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KAL858기 사건 연구자)


글을 쓸 때 읽는 이를 누구로 상정하느냐는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다. 알게 모르게 지나치는 이 정치는, 쓰는 이와 읽는 이가 경계를 두고 맞부딪힐 때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그 경계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마련되었을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 쓰는 이는 물론, 글 자체도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읽는 이, 곧 독자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자로 보기에는 좀 모자란 듯." 얼마 전,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런 반응을 접하게 되었다. 문서 내용 중, 국무부가 KAL858기 사건은 남쪽의 공작이다는 말을 황당한 주장이라고 한 대목에서였다.

문제는 문장의 구조상 황당하다고 했다는 부분이 국무부가 아니라 글을 쓴 이, 곧 내가 말한 것으로 읽힐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문서상의 표현("BIZARRE";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등으로도 옮길 수 있을 듯하다)을 첨부하는 식으로 다듬은 적이 있다.

그 반응은 내게 두 가지로 다가왔다. 먼저, 위에서 말한 '읽는 이가 누구냐'는 문제였다. 다음으로, 남쪽이 이 사건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누가 비행기를 없앴느냐'에 관해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에서, 이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늦게나마 그 독자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진실들이 '경합'하고 있는 김현희 사건. 이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일은 '적어도 나의 경우' 긴장과 고민과 의지를 동반하는 중요하고 조심스러운 문제임을 고백한다.

미 CIA 문서 정보공개 청구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우편물이 날아온 것은 그런 고민을 하고 나서 얼마 뒤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왔던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그에 대한 답변이 온 것이다.

2009년 12월에 결정돼 사정상 2010년 1월에야 받게 된 답변서는 53쪽 분량 10건의 비밀문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2008년 개인적으로 중앙정보국 홈페이지에서 발견했던 7건의 문서보다 많은 것이다. 또 2009년 신성국 신부가 미국에서 직접 받아왔다고 밝힌 23쪽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다(아마 정식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분량의 차이를 떠나 답변서는 한 가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KAL858기 사건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가 '이전에' 있었고 그때 공개한 자료를 보낸다고 한 대목이다(We received an earlier FOIA request for records on the same subject as yours… that were released to the earlier requester).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은 문서 자체를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2008년에 발견해 <통일뉴스>를 통해 공개했던 문서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 2008년 당시의 기밀해제된 CIA 문서.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그때 발견했던 문서는 총 7건으로, 1988년 1월부터 1990년 4월에 걸쳐 작성된 것이다. 이 중에서 2건은 김현희 재판과 사면에 관한 내용으로, 이번에 중앙정보국이 보내온 문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머지 5건은 이번에 받은 문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이들 문서부터 다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한다. 문서를 다시 살펴보는 이유는, 중앙정보국에서 보내온 문서와 개인적으로 발견한 문서에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때 미처 논의하지 못 했던 부분들을 정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앞서 문서번호와 관련해 잠깐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처음 문서를 발견했을 당시, 각 자료에는 문서번호가 특별히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문서에는 각각의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래서 인용을 할 경우, 편의상 새로 받은 문서번호를 따르기로 한다.

1988년 1월 14일자 문서는 2주일마다 발행되는 테러리즘 보고서의 일부로, 1월 15일 김현희가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며 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이 공격이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would jeopardize Seoul's hosting of the Olympic Games) 김현희의 고백을 요약하고 있다(C00408065, 12쪽).

1988년 2월 2일자는 특별분석 보고서로, 이 사건을 북쪽의 '지킬과 하이드식 접근'(Jekyll-and-Hyde approach)으로 표현하고 있다. 곧 대화와 폭력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올림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빨랐다(too early to affect)고 이야기하며, 올림픽이 평양에게는 유혹적인 표적으로 남아있다고 덧붙인다(C00408060, 13쪽).

흥미로운 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문서는 2008년 두 가지 형태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두 문서는 가려진 부분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해, 한 문서에서 가려진 내용을 다른 문서에서는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중앙정보국이 보내온 문서에서 가려진 부분을 이미 발견했던 문서와의 비교를 통해 알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확인된 내용은, 북쪽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의 취소를 1987년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dropped longstanding demands)는 것이다(문서번호 미상, 13쪽). 이는 북쪽의 대화정책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다.

