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가 밝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2년차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신년을 맞아 통일운동단체, 대북지원단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 실무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봤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한 각 운동진영의 현주소를 조명했습니다. <신년기획>은 ①통일운동진영의 현주소 ②대북지원단체의 고민과 대응 ③방담-시민.사회.네티즌의 소통 ④인터뷰-실천연대 구속자 가족 ⑤르포-미군훈련장 확장으로 고통 받는 무건리 주민들 순으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있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구속자 가족들의 새해 소망은 남편들이 당당하게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다. 맨 위 사진은 실천연대 곽동기 정책위원의 부인 박지현씨(좌)와 강진구 조직발전위원장의 부인 박선혜씨(중), 문경환 정책위원장의 부인 양정은씨(우).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이 곤한 잠에 빠져 있던 새벽녘, 벼락처럼 들이닥친 국가정보원 수사관들과 경찰에 의해 ‘아빠’들이 끌려간 지 벌써 해를 넘겨 넉 달째다.

지난해 9월 27일 국정원이 전국 20여개가 넘는 곳에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상임공동대표 권오창 등)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진행한 그날 이후, ‘아빠’들이 구속된(10월 24일) 네 가족은 서로를 의지해 왔다.

기축년 새해를 앞둔 지난 21일 저녁 7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실천연대 건물 5층의 ‘6.15어린이방’에 문경환 정책위원장, 강진구 조직발전위원장, 곽동기 정책위원의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빠’들이 구속된 이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왔던 가족들이 설을 앞두고 서로의 근황을 챙기고, 매주 금요일 열리는 재판상황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최한욱 집행위원장의 부인 하유진(33)씨는 아들 유림이 아파 함께 하지 못했다.

#1. 6.15어린이방

▲ 문경환 정책위원장의 맏딸 한결이가 친척동생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6.15어린이방은 실천연대 가족들의 보금자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5평 남짓한 ‘6.15어린이방’이 엄마들과 아이들로 북적였다. 아빠(문경환 정책위원장)가 끌려가던 그날 엄마(양정은.34) 뱃속에 있었던 어린이방의 막내 문하늘(3개월)부터 아빠(강진구 조직발전위원장)의 면회를 가는 것도 좋지만 ‘놀토’가 아닌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환호성을 지르는 맏형 준일(10) 군까지 총 10식구가 자리했다. 공교롭게도 검찰이 구속기소한 네 가족은 모두 30대로 아이들이 고만고만하다.

6.15어린이방은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보육시설이 아니다. 정식 보육시설로 만들기 위해 시에 인가 신청을 냈지만, 요새 어린이방이 너무 많아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어린이방에는 구속자 네 가족뿐만 아니라 실천연대 활동가들의 아이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다.

방 한가운데선 문경환 정책위원장의 부인 정은씨와 맏딸 한결이(6)가 하트모양의 풍선, 색색의 종이들과 ‘씨름’을 하고 있다. 한결이가 친척동생에게 주기 위한 선물의 포장지를 만드는 것인데, 작달막한 풍선이 영 불어지지 않는지 뽀송뽀송한 한결이의 얼굴이 벌게졌다. 정은씨는 “아빠가 그렇게 된 뒤로 한결이를 잘 챙기지 못해 왔다”면서 직접 포장지를 만들며 아이에게 눈을 맞췄다.

한결이가 한창 ‘창작’에 몰두해 있는 동안 곽동기 정책위원의 외동아들이자 어린이방의 ‘훈남’으로 불리는 범준(3)이도 엄마(박지현.32)에게 풍선을 불어달라고 눈빛과 손짓을 보낸다. 이날 낮잠을 못자 예민해진 범준이 바닥을 뒹굴며 생떼를 부리자 한결이가 한마디 한다. “넌 다 큰 애가 왜 그러니?” 6살 한결이가 세살박이 범준이에게 던진 이 한마디에 어린이방이 웃음바다가 됐다.

20분 간격으로 어린이방이 떠나갈 듯 울어대던 하늘이가 또 시작이다. “계속 울면 성격 나빠진다”며 정은씨를 대신해 강진구 조직발전위원장의 부인 박선혜(37)씨가 일어나 하늘이를 안는다.

