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9시 30분, 경찰이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파주지역 트랙터 순례'를 막아나서자 주민들이 트랙터 위에 올라가 항의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파주지역 트랙터 순례가 경찰에 의해 원천 봉쇄됐다. 그러나 주민들은 파주지역 일대를 차량과 도보로 이동하는 '평화 순례'로 무건리 훈련장 확장의 문제점을 알렸다.

9일 오전 9시 30분, 경기 파주 오현리 삼거리 길목에는 평소 한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외부차량과 경찰병력으로 혼잡스러웠다. 삼거리 가운데와 양 길가에 세워진 트랙터 주변으로 승용차 3대가 포위해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경찰과 주민들 간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있었다.

경찰이 오현리 주민들이 준비한 파주지역 트랙터 순례를 막기 위해 새벽부터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의 트랙터를 차량으로 포위해 순례 자체를 원천봉쇄 했기 때문이다. 오현 삼거리에 주차한 세 대의 트랙터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차량에 사방이 막혀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경찰이 이날 새벽 4시께 차량을 가지고 마을로 들어와 트랙터마다 차량으로 둘러쌌다는 것이다. 마을 전체 20여 대 가까이 되는 트랙터를 모두 포위하기 위해 수십 대의 차량이 마을 곳곳에 배치됐다. 논에 있는 트랙터를 둘러싸기 위해 3대의 차량이 논 한 가운데 들어선 모습도 목격됐다.

심지어 경찰은 번호판이 '허'자로 시작하는 렌트 차량까지 동원하면서 트렉터 순례를 원천봉쇄해 주민들의 원성을 자초했다.

▲경찰은 순례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트랙터를  차량으로 원천봉쇄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또 순례에 참가하지 않는 트랙터까지도 모두 막아 주민들의 생업에 큰 지장을 줬다. 한 주민은 "목장에 가서 일해야 하는 트랙터까지 막아놓으면 어떡하냐"며 불평을 쏟아냈다. 순례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트랙터는 총 8대였다.

경찰의 태도는 일방적이었다. 기자들이 차량 출처에 대해 묻자 "주인이 아니면 신경쓰지 말라"며 퉁명스럽게 반응하며 대답을 회피했고 "오늘까지 차량은 마을에 계속 있을 것"이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트랙터를 이용한 행진은 불법 행진"이라며 "트랙터를 이용할 시에 경찰관 간의 충돌이 우려되기 때문에 경찰 직무집행법에 의거 위험을 미연에 막고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랙터 행진은 교통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원천봉쇄의 이유를 들기도 했다.

▲주병준 주민대책위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실제로 이날 오현리 주민들이 계획한 트랙터 순례는 3월 31일, 파주경찰서에 정식으로 신청했고 접수증을 발부받은 상태여서 경찰의 기습적인 원천봉쇄에 주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전창준(52)씨는 "여기 주민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냐"며 "경찰이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키지 않고 군인들만 보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문기 '오현지킴이' 회장은 "평화적으로 행진하려는 주민들을 왜 막아서냐"며 "내 땅을 우리가 지키겠다는데 무슨 이유로 경찰이 막아서는가"라고 트랙터 주변에 주차한 차량들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박석진 '무건리 공대위' 공동상황실장은 "탱크는 되고 트랙터는 안 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원천봉쇄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남자 주민들은 윗통을 벗고 20여 명의 사복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몸에 '오현리를 지켜내자', '고향에서 살고 싶다', '고향땅을 지켜내자'는 글귀를 빨간 색으로 새겼다.

주민들은 경찰이 국방부의 사주를 받고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무건리 공대위'가 경기도청에 원천봉쇄 방침을 항의하자, 경기도청은 원천봉쇄 방침을 내린 적이 없다며 발뺌하기도 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오세일 1군단 무건리훈련장 확장 사업단장은 취재기자의 멱살을 잡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본지 사진기자가 오 단장에게 항의하는 주민을 촬영하자 오 단장은 멱살을 잡으며 취재를 방해했다. 사진기자가 계속해서 사과를 요구하자 "야 임마, 조용해"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오 단장은 계속되는 사과 요청에 "제가 원래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해서.."라며 말을 흐리며 사과했다.

▲"찍지마! " 오세일 1군단 무건리훈련장 확장 사업단장은 단장은 노골적으로 취재를 방해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본지 사진기자의 멱살을 잡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오 단장. [사진-경인일보 제공]

오전 11시께, 오현리 주민들은 경찰과의 물리적인 충돌 후에 결국 트랙터 순례를 포기하고 도보행진으로 전환해 파주지역 '평화 순례'를 진행했다.

주민들이 법원읍 사무소까지 5km의 거리를 도보행진으로 이동하고 대능교를 막 넘어서는 순간, 경찰은 "도보행진은 법원읍 사무소까지 허용된다"며 "차량을 통해 이동하라"고 주민들의 행진을 막아섰다.

주민들은 "집회 신고서에서 분명히 법원읍 사무소, 문산시장, 금촌역, 파주시청까지 행진 신청을 했다"며 경찰의 제재 방침에 항의했지만 경찰은 50여 명의 병력을 도로 가운데 배치해 행진을 막아섰다.

