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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고백이 믿을 만한가?"<기고> 미 국무부 문서에 나타난 KAL858기 사건 ③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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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2.07  10: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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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KAL858기 사건 연구자)


앞의 글들에서 미 국무부 문서의 내용을 배경, 수색, 증거, 대응, 이후 등 5가지 측면에서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지금부터는 이외의 다른 중요한 부분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미국과 관련된 부분을 별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미국은 이 사건에 대단한 관심(GREAT INTEREST)을 가지고 있었다(E4, 1쪽). 그런 상태에서 안기부의 수사발표가 있었는데 미국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미국은 기자회견을 앞두고 예상질문과 답변을 준비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구조신호가 없었고 적은 양의 잔해가 발견됐다는 것은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서 순식간에 폭파됐음(SUDDEN EXPLOSION AT HIGH ALTITUDE)을 뜻한다(E41, 2쪽). 그리고 김현희의 북쪽 억양과 관련, 1983년 버마 폭파사건처럼 북쪽이 남쪽 정부와 시민을 상대로 폭력행위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북쪽 사람이 논리상 용의자(LOGICAL SUSPECTS)다.

그 다음 대목은 문서에서처럼 가상의 기자회견 형태로 정리하는 게 좋을 듯싶다(E41, 3-4쪽).

질문: 과거 한국정부가 문제적인 심문기법(QUESTIONABLE INTERROGATION TECHNIQUES)을 사용했다고 봤을 때, 김현희 고백이 믿을 만한가(KIM'S CONFESSION BELIEVABLE?)? 답변: 우리로서는 그 고백을 검증할 기회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독자적인 증거를 모아왔다. 질문: 북쪽은 이 사건이 남쪽의 모략이라고 주장했는데? 답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질문: 북쪽의 동기는? 답변: 우리는 추측하지 않겠다(WE ARE NOT GOING TO SPECULATE).

한국이 바라는 모든 것

88년 1월 15일자 문서에는, 한국정부가 이 사건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또는 국제민간항공기구로 가져가는 문제에 대해 미국쪽 의사를 타진하는 대목이 나온다. 문서에는 유엔안보리의 경우 (문서상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영국을 의장국으로 해서 논의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기록되어 있다(E42, 2쪽). 참고로 88년 2월 16-17일에 있었던 실제 회의에서 의장국은 미국이 맡았다.

한편 유엔안보리 회의를 앞두고 북쪽이 유엔에 제출했던 반박문건에 대해 당시 김세택 외무부 국제기구국장은, 외무부는 그런 사소한 북쪽의 잘못된 정보(MINOR NORTH KOREAN INFORMATION)를 반박할 계획이 없다고 대사관쪽에 통보해오기도 했다(E55, 1쪽).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회의문제도 언급되었는데, 미국은 이상의 두 제안에 대해 아직 결정이 된 게 없으며 가능한 빨리 자신들의 의견을 알려주겠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지적하자면, 미국이 한국정부가 이외의 조치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물어올 수 있다고 한 뒤 가능한 조치들을 예상한 대목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지워져있다.

같은 문서에서 릴리 대사는, 유엔 및 ICAO 사안과 관련, 한국 외무부가 바라는 모든 것(ALL MOFA NEEDS)은 미 국무부의 지지라는 게 분명해 보인다고 적고 있다(E42, 2쪽). 그만큼 한국정부가 미국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던 듯하다. 올해 7월에 발견된 문서(ICAO 회의에서 한국쪽에 유리하도록 멕시코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계획)에서도 이미 확인되었듯,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확인시켜주는 대목들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실종된 이후의’ KAL858기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좌우의 날개로 날았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과 북쪽의 관계는 당연히 나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테러지원국 문제를 포함해, 곳곳에서 관계가 어긋났었던 흔적이 있다. 예를 들어 88년 1월 30일자 문서에 따르면, 북쪽은 대한항공기 사건에 대한 미국의 조치에 반발해 당시 미군유해발굴 관련 회담을 취소시켰다(E53, 2쪽). 88년 2월 6일자 문서에 따르면, 펜실베니아대학이 주최한 한반도 관련 학술회의를 주정부가 후원했다. 당시 유엔에 주재했던 북쪽 관계자도 발표자로 초대될 예정이었는데 국무부의 입김으로 취소된 것으로 되어 있다(E57, 6쪽).

