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858 시민대책위가 28일 사건 당시 유엔 안보리 회의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숱한 의혹을 낳고 있는 KAL858기 사건 당시 한국과 일본의 요청으로 열린 UN 안보리 회의 논의에 참가한 나라들이 국내 언론보도와는 달리 '북한에 의한 테러 행위'에 의구심을 표명하거나 재조사를 촉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KAL858기 사건 18주기를 맞아 28일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상임대표 김병상 몬시뇰)이 '유엔으로 날아간 대한항공 858기'라는 제목으로 주최한 간담회에서 밝혀졌다.

"한국 입장 동조한 나라는 미국 뿐, 7개국이 비판"

발제를 맡은 대학원생 박강성주 씨는 1988년 2월 16일에서 17일까지 이틀간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 속기록과 관련자료 250여 쪽을 검토한 결과, 회의에 참가한 18개국 중 KAL858기 사건을 '북한에 의한 테러'로 규정한 한국 측의 입장을 적극 동조한 나라는 미국 뿐이며, 소련, 중국 등 7개국이 도리어 한국 측의 입장을 비판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국가는 회원국 자격으로 의장국인 미국을 포함해, 알제리,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일본, 네팔, 세네갈, 소련, 영국, 유고, 잠비아 등 15개국이며, 여기에 투표권 없이 참가한 국가는 한국, 북한, 바레인 3개국이다.

▶발제를 맡은 박강성주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 씨는 당시 15개국의 발언을 바탕으로 안보리에서의 논의를 정리해 사건을 일으킨 주체를 명확히 표현했는가의 여부, 공식 수사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는가의 여부, 논의 자체에 대한 찬반 및 우려를 표명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각 국가의 입장을 분석했다.

발제문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미국이 KAL858기 사건이 북한에 의한 테러임을 명확히 밝혔다. 반면, 북한의 경우 KAL858기 사건을 '남측 지도부가 대통령 선거의 승리를 목적으로 꾸민 조작극'이라는 입장으로 한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소련, 중국, 네팔, 잠비아는 KAL858기 사건을 유엔안보리의 의제로 채택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들 모두는 안보리 논의에 반대하면서도 이 사건이 '남한의 조작'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잠비아, 이탈리아, 서독, 유고는 한국에 의해 진행된 수사에는 문제가 있으며 '심층적이고 독립적인 수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잠비아의 경우 "공식.수사결과가 모순점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에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에는 한국의 수사결과에 따러 '북한이 관련돼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북한에 의한 테러행위' 등의 명확한 표현과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그는 평가했다.

요컨대, "당사국(한국.북한)과 관련국(일본.바레인)을 제외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한국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국가는 미국 뿐이었으나,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한국 측의 입장을 비판했던 국가는 소련, 중국, 유고, 이탈리아, 잠비아, 서독, 네팔 등 7개국임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보리 논의, 조건은 불리했으나 결과는 北에 유리"

▶KAL858가족회 회원들이 경청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차옥정 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당시 안보리 논의에 대해 의장국이 미국인 점과 한국의 수사결과에 따라 KAL858기 사건이 '북측이 사건을 일으킨 주체'라는 점이 널리 인식되고 있는 등 "'조건'은 북한에게 불리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북한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이 북한에 의한 테러라는 것을 안보리가 공식 확인하는 수준의 논의가 있었거나,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됐어야 했으나, 안보리에서의 논의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마무리 됐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박 씨는 당시 유엔 안보리 논의와 국내 언론보도를 비교해 본 결과, 언론이 상당 부분 그 내용을 왜곡해서 보도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 및 일본, 서독 대표의 대북 규탄발언이 있었다'고 보도한 1988년 동아일보 2월 17일자 보도나, "한국.일본.서독 대표들은... 극악무도한 테러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북한의 만행을 신랄하게 규탄"했다는 같은 날짜 중앙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또 "미.영.프랑스.일본.아르헨티나.이탈리아 등 서방 우방들은 물론 동구 공산권의 유고슬라비아까지 합세, 북한의... 만행을 일제히 신랄하게 규탄했다"와 같은 1988년 2월 19일자 중앙일보의 보도도 마찬가지라는 것.

나아가 논의 결과 안보리는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 확인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언론은 '참가국들이 KAL858기 사건이 북한에 의한 소행으로 단정내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 "K-87 암호명, 'H-107' 안기부 공작원 소행" 주장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 박 씨는 당시 유엔 논의에서 북한의 박길연 대사가 "대한항공기 사건은 대통령 선거의 승리를 위해 노태우 그룹이 쓴 시나리오에 의해 일어났다. 바로 노태우 세력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실행한 '충격요법'이라는 것이다. 'K-87'이라는 암호명으로 실행된 이 작전은 'H-107'이라는 안기부의 비밀공작원이 비행기를 폭파하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남한 내부의 비밀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물음에 대해 북한의 박길연 대사는 "우리 또한 친구들이 있다"고 답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친구'는 공작원을 뜻하는 의미로서, 그는 "이같은 구체적인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주 큰 의미"라며 검증 및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 2차 회의에서도 "북한은 미국이 대한항공기 사건의 모델이 됐던 '대북 전쟁시나리오(scenario of warfare against North Korea)를 가상 시험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주장한다"고 그는 말했다.

'전쟁 시나리오'에 대해 그는 북한이 1차 회의 때 언급했던 가상 시나리오로, 그 내용은 "1988년 5월 한국의 외무부장관이 대한항공기를 이용해 일본방문에 나서려고 한다. 이 때 비행기를 폭파시켜서 이를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올림픽 등 여러 가지 안보상황을 이유로 북한에 대해 군사적인 보복을 실시하는 것이다"라는 북한의 주장을 설명했다.

그는 '전쟁 시나리오'가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의해 최초 보도됐고, 동아일보가 1987년 6월 2일 이를 인용 보도했다고 전했다.

▶노다 미네오씨의 감사패.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노다 미네오씨를 대신해 대책위 집행위원장 신성국 신부가 감사패를 받았다.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한편, 이날 간담회에 앞서 'KAL858기 가족회'는 KAL858기 사건 18주기를 맞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준 인사와 기관인 통일뉴스, 시민의신문, '파괴공작'의 저자 노다 미네오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본지 이계환 대표와 시민의 신문 백찬흥 이사가 참석해 감사패를 전달 받았으나, 입국 금지 상태인 노다 미네오 씨는 가족회 차옥정 회장으로부터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신성국 신부가 대신 받았다.

이날 간담회는 서울 명동에 위치한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오후 3시부터 1시간 30여분간 진행됐다.

29일 KAL858기 18주기 행사는 오전 11시 명성성당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열리며, 참가자들은 기념행사를 마친 뒤 국가정보원 앞에서 KAL858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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