정은씨는 유림이가 아파 이날 모임에 함께 하지 못한 유진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유림이네는 ‘아빠’가 끌려간 그날 이후 무서워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석 달간 친척과 지인들의 집에서 머물렀던 터여서 걱정이 더 크다.

#2. 국가보안법이 안겨준 또 다른 가족

▲ 어느날 불쑥 찾아온 '불청객' 국가보안법이 맺어준 인연.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쇠창살에 갇혀버린 아빠와, 생이별을 당한 아이들 그리고 생계걱정까지. 아빠들이 구속되고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이들 가족을 버티게 해 준건 같은 아픔을 겪는 ‘서로’였다. 이들에게 ‘서로’는 또 다른 가족이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검은색 상복을 입고 청와대로 달려가 경찰들과 마주했을 때, 불룩 튀어 나온 배를 움켜쥐고 국정원 직원과 실랑이를 벌일 때, 서로를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정은씨의 말이다.

“동변상련이라고 집회가 있으면 같이 움직이게 되니까. 속 털어놓기 위해 술 한잔하며 모이고. 애들 저녁 한 끼 때우기 위해 모이면서, 그냥 혼자 처량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겨 나온 것 같아요.”

실천연대 가족대책위 뿐만 아니라 ‘촛불’도 큰 힘이 됐다. 노원구가 집인 선혜씨는 노원지역 촛불시민들의 모임 '노원파워촛불'로 부터 많은 힘을 얻었다.

▲ 지난해 최한욱 집행위원장의 부인 하유진씨와 아들 유림이가 1인시위를 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다 경찰들에 가로막혀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특히 저는 우리 지역 촛불 분들이 너무 많이 도와줬어요. 생일 때도 챙겨주고. 크리스마스 때는 ‘몰래산타’로 준일이도 챙겨주고. 이분들이 없었으면 너무 힘들고 외로웠을 것 같은데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슬에 묶이자 부부관계에도 변화가 일었다. 중학교 교사로 있는 지현씨는 카이스트 출신인 남편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음에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천연대에서 소위 ‘운동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이 자신이 쓴 글이라며 논문을 보여줄 때도 마뜩찮았다.

“소위 운동권이라고 하잖아요. 관심이 없이 살다가 남편을 만나서 간접적으로 겪게 되니까... 전에는 동기씨가 그쪽 일을 하는 게 싫었고, 공학박사도 했는데 졸업하고서 탄탄대로를 갈 수도 있는 거니까... 지금은 ‘아!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이거였구나’ 알게 되고, 애틋해지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좋은 시간을 갖고 있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지현씨는 남편을 많이 이해하게 됐고 또 미안하다고 했다. 이날 모임에서 ‘정세토론’을 할 때도 지현씨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집중했다.

#3. 생이별 그리고 변화

아빠들이 감옥으로 끌려가자, 엄마들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다. 하루에 열두 번도 변한다는 어린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야 오죽하랴만, 생이별을 당한 아이들에게도 적잖은 정서적 변화가 나타났다.

▲ 곽동기 정책위원의 부인 박지현씨와 외동아들 범준군.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곽동기 정책위원이 구속된 이후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지현씨는 어느 날 새벽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범준이가 새벽에 홀로 일어나 앉아 아빠의 사진을 보며 “아빠 때찌, 아빠 때찌”하고 있었단다.

“초반에는 아빠를 찾다가 날이 갈수록 덜해지더라고요. 아빠가 끌려가고 나서 한동안은 아빠한테 가면 ‘아빠, 아빠’ 하고 찾았는데, 요즘에는 낯설어 해요. 눈은 익는데, 목소리나 품이 낯설어 하는 게 느껴졌죠. 동기씨도 ‘내가 가족하고 떨어진 게 느껴진다’고 편지에 썼어요. 정말 속상한건 세 달 동안 아이한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걸 나만 보는 게 가슴 아팠어요.”

지현씨는 남편이 2층 계단 아래로 끌려가면서 “그동안 많이 크겠다. 나 없는 동안...”이라고 했던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 문경환 정책위원장의 부인 양정은씨와 맏딸 한결이.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뱃속에 하늘이를 품고 국정원이며 청와대며 정신없이 뛰어 다녔던 정은씨도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빠가 끌려가던 그날, 시끄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가 대수롭지 않은 듯 “졸려. 난 더 잘꺼야”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던 한결이. 어느 날 면회를 하고 나선 교도소 앞에 앉아 “아빠, 아빠”하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정은씨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정은씨는 “특별접견 때 아빠보고 같이 나가자고 하다가 나왔는데, 밖으로 나오니 이제 알겠다는 거지...”라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해 했다.

