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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2000년 정상회담과 연관있나? 미 중앙정보국 비밀문서와 KAL858기 사건 (2) -박강성주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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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1.29  15: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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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그러면 지금부터는 이번에 새로 확인된 CIA 문서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1987년 12월 9일자 문서는 동향(Trends)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로, 당시 공산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한 외국 언론의 보도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반도 관련해서는, 평양이 KAL기 사건에 저자세로 나가고 있다는(Pyongyang Gives Low-Key Treatment to KAL Incident) 제목으로 요약되어 있다. 한마디로 과거 심각한 사건들의 경우와 비교해봤을 때 북쪽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정도는 이례적(anomalies)이라는 것이다(C00408076, 18쪽). 다시 말해, 보도에 소극적이라는 말이다.

중앙정보국은 이 사건에 대한 북쪽의 첫 공식적인 반응을 12월 5일자 조선중앙통신사 대변인 성명(“KCNA spokesman’s” statement)이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대변인 성명은 북쪽 성명의 위계상 낮은 위치에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한항공기 사건처럼 비중있는 경우 좀더 권위적인 차원의 성명이 발표되어 왔다고 말한다. 예컨대1974년 박정희 암살시도 사건, 1976년 판문점 사건, 1983년 버마랑군 사건 등이 그랬다고 한다. 참고로, 북쪽은 사건 관련해 1987년 12월 5일 조선중앙통신사 대변인 성명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15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 1988년 2월 2일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등 최소 6번의 공식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3번,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3번이다(박강성주,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 92쪽).

보고서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1983년 랑군 사건에 관한 대목이다. 곧, 칼기 사건과는 다르게 버마랑군 사건의 경우 북쪽의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에 나섰다는(devoted considerable attention) 내용이다(20쪽). 당시 북쪽이 저질렀다는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을 대내 차원에서 많이 보도했다고 한다. 이 밖에 사건이 조선로동당 당대회가 계속 연기되고 있는 시점에 일어났다며, 이는 내부적으로 민감한 정책을 둘러싼 토론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적고 있다.

북쪽 동기에 대한 계속되는 의문

1987년 12월 21일자 문서는 테러리즘 보고서의 일부분으로, 중앙정보국은 북쪽의 정보요원들이 거의 확실하게(almost certainly) KAL858기 실종의 뒤에 있다고 기록한다(C00408064, 1쪽). 그리고 실종되기 전 비행기에서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는 점으로 볼 때, 폭탄에 의한 갑작스러운 참사(sudden disaster)라고 분석하고 있다. 북쪽이 비행기를 해상에서 폭파시키려고 한 것과 관련해서는, 의도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비행기 자체의 행방을 묘연하게 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테러리스트에 대해 의혹을 불러일으키거나 또는 어떤 허구의 조직이 한 것으로(arrange for a bogus group to claim credit) 하려 했다는 것이다(3쪽).

중앙정보국은 북쪽의 동기와 관련해 일단 올림픽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러나 평양이 왜 이렇게 너무 앞서 행동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we cannot explain why P’yongyang acted so far in advance) 적는다(3쪽). 그리고 시기로 봤을 때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주려 한 것 같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한(favor ruling party nominee Roh Tae Woo) 사건을 왜 일으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맥락의 분석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선과 올림픽 모두 그 동기로 봤을 때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앞글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미 국무부도 당시 통일원 송한호 국장의 설명을 바탕으로 이와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국무부 비밀문서 E7, 1987년 12월 4일; E15, 1987년 12월 7일).

1988년 2월 3일자 문서는 1987년 12월 9일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국가의 언론보도를 정리한 것이다. 핵심내용은, 북쪽이 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언론보도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보국은 당대회가 지금껏 열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만약 당대회가 열리게 되면 그 대회에서 이 사건을 다루어야 할 것이라고(the next plenum may well have to deal with the incident and its fallout) 예상했다(C00408077, 29쪽). 그러면서 1983년 버마랑군 사건을 예로 들었다. 랑군 사건의 경우 사건이 있고 7주일 뒤에 대회가 열렸는데 중요한 인물들의 교체를 통해 대화정책으로의 전환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 정부는 이 문서에서 뿐만 아니라, 국무부 문서 등 다른 자료들에서도 대한항공기 사건을 버마랑군 사건과 많이 비교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당시 미국과 일본의 제재조치에 대해 북쪽이 신중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대응했다고 적고 있다. 이 밖에 쿠바를 포함한 몇몇 나라가 북쪽과 함께한다는 맥락에서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1988년 3월 10일자 문서는 김현희 일행의 음독자살에 관한 것이다. 독극물로 사용됐다고 알려진 청산(Hydrocyanic acid)에 대한 설명이 주목을 끈다. 중앙정보국에 따르면, 기체 상태의 청산은 제대로 흡입이 되었을 때 사람을 거의 즉사(kill a person almost instantaneously)시킬 수 있다(C00408067, 8쪽). 일단 앰플이 깨지게 되면 가스가 재빨리 인체에 흡입된다는(must be inhaled quickly) 것이다. 그런데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안기부 수사에 따르면 김현희는 앰플을 깨물었으나 결국 살아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을 즉사시킨다는 대목 그 다음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아쉽게도 이어지는 대목은 지워져 있다.