둘째, 나머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들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87년 12월 3일 현재, 당시 이진우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사관쪽에 한국은 "하치야 마유미"에 대해 신병인도를 요청할 계획이 없다는 말을 했다(E6, 2쪽). 하지만 이와는 달리 한국은 신병인도를 요청하게 되고 대선 하루 전인 12월 15일, 김현희를 서울로 데려온다. 87년 12월 10일자 문서에는 북쪽의 언론보도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한국이 김현희의 신병인도를 요청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다. 당시 북은 김현희가 서울에서 고문을 받아 "거짓 자백"(BE TORTURED INTO A "FALSE CONFESSION")을 할 것에 대해 우려했다고 한다(E19, 2쪽).

89년 3월 23일 문서에는, 황당하게(BIZARRE) 들릴 수 있는 주장, 곧 약간의 친북주의자들(SOME NORTH KOREAN APOLOGISTS)이 이 사건은 남쪽의 공작이며 김현희는 안기부 요원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E66, 2쪽).

대한항공기 사건을 다른 사건과 비교하는 대목도 나온다. 최광수 장관은 무차별 살상(INDISCRIMINATE KILLING)이라는 측면에서 이 사건이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일어난 김포공항 폭탄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E11, 3쪽). 바로 앞에서 릴리 대사는 최근 북쪽 지도부의 변화가 1983년 랑군 폭파사건 당시로 돌아간, 곧 강경집단이 득세했던 시대로 돌아간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새롭게 확인되는 내용이 있는데,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강석재 이라크총영사 및 가족에 관한 부분이다. 최광수 장관은 강 영사에게 개인적으로 진급을 약속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세 아들이 있었는데, 당시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외무부 보험금을 포함해 모두 80만 달러 정도가 지급될 예정이었다(E11, 2쪽).

알 수 없는 그 무엇들

전반적인 느낌을 짧게 말하자면, ‘적어도 초기에’ 한국의 통일부와 미국의 국무부는 대통령선거 및 올림픽게임과 관련된 북쪽의 동기를 의아해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지만, 당시 수색작업이 철저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된다. 잔해분석 작업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미국의 인공위성 등이 수색에 동원되었는데 그 정보나 결과를 더 밝혀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이번 문서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물론 그런 내용이 특별히 새롭거나 결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비공개결정이 내려진 19건의 문서는 두 가지 사유로 공개되지 않았는데 하나는 국방 또는 외교정책(national defense or foreign policy)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 기구들 사이에 오간 정보들(Interagency or intra-agency communications)에 관한 것이다. 참고로 정보자유법에 따르면, 6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아울러 부분공개된 문서에서 지워진 내용들은 주로 외국정부의 정보나 비밀스러운 정보제공원을 포함한 미국의 외교관계와 관련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비공개된 내용들은 아마도 안기부, 미 중앙정보국(CIA), 국제경찰기구인 인터폴(INTERPOL), 일본정부 등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문서를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연구자로서 이런 자료를 스스로 좀더 빨리 얻어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는 점에서다(자료를 얻기 위해 애쓴 분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음으로 꼭 이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한국현대사는 미국에 기대어 풀 수밖에 없나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미국 문서가 결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한편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문서는 ‘미국’의 관점에서 작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해 미국에 불리한 내용이나 문서로 남기기에 민감한 부분은 처음부터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다. 바로 누군가의 글이나 말은 또 다른 누군가가 언젠가는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이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서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을 확인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릴리 대사는 22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물어온 것에 형식적이었지만 고맙다고 했다. 22년…. 자괴감과 두려움으로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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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2009-12-08 01:43:08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주장이라니 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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