳐다보며 산 것 아닌가. 이 반성이 새로운 행동의 시작으로 이어진다면, 그래도 나는, 우리는 희망이 조금은 있는 게 아닐까.

거창한 담론을 떠드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니, 4차 산업혁명이니, 이념이니, 민족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다 좋고 다 아름다운 말들이다. 하지만, 거대담론만 떠든다고 당신들이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이젠 깨닫자. 정말 위대한 이들은 5일 장터에서 제철에 고생스레 수확한 채소를 팔아 아이들 ‘핵교’ 보내고, 시집, 장가보낸 농부들임을, 시급 만 원도 될까 말까 한 돈을 위해 다들 꺼리는 험한 노동 현장에서 오늘도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임을, 제 자리에서 욕심내지 않고 그 무슨 공명심 없이 그야말로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이들임을. 이젠 좀 인정하고, 겸손하자. 자연에 겸손하고, 인간에 겸손하자.

안 그러면 우린 모두 이 지옥행 버스에서 하차할 수 없다.

“앞으로 1년 후, 10년 후, 100년 후에 우리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떤 뜻밖의 변화가 일어날지는 몰라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짓을 계속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우리가 처한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릴 것이고, 정교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해 우리가 지은 죄를 잊으려 할 것이다. 경제 위기가 터진 후에는 대중 영합적 정치인들에게 표를 줄 것이다. 돈을 더 벌려고 아옹다옹할 것이다. 집단 사고와 광풍과 확증 편향에 빠질 것이다. 지금 우리 계획이 아주 좋은 계획이고 잘못될 리는 전혀 없다고 거듭 되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는 바뀔지도 모른다. 과거를 통해 배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한 얘기들은 다 과도한 비판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세상이 아무리 어이없고 절망스러운 면이 있을지라도, 사실 인류는 지혜와 분별력을 점점 키워가고 있고, 우리는 바보짓이 사라질 새 시대의 여명기에 사는 행운아들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는, 우리가 나무에 올라가 떨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269~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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