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먼저, 이와 같이 복잡한 사안은 전자우편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암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 이렇게 쓰는 거 자체가 많이 느립니다. 당신은 이런 나의 상황을 몰랐지요.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듯이 말이오. 알려지지 않은 것을 언제나 밝히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는 차갑고 확실한 사실(cold hard facts)을 다뤄야만 합니다.”

2009년 5월 13일, 설마하는 마음으로 어렵게 연락을 한 내게 이런 답장이 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별다른 생각없이 그 사람에 대한 검색을 하다 깜짝 놀랐다. 바로 최근인 11월 12일, 그가 암으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KAL858기 사건에 대한 면접을 우회적으로 거절했던 그는 누구인가? 바로 전 주한미대사, 제임스 릴리다.

그 답장을 받고 몇 개월이 지나 릴리 전 대사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얼마 전, 신성국 신부로부터 전해받은 미 국무부 문서를 통해서다(자료와 관련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신성국 신부측의 정보공개 요구로 지난 10월 28일 미국무부가 KAL858기 사건 관련 국무부 자료에 대해 공개하면서 보내온 공문. [자료사진 - 통일뉴스]

미 국무부는 KAL858기 사건에 대해 모두 59건의 문서가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21건은 완전공개, 19건은 부분공개, 나머지 19건은 비공개 결정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비공개된 19건의 문서 중 일부는 이미 공개됐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7월,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서 2건의 비밀해제 문서를 이미 발견하였다(http://foia.state.gov/SearchColls/CollsSearch.asp). 미소 정상회담(87년 12월 15일 작성)과 국제민간항공기구 논의(88년 2월 19일 작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미 공개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애초부터 총 59건의 문서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확한 경위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글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40건의 문서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문서의 주요내용은 5가지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가지란, 사건과 관련된 ‘배경’, ‘수색’, ‘증거’, ‘대응’, ‘이후’다.

통일부와 국무부, 동기에 대한 의문

첫째, 배경은 일단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에 관한 것으로 대통령선거와 올림픽게임을 뜻한다.

87년 12월 4일자 문서에 따르면, 미대사관쪽은 당일 통일원(현재의 통일부) 송한호 남북회담사무국장과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서 송 국장은 통일부는 북쪽의 개입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지만 그 동기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BAFFLED” BY ITS MOTIVES)고 말했다(E7, 2쪽). 왜냐하면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이 사건이 너무나 명백하게도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이익이 될 것(SO OBVOUSLY BENEFITS RULING PARTY CANDIDATE ROH TAE WOO)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통일부가 왜 이렇게 위험도가 높은 올림픽 테러가 너무나 일찍 일어났는지(HIGH-RISK OLYMPICS TERRORISM SO EARLY)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남쪽의 통일부부터 북쪽의 동기를 이해하기 힘들어 한 것이다.

이후 미국무부는 87년 12월 7일자 주간 정세보고에서, 북쪽 개입에 대한 정황증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어서 만약 북한이 저지른 것이라면, 그럴듯한 동기를 얻기가 어렵다(A PLAUSIBLE MOTIVE IS HARD TO GLEAN)고 말한다(E15, 2쪽). 다시 말해 사건을 일으킨 북쪽의 동기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이 사건이 야당의 승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북쪽의 욕망을 저버린 것(COUNTER THE NORTH'S PROFESSED DESIRE TO SECURE AN OPPOSITION VICTORY)이라는 한국정부 관계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통일부 송한호 국장을 뜻하는 듯하다).