주민들은 20여 분의 항의 끝에 트럭으로 옮겨타 파주시내까지 '평화 순례'를 이어갔다. 이들은 금촌역과 파주경찰서, 파주시청 앞에서 약식 집회와 기자회견을 갖고 무건리 훈련장 확장의 문제점을 알리는 한편,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 평화순례단은 금촌역과 파주경찰서, 파주시청 앞에서 약식 집회와 기자회견을 갖고 무건리 훈련장 확장의 문제점을 알려 나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시민들은 '무건리훈련장 확장 저지'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김종일 '무건리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트랙터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를 힘겹게 걸어왔다"며 "경찰이 트랙터 순례를 막은 '교통체증'이라는 명분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고 비난했다.

주병준 '무건리 주민대책위' 위원장도 파주시청 앞 약식집회에서 "지차체나 경찰이 주민들을 계속 탄압하고 있는데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며 "평화로운 트랙터 순례를 위해 사전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경찰이 오히려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의 행진을 막았다"고 공격했다.

주민들은 이날 5시간 여의 파주지역 '평화 순례'를 마치고 파주시청 앞에서 자진해산했다.

▲파주경찰서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하자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트럭 뒷켠에서 앉아 담배를 물은 이영환(52)씨는 "파주시내까지 걸어서 가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펼치는 주민들 중 한 명이다. 소위 '강경파'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웅웅'대는 바람 소리 속에서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우리 아버지도 79년 즈음에 정부에 토지를 빼앗겼다"며 "토지를 두 번씩이나 빼앗기는 데 얼마나 억울한지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대를 이어 토지를 빼앗긴다는 것. 그것은 오현리 주민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당시 19살이었던 그는 "그때 정부는 지금처럼 토지 협의조차 하지 않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주민들을 협박해 토지를 매입했다"고 회상했다. 옆에 있던 이영우 씨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라고 말을 받았지만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에서도 답답함이 묻어났다.

트럭 뒷켠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던 주민들의 한 숨은 담배연기로 변해 바람결에 흩어졌다. 나무껍질처럼 바짝 마른 그의 손가락에 끼인 담배는 주민들의 마음처럼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이영환 씨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시고 11년 전에 마을로 돌아왔다"면서 "내 고향이고, 내 추억들이 여기 있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협의 매수는 절대 안 한다. 여기서 나가면 다 죽은 사람인데, 다 죽은 사람인데"라며 "주민들이 이곳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지는 않고 내쫓을 방법만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5천만 원 집이라도..그냥 이대로 살게 해줬으면"

▲ '토지 매매 협의 요청서'를 들고 오세일 1군단 무건리훈련장 확장 사업단장에게 항의하는 전창준(51)씨[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윗옷을 훌렁 벗은 전창준(51)씨의 등에는 '고향땅을 지켜내자'라는 빨간 글씨가 적혀 있었다. 트랙터를 사방에서 막은 경찰에 전 씨는 종이 뭉치를 내보였다. 토지감정평가단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토지 매매 협의 요청서였다.

첨부된 '손실보상액' 문서에는 전 씨의 전 재산에 대한 감정평가 결과가 나와 있었다. 토지감정평가단이 내린 감정가는 총 5천여 만원. 전 씨가 토지감정평가를 거부하자, 토지공사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임의적으로 평가한 금액인 것이다.

전 씨는 문서를 보이며 "이게 어떻게 말이 되는 것이냐"며 "자기들 마음대로 평가를 내리고 기간을 정하고, 시일 내에 협의매수를 하라니 말이 되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5천만 원이라는 평가도 그렇거니와, 5천만 원짜리 집이라도 그냥 이대로 살게 해달라"며 토지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서에는 "4월 14일까지 토지 협의에 응할 것을 요청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같은 상황은 전 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한국토지공사의 토지 협의 매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마을 주민들을 괴롭혀 왔다. 토지감정평가단은 허락하지도 않은 주민들의 토지와 주택 등을 기습적으로 방문,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지난 9월, 감정평가에 항의하는 주민들이 연행됐고, 이에 항의하며 촛불문화제를 벌이고 있던 마을 주민 30여 명이 연행되는 등 주민들에게 감정평가는 '골칫거리'였다.

현재도 주민들은 토지감정평가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오현리 마을 가구 중에 30% 정도가 감정평가단의 회유로 인해 감정평가를 받은 상태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혼자 사는 노인들의 집에 찾아가 "원래 못 파는 땅인데, 좋은 가격으로 사겠다"며 기만적인 방법으로 협의 매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토공은 14일까지 2차 협의 매수 기간 이후, 3차 기간을 통보할 예정이다. 3차 기간 동안 협의 매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토위로 토지 수용 신청이 들어가 본격적인 토지 강제 수용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여 주민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된 '토지 매매 협의 요청서'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러나 주민들은 "고향 땅은 절대 팔지 않을 것"이라며 오현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주병덕(48)씨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주민들의 관심을 이쪽으로 끌어놓으면서 마을 뒷편에서는 주민들 모르게 땅을 갈아엎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 없이 토지 수용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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