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를 시작하는 게 이치에 아주 맞다고 생각하며 그 기록을 살펴볼 것이다(look at the record).”

13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6자회담 합의문 타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바로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된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 것이다.

그러면 그 기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그 기록에는 KAL858기(김현희) 사건에 관한 것도 포함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계기가 바로 1987년 대한항공 858기(KAL858기) 사건이기 때문이다.

꼭 라이스 장관의 말에 주목하지 않더라도, 테러지원국 문제는 대한항공기 사건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일단 지정계기가 이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정사유에서도 거의 항상 첫 번째를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이 글에서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KAL858기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계기, KAL858기 사건

2007년 2월 13일, 우여곡절 끝에 6자 회담의 합의문이 나왔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북미 양자회담과 관련하여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무역법 종료를 언급한 2조 3항. 둘째, 실무그룹과 관련하여 북미 관계정상화 부분을 명시한 3조 2항.

여기에서 북미 관계정상화는 당연히 테러지원국 해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적성국무역법 종료와 함께 별도로 명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즉, 테러지원국 해제가 그만큼 중요한 사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KAL858기 사건과 테러지원국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기가 115명의 사람들과 함께 실종된다. 이듬해인 1988년 1월 15일, 안기부는 “북괴 김정일의 지령에 따라 자행된 가공할 만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그리고 며칠 뒤인 1월 20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다.

이러한 테러지원국 지정은 일본의 대북 제재조치에도 영향을 주고, 이 흐름은 1988년 2월 16.17일 양일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로까지 이어진다. 미국은 당시 긴급회의의 의장국이었다.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는 KAL858기 사건의 책임소재가 북한에 있다는 결의안 채택이 추진되었지만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산되었다.

모두 18개국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직접적으로 발언을 한 국가는 15개국이다. 이중 당사국(남한.북한)과 관련국(일본.바레인)을 제외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남한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국가는 미국뿐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유엔에서는 KAL85기 사건의 책임소재가 북한에 있다는 주장이 배척되었지만 미국이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이전에 이미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림에 따라 각종 제재가 가해진다.

물론 그 이전부터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하지만 당시 테러지원국 지정은 북한에게 더욱 강화된 제재를 가져오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개혁개방과 거의 직결된 문제이다. 또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북한에 들어갈 산업설비와 부품이 문제가 된 적도 있는데, 이 역시 테러지원국 명단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테러지원국 지정은 북한을 국제무대에서 ‘문제국가’로 낙인찍는 정치적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미국으로서는 테러지원국인 북한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테러지원국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커다란 긴장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테러지원국 문제이고, 그 계기는 바로 KAL858기 사건이었다.

테러지원국 지정사유에서 한때 사라졌던 KAL858기 사건

그러면 테러지원국 명단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테러지원국 명단은 1979년에 미 의회에서 통과된 수출규제법에 따라 1981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다. 이 명단은 미 국무부가 매년 봄에 발행하는 ‘국제테러유형보고서’(Patterns of Global Terrorism)에 들어있으며, 9.11의 영향으로 2005년부터는 보고서 이름이 ‘테러리즘 국가보고서’(Country Reports on Terrorism)로 바뀌어 발행되고 있다(http://www.state.gov/s/ct).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일단 행정부가 특정 국가를 명단에서 해제하기 전에 의회에 이를 통보한다. 그러면 의회가 이와 관련해 해제여부에 대한 법적 선택권을 갖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국가가 최근 6개월동안 테러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과 해당 정부가 앞으로 테러를 지원하지 않을 것임을 대통령이 보고서로 증명.보장해야 한다.

2007년 2월 현재 북한을 포함해 쿠바, 이란, 수단, 시리아 등 모두 5개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북한은 1988년 이후 계속해서 그 명단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덧붙이자면, 테러지원국 명단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테러지원국 명단은 미국 정부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 면이 없지 않다. 역사적 경험은 미국 자신부터 수많은 테러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결국 자신의 문제를 철저히 ‘타자화’하여 상대방을 내려치는 폭력적 방식, 이것이 테러지원국 명단의 또 다른 측면이다).

북한 관련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87년판 보고서를 통해 KAL858기 사건이 그 지정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판 보고서부터는 지정사유에 일본 적군파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추가되었고, 9.11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게 언급되었다(박강성주 석사논문, 72~73쪽).

가장 최근에 나온 2005년판 보고서에는 KAL858기 사건과 더불어 일본인 납치, 남한인 납치, 일본 적군파 요원 피신처 제공 등이 명시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KAL858기 사건이 1999년판 보고서부터 그 지정사유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7년 이래’(since 1987)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2002년판에 등장한 이후, 2003년판부터는 그 지정사유로서 다시 명시되기에 이른다.

이는 다른 지정사유와는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적군파 요원에게 피신처를 제공한 것은 매년마다(1988~2005년판) 지정사유에서 계속 명시되어 왔다. 이와 같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KAL858기 사건을 테러지원국 지정사유로 명시하는 데 있어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겠다.

참고로 KAL858기 사건이 처음 삭제된 때는 남북 정상회담이 있던 무렵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다시 등장한 때는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무렵이다(여기에서 김 위원장은 다구치 야에코의 납치를 인정했고, 일부에서는 이것이 바로 북한이 대한항공기 사건을 시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다구치 야에코가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인 ‘리은혜’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김현희의 진술에 의한 것일 뿐, 물증에 의해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렇듯 대한항공기 사건은 ①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의 계기, ② 테러지원국 지정의 지속적이고도 대표적인 사유, ③ 테러지원국 지정사유의 일관성 문제 등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한편 대한항공기 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어떤 자료들을 가지고 있을지 다시금 주목된다.

1988년 1월 20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서 KAL858기 사건과 관련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2월 4일,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 소위가 이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했고, 여기에서 미국 정부는 ‘독자적인’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KAL858기 사건은 ‘북한 공작원에 의한 테러’라고 발표한다.

나아가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미국은 남한의 수사결과와 자신의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이 사건이 북한의 테러라는 주장을 펼친다.

결국 미국만의 확실한 자료와 증거가 있다는 것인데 언론에 발표되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구나 유엔에서 북한 책임론을 증명하지 못해 다른 나라들이 결의안 채택을 반대하도록 내버려둔 이유 역시 궁금하다.

현재 KAL858기 사건은 그 실체적 진실과 관련해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계가 많이 드러나긴 했지만) 국정원 내부위원회가 재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했고, 과거사법에 따라 출범한 진실위원회가 재조사 개시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테러지원국 해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다는 것은, KAL858기 사건에 대한 또 다른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 테러지원국 문제는 KAL858기 사건보다 테러와의 전쟁, 일본인 납치, 일본 적군파 문제와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5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북미 적대관계의 큰 틀에서 바라볼 사안이다. 따라서 테러지원국 문제를 KAL858기 사건으로 환원시키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지정계기라는 측면에서, 테러지원국 문제는 KAL858기 사건과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 이 글은 다음의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박강성주,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공론화 과정과 영향에 관한 연구: ‘분단권력’의 관점”(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사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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