1988년 8월에 작성된 문서는 당시 소련의 한반도 정책에 관한 내용이다. 중앙정보국은 KAL858기 사건이 소련에게 중요한 골치꺼리(a major irritant)로 보인다고 적고 있다(C00408063, 19쪽). 중앙정보국에 따르면, 소련은 북쪽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을 때 북쪽과 입장을 같이 했다. 하지만 어느 소련 관리가 북쪽 공작원이 평양을 출발해 모스크바를 거쳐 바그다드로 갔던 경로, 그리고 그때 사용한 여권에 관한 정보에 굉장한 관심을(extremely interested) 보였다고 한다. 이상의 5건이 (2008년 발견했던 문서와는 별도로) 이번에 새로 확인한 미 CIA 문서들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표로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 CIA 비밀문서에 나타난 KAL858기 사건

 

작성시점

비밀등급

문서종류

주요내용

비고

1

1987. 12. 9

 

3급

(Confidential)

공산주의권 언론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76)

북쪽 언론보도 소극적

 

2

1987. 12. 21

 

2급

(Secret)

테러리즘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4)

사건 동기에 대한 의문

 

3

1988. 1. 14

 

2급

(Secret)

테러리즘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5)

김현희 기자회견

이중 문서

4

1988. 2. 2

 

1급

(Top Secret)

특별분석

(문서번호 C00408060)

사건 동기에 대한 의문

 

5

1988. 2. 3

 

3급

(Confidential)

공산주의권 언론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77)

북쪽 언론보도 적극적

 

6

1988. 2. 11

 

2급

(Secret)

테러리즘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6)

김현희 북쪽 사람 결론

이중 문서

7

1988. 3. 10

 

2급

(Secret)

테러리즘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7)

김현희 일행 음독자살

 

8

1988. 4. 1

 

2급

(Secret)

정보분석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1)

사건 동기에 대한 의문

이중 문서

9

1988. 5. 19

 

1급

(Top Secret)

일일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2)

북쪽의 추가 공격 예상

 

10

1988. 8

 

2급

(Secret)

정보분석 보고서(?)

(문서번호 C00408063)

사건 관련 소련의 고민

 

11

1989. 5. 4

 

2급

(Secret)

테러리즘 보고서

(문서번호 미상)

김현희 재판

공개 제외

12

1990. 4. 19

 

2급

(Secret)

테러리즘 보고서

(문서번호 미상)

김현희 사면

공개 제외

CIA 비밀문서의 ‘비밀’?

그렇다면, 이번에 공개된 CIA 문서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일단, KAL858기 사건 관련해 미 중앙정보국이 생산한 비밀문서는 최소 18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이번에 보내온 문서 10건, 공개에서 제외됐지만 개인적으로 발견한 2건, 그리고 문서번호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6건이다. 문서번호의 경우, C004080(##)의 형태로 뒤 끝자리가 60부터 시작하고 있다. 분석 보고서 형식으로 된 것은 60/61/62/63번이고, 테러리즘 보고서 형식은 64/65/66/67번, 그리고 언론 보고서는 76/77번이다. 문제는 68-75번까지가 미지수인데, 68/69번은 없다 치더라도(문서종류상, 2008년 발견했던 2건의 번호일 가능성이 많다) 표기상 새로운 번호대가 시작되는 ‘70번’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76번 이전인 70/71/72/73/74/75번, 곧 6건의 또 다른 비밀문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이 생각은 틀릴 수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CIA가 가졌던 사건의 동기에 대한 의문, 곳곳에 검은색으로 지워져 있는 대목 등, 기본적으로 이런 점들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봤을 때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누군가 정보공개 청구를 이전에 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번에 받은 문서들은 누군가 이미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얻은 것들이다. 그에 따라 비밀문서가 공개된 시점은 모든 문서에 “2000년 7월”(RELEASED JUL 2000)이라고 적혀 있다. 그 시점에 주목하자. 바로 2000년 6월 정상회담이 있었던 직후다. 그때 분위기가 어떠했던가. 남북-북남 간의 첫 정상회담으로 화해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때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풀어질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KAL858기 사건과 관련된 CIA 문서를 얻으려고 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추측을 해본다면, 일단 그 사람은 사건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누군가였을 것이다. 그것도 CIA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정도라면 더욱 그랬지 않았을까. 그런데 당시 이 CIA 문서가 공개됐다고 알려진 적이 있는가? 또는 그 뒤에라도 비밀문서가 공개됐다고 이야기된 적이 있는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문서가 확인되어 알려진 것은 2008년 8월이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 문서 곳곳에 “2000년 7월”이라고 적혀진 부분을 보기는 했었다(어떤 문서에는 99년 6월, 99년 11월, 99년 12월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자동적으로 공개됐을 가능성을 떠올려봤지만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에 아닐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에야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만약 그 사람이 진실규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문서공개를 알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어떤 사정이 있어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까. 정상회담으로 화해 분위기가 최고조였던 시점, 그 사람은 CIA 문서를 통해 무엇을 확인하려 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알리지 않았는가. CIA 비밀문서의 ‘비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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