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저자)

“결과적으로 우린 국정원 수준에 국한된 총체적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이 활동의 마침표를 찍게 될 것 같다. 진실과 화해, 그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의 핵심 관계자가 한 인터넷언론에 했던 말이다(2006. 11. 21). 이 서글픈 고백이 KAL858기 사건의 최종발표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서글퍼진다. 왜냐하면 진실과 화해, 그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에 대한 ‘반성문’조차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종보고서를 나름대로 살펴본 결과, 그 내용은 2006년 8월의 중간발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다시 한번 국정원 발전위에 실망을 하게 된다. 그 느낌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핵심의혹들에 대해 추정과 심증으로 일관했던 중간발표와 마찬가지로 최종발표 역시 중요한 부분에서 추정 또는 확인이 어렵다는 수준의 결론을 내렸다. 이는 대부분 핵심인물인 김현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둘째, 중간발표 이후 1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다지 특별한 노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중간발표와 비교했을 때 자료의 경우 국정원 측 자료 2000쪽 정도가 추가되었고, 면담의 경우 2명이 더 늘어났을 뿐이다. 특히 김현희 조사의 경우 총 15번의 시도가 있었는데(국정원 9번, 발전위 6번), 중간발표 이후의 시도는 4번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최종보고서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다만 위원회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김현희 조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위원회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사면을 받은 김현희가 현재 역사적인 증언이 필요한 시점에 면담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도덕적, 사회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판단”했다(552쪽).

한편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면 이번 발표의 문제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냐와 관련된 부분이다. 위원회는 주로 하기와라 료의 사진에 의존해 북한 출신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김현희가 왜 두 차례나 자신이 아닌 소녀를 자신이라고 진술했는지에 대해서는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음”이라고 덧붙였다(363쪽). 중간발표 때도 지적했지만, 어떻게 사진만으로 중요한 결론을 확정지을 수 있는가. 게다가 위원회는 중요한 논란사항에 대해 김현희의 진술 외에 확인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김현희의 아버지 김원석에 대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위원회는 김원석의 이력이 확인이 안 되는 것과 관련, “김현희의 자술 이외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없으므로 단정하기 어려움”이라고 적었다(367쪽). 스스로 김현희 조사 실패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폭탄과 관련된 부분이다. 위원회는 “폭탄의 有․無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으나” 김현희가 폭탄의 존재를 진술했다는 것 등을 근거로 김현희의 “폭탄이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424쪽).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안기부 수사발표와 마찬가지로 김현희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으며, 나아가 결론을 추정 수준에서 맺고 있다. 그리고 콤포지션 C4와 액체폭탄 PLX의 구체적 부분과 관련해서는, “김현희의 진술 외에 달리 추정할 근거가 없으므로”라는 식의 단서를 달았다(473쪽). 김현희에 대한 조사가 중요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핵심적인 결론을 다소 무리하게 확정해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 아니며 그가 실제로 폭탄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에도 그 결론을 확정해버렸다는 점이다. 철저한 조사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철저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상황인데도 위원회는 “철저하고 면밀한 조사 활동을 전개”했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사건의 실체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는 오만하고 겸손하지 못한 것으로, 한마디로 ‘진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무엇이든 철저한 재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제 사실상의 마지막 기대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에 있다. 다행히 진실위 관계자는 국정원의 결과를 참고는 하되 “조사는 독립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가지로 한계가 많겠지만 최선을 다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역설적이지만, 국정원 발전위의 최종발표는 하나의 성과를 남겼다. KAL858기 사건의 온전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또한 (앞에서 소개한 고백처럼) 자료협조 및 진정성과 관련해 국정원을 왜 불신할 수밖에 없는지를 확인시켜주었다. 결론적으로 최종보고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물증’으로 남게 되었다. 사건 발생 20년, 우울한 진실 하나가 위태로운 비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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