바로 이어진 문장을 통해 올림픽게임과 관련해서는, 그 목적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시기가 맞지 않다(TIMING IS OFF)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대선이 끝나면 평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올림픽 타협안이 나올 수 있는데 왜 대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는가(WHY NOT WAIT UNTIL AFTER THE ROK ELECTION)라고 반문한다. 올림픽 방해라는 목적으로 봤을 때 그 시기가 빨랐다는 이야기다(참고로, 이와 관련된 바로 다음 대목이 지워진 상태로 공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국무부의 판단이 통일부의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통일부가 동기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여기에 국무부 자체의 분석이 더해져 이런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당시 대선에 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언급되었다. 선거양상이 결과를 가늠하기 힘들게 매우 치열하다는 것이다(E15, 3쪽; E24, 2쪽, 5쪽 등). 이와 관련해 국무부 안에서 개인적인 형식으로 6명의 관리들을 상대로 여론조사가 있었는데, 모두가 똑같은 후보를 꼽았다고 한다. 결과는 상당히 놀라운(SURPRISE OF SURPRISES) 것이었는데, 그 후보의 이름은 암호(XHTI0359JFOHKDOD)로 되어 있어 누구인지는 문서상 확인하기 어렵다(E24, 5쪽).

한편 폭력과 뇌물이 지난 선거들과 마찬가지로 한탄스러운 수준이라고 언급되었다(E15, 3쪽). 그리고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스티븐 솔라즈 미 하원의원은, 선거와 관련해 상당한 부정행위가 분명히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선거결과는 한국인들의 유효한 정치적 판단(VALID POLITICAL JUDGEMENT)을 반영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E33, 3-4쪽). 참고로 솔라즈 의원은 이후 미 하원에서 대한항공기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주관하여 대북비난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낸다.

다시 ‘동기’와 관련된 부분으로 돌아오자면, 사실 이런 판단은 나 자신도 그동안 고민을 해왔던 부분이다. 당시 선거 상황에서 대한항공기 사건은 분명히 북쪽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북쪽이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줬을까 하는 점이다. 다만 어떤 ‘이해하기 힘든’ 이유에서 북쪽이 그랬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솔직히 이 사건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최광수 외무부장관의 말이 주목된다. 87년 12월 2일자 문서에 따르면, 그는 당시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와 사적인 대화를 가졌는데 그 역시 선거와 관련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최광수 장관은 버마랑군 폭파사건에서 볼 수 있듯, 정치적인 비용에 상관없이 테러를 선호하는 세력이(THOSE IN FAVOR OF TERRORIST SOLUTIONS REGARDLESS OF BROADER POLITICAL COSTS) 북쪽 당국에서 득세해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E2, 2쪽). 다시 말해, 북쪽의 강경세력이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사건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이야기다(사실 이것도 생각을 해봤던 부분이다).

올림픽 관련해서도, 그 시기가 빨랐다는 고민을 해왔다. 당시 서울올림픽은 9월에 열렸는데 방해를 목적으로 했었다면 그 직전 내지 바로 몇 개월 전에 사건을 일으켜야 했었다는 생각이다(물론 대회 참가신청 기한이 1월이었다는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미 중앙정보국(CIA) 역시 이런 판단을 했다.

작년 8월, 중앙정보국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비밀해제 문서를 보면 그렇다(http://www.foia.cia.gov). 88년 2월 2일자 문서에서 중앙정보국은, 올림픽게임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는 사건의 시기가 너무 빨랐다(too early)고 지적했다. 88년 4월 1일자 문서에서도 올림픽에 대한 결정적 영향을 주기에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too early)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느 실종자 가족도 마찬가지다. “858 저기 테러를 한 게, 인제 여기서 발표하기는 올림픽을 방해한 거라 그랬죠? 올림픽이 몇 개월 남았어요?... 그러면은 10개월 남았는데 10개월 전에 터트리는 바보가 어딨어 그 직전에 터트려야지.”(논문면접)

조심스러운 고민

이렇듯 사건과 관련된 북쪽의 동기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남쪽의 통일부가 그랬고, 최광수 외무부 장관이 그랬으며, 미 국무부도 그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상황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주는 어려움과 답답함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확실한 물증이 아직까지 없는 것이다. 다만 ‘상식적으로’ 북쪽의 동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만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국무부의 표현대로, “북쪽은 왜 기다리지 않았는가?”

필자의 요청으로 기사를 대체했습니다. 2009.12.3 21:35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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