1988년 2월 11일자 문서의 경우 사건의 동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주목된다. 중앙정보국은 북쪽이 올림픽을 공동개최하지 못 하는 데서 절망감을 느끼고(North Korea's frustration over its inability to cohost the 1988 Summer Olympic Games), 이에 따라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려 했기 때문에 사건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 폭파는 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계획한 캠페인 중 첫 번째 것(the first incident of a campaign)이라고 중앙정보국은 믿었다(C00408066, 3쪽). 아울러 만약에 그렇다면, 북쪽이 다른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P'yongyang will probably conduct other attacks)고 내다봤다. 여기에 북쪽에 대한 비난, 남쪽의 안보강화 등이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흥미롭게도 이 문서 역시 두 가지 형태로 발견됐다. 그런 식으로 가려진 내용 중 하나는, 언어 전문가들이 "마유미"와 이야기를 했으며 그 결과 그녀가 북쪽 사람이라는(she is ethically North Korean) 결론을 내렸다고 한 부분이다(문서번호 미상, 1쪽). 폭탄 인수를 포함한 김현희의 구체적인 공작 여정, 음독자살에 관한 내용도 확인된다. 김현희가 조선로동당 조사부(the Investigations Department)와 관련이 있다는 부분도 그러하다. 다만 이 내용은 가려지지 않은 다른 부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KAL858기 폭파는 이어질 사건들 중 첫 번째?

1988년 4월 1일자 역시 두 가지 형태로 있다. 일단 가려진 내용 중 확인되는 것은, 서울의 미 대사관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이 사건에 자제된 반응을 보이는 데는 노태우 대통령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북쪽에 대해 화해적인 조치를 더 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extending a conciliatory gesture… despite KA858) 대사관의 보고를 덧붙인다(문서번호 미상, 4쪽).

이와는 별도로, 공통으로 들어있는 내용 중 하나는, 위에서 이미 지적했지만, 올림픽에 영향을 주기에는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too early to have a significant impact). 따라서 이 폭파는 계획되어 있는 이어질 사건들 중 첫 번째인 것으로 보인다고(therefore… the first of a series of incidents planned) 분석한다(C00408061, 2쪽). 앞 문서에서도 이야기된 부분이다. 참고로, 시기와 관련해서는 미 국무부에서도 시기가 맞지 않다며(THE TIMING IS OFF) 비슷하게 분석했음을 확인한 바 있다(국무부 비밀문서 E15, 2쪽).

1988년 5월 19일자는 올림픽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관한 내용으로, 대한항공기 사건을 북쪽이 서울 올림픽 최대의 위협일 수 있음을(probably the greatest challenge to the security of the games) 말해주는 증거로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앞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계획된 여러 가지 공격 중 첫 번째일 수 있다며(the first of a series), 북쪽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동들을 예상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남쪽의 또 다른 민간항공기 등에 대한 공격, 해상을 통한 요원침투, 비무장지대에서의 군사적 행동 등이다(C00408062, 15쪽). 그러나 계속되는 중앙정보국의 분석과는 달리, 그 뒤 북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1989년 5월 4일자 문서는 김현희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다. 문서에 따르면 김현희는 4월 25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변호인들이 항소하는 것과 관련 김현희와 상의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울러 정부의 감형(reduce or commute the sentence) 가능성 이야기도 있다(문서번호 미상, 3쪽).

1990년 4월 19일자 문서는 김현희 사면에 대한 것이다. 4월 13일 특별사면이 있었으며, 김현희가 재판을 통해 이 폭파사건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이루어졌다고(the bombing was ordered directly by Kim Chong-Il) 주장했고 나아가 북쪽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는 내용이다(문서번호 미상, 9쪽).

두 문서 모두 테러리즘 보고서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아울러 두 문서는 이번에 중앙정보국이 보내온 공개자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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