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금번 사건은 북괴가 아국의 대통령 선거 및 '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해 자행한 사건으로 북괴가 또 다른 만행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 폭로…”(무지개 공작 문건)
“북괴의 범행 목적은…서울올림픽 자체가 열리지 못하게 하고…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을 둘러싸고 극도로 복잡해진 국내 정국을 더욱 혼란시키고…”(안기부 수사발표)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가 115명의 사람들과 함께 버마(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된다. 이와 관련해 당시 안기부는 위의 두 가지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런데 위에서 보는 것처럼, 대통령 선거와 서울 올림픽 등 뭔가 비슷한 내용이 눈에 띈다.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무지개 공작' 부분공개의 문제점

<통일뉴스>의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국정원이 1987년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의 핵심 내용은 대한항공기 사건을 “대선 사업 환경”의 유리한 조성을 위해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을 대선을 위해 활용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것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더욱이 지금껏 사과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번 문건의 공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란 이미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8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가 이를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번 공개의 핵심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즉, 국정원이 ‘부분공개’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첫째, 이것은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와 관련된 문제이다.
단적으로 말해, 국정원과 국정원 발전위의 의지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체 5쪽의 분량에서 2쪽 가량만 공개되었는데 절반 이상이 지워진 상태다. 도대체 무엇을 더 숨길 게 있어 공개하지 못하는가. 기존 수사결과에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마땅히 문서 전체를 공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 지워진 부분을 역으로 추적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개인실명 거론부분, 당시 안기부 조직 관련 사항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즉, 3쪽 가량의 분량에 실명과 조직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문건이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에서 작성되었음을 뜻한다. 전체 문서의 절반 이상이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으로, 당시 공작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계획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셋째, 그렇다면 당시 그렇게 구체적인 공작을 계획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국정원 발전위에 따르면, 무지개 공작은 1987년 12월 2일부터 추진되었다(‘KAL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 중간 보고서, 71쪽). 따라서 문건은 최소한 공작이 전개되기 ‘이전’에 작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11월 29일이니 일단 그 직후에 계획이 수립되었다는 말인데, 그 시점이 문제다. 실종 장소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김현희 씨가 자백을 하기도 전이었는데, 당시 안기부는 “폭로 공작”을 어떻게 구체적인 수준에서 계획할 수 있었을까.

요약하면, 당시 안기부는 어떠한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폭로 공작을 세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작에서 언급한 사건의 본질은 수사발표에서 언급한 사건의 본질과 핵심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대통령 선거 및 서울 올림픽의 방해). 민감하고도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는 별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안기부 수사가 결론을 이미 확정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안기부는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이 사건을 “폭파”사건으로, “북괴의 테러 공작”으로 규정했다(무지개 공작 문건, 1쪽). 단순히 규정의 정도를 넘어서 이것을 “폭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수사 자체도 그러한 차원에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그러한 수사결과를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블랙박스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결론을 확정한단 말인가. 결국 당시 안기부의 수사결과는 신뢰하기 어렵고, 실제로도 문제점이 많으며, 따라서 재조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정원, 진실규명 위해 전면공개해야

한편 무지개 공작 문건과 관련해, 해명이 필요한 두 사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정형근 현 한나라당 의원이다. 그는 사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의 직책에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사과정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아울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논문과 책에서 KAL858기 사건을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기도 했다(“국제테러의 법적규제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법학과 박사학위논문, 1991; 『국제테러의 법적규제에 관한 연구』, 1992). 당시 직책상 무지개 공작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바, 이를 포함해 사건의 전반적인 의혹들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둘째, 박철언 전 안기부장 특보이다. 그는 사건 당시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의 직책에 있었다. 또한 당시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위해 ‘월계수회’라는 조직을 이끌기도 했다. 그의 직책상 무지개 공작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책에서 김현희 씨와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북측 한시해 대표가 노 후보의 당선에 대해 “축하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했는데 그 비밀회담의 내용을 모두 공개할 필요가 있다(『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 291쪽).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존의 수사결과는 구조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재조사가 필요하고, 실체적 진실은 재조사가 철저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진실은 스스로 말할 수 없다. 진실규명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때, 비로소 진실은 입을 열게 될 것이다. 그 진실규명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정 중 하나가 바로 정보공개다.

2003년 11월, 국정원은 “사건의 수사.발표에 있어 역사와 국민 앞에 단 한 점의 부끄럼도 없다”고 공언했다. 정말로 한 점의 부끄럼도 없다면 왜 전면공개하지 못하는가.

덧붙여서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수사와 재판기록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검찰 역시 하루빨리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처럼 사건에 대한 의혹은 국가권력이 정보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확산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끝으로, 다시 한번 국정원에 촉구한다. 기존 수사결과에 자신이 있고,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무지개 공작 문건을 전면공개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국정원은 드라마 <에어시티>의 촬영을 위해 내부를 공개함으로써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 이 글의 일부는 다음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박강성주,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공론화 과정과 영향에 관한 연구: ‘분단권력’의 관점”(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사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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