한결이의 성격에도 변화가 일었다. 한창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환경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빠도 없는데, 엄마도 눈 마주치고 놀아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최근 들어 우는 일이 많아졌어요. 원래 떼쓰고 우는 애가 아닌데, 야단을 맞으면 수긍을 하고... 근데 지금은 뭔가 억울해 하고 분해해요. 혼나는 일 자체보다 뭔가가 쌓여 있던 게 이런 일로 표출이 되는 것 같아요.”

저녁을 먹기 위해 간 식당에서 소란을 피운다고 혼나 울음을 터뜨렸던 한결이에게 왜 울었냐고 묻자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거야. 스트레스 10번 받으면 재미없어”라고 소곤소곤 말했다.

▲ 강진구 조직발전위워장의 부인 박선혜씨와 준일(우), 효준이.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네 가족의 아이들 중 맏형인 준일이도 어느덧 생이별에 무덤덤해졌다. 선혜씨는 “처음에 법정에 갔을 땐 아빠를 보더니 ‘아빠’하면서 난간을 넘어가려고 하고 눈물바다였는데, 아이가 갈수록 덤덤해진다”고 말했다. 그래도 빈자리야 오죽할까. “삼촌들이 너무 잘해주지만, 아빠의 빈자리가 있죠. 주말이 되면 ‘지금쯤 아빠 안 잡혀갔으면 시골 갈 텐데’하면서 뒤돌아 얘기할 때마다...”

#4. 새해 소망

▲ 아빠를 기다리다 돌잔치도 하지 못한 효준이를 볼 때마다 선혜씨의 가슴이 먹먹해 온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설을 맞아 세 가족이 모두 시댁으로 내려가지만, 강진구 조직발전위원장의 부인 박선혜(38)씨는 고민이다. 시어머님에게 아직 아빠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아직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하도 얼토당토 않았기에 서너 달이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금방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둘째 효준이(1)의 돌도(12월 27일)도 아빠와 함께 치르기 위해 미뤘지만,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다. 분홍색 하얀색 머리띠를 한 효준이의 큰 눈망울을 보니 가슴이 시리다. 설에 맞춰 내려간다고 하니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쇠약한 노모에게 또 거짓말을 할 생각에 선혜씨의 낯빛이 더 어두워졌다. 선혜씨는 “애들하고 천장보고 온 가족이 누워서 자보는 게 소원”이란다.

하루라도 빨리 아빠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야 오죽하겠지만, 이들 세 가족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가족을 옭아맨 국가보안법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선혜씨는 “정말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만 들었지 직접 당해보니까 ‘이 법이라는게 놀랍구나’ 법을 거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죄가 있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이 오고, 동네에서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 이게 연좌제인가? 보안법이라는 게 참 무섭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실천연대는 2006년과 2007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거 행정안전부(구 행정자치부)의 보조금을 받았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며 공개적으로 활동했던 단체가 이명박 정부에서 반국가단체가 된 셈이다.

▲ 변호인에서 피고인으로 재판장에 들어서게 된 민변의 김승교 변호사와 범준이.[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정은씨는 “빨리 나오는 것보다, 무죄가 됐으면 좋겠다. 자기들 마음대로 말도 안 되는 혐의를 걸어서... 이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현씨도 “처음에는 하루라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나오기를 바란다. 본인도 당당하게 나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지금은 여유 있게 기다리려고 한다”고 새해 소망을 전했다.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조촐한 모임이 마무리 될 무렵, 재판 진행상황을 알려주려고 모임에 함께 했던 김승교 변호사(민변, 법무법인 정평)가 저녁 값을 내려하자 세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족대책위’ 공금으로 냈다며 만류했다. 지난해 12월 실천연대 활동가 4명과 함께 추가로 불구속 기소돼, 변호인에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 김 변호사는 “그럼, 이건 대책위 회비입니다”하며 ‘후원금’을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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