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강성주 저『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선인, 2007)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는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건대, 그러한 긴장감과 두려움이, 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습니다.”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선인, 2007)의 저자 박강성주는 자신이 87년 KAL858기 사건에 대한 석사논문과 이 책을 쓰게 된 동력을 ‘두려움’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실은 채 미얀마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은 우리 사회, 특히 ‘주류 사회’에서는 다루기에 ‘두려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간 KAL858기 사건을 다룬 몇 권의 책이 나온 적은 있지만 박강성주의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은 이 사건을 학술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석사논문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공론화 과정과 영향에 관한 연구: ‘분단권력’의 관점」(경남대북한대학원, 2005)을 중심으로 몇몇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과 머리글에 해당하는 ‘독자에게 쓰는 편지’, 후기에 해당하는 ‘모두에게 쓰는 편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이 석사논문을 통해 KAL858기 사건의 공론화 과정을 ‘분단권력’의 관점이라는 독창적인 분석틀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분단권력이라는 개념이 아직 학문적 공식성을 획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분단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이익을 획득하는 주체와 그러한 목적에 이용되는 것들의 총체”라고 정의하고 분단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정치사회적 권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분단권력의 구성요소를 정치세력, 억압제도, 학습장치, 대결주의 등 4가지로 나누는데, 이들은 각각 행위자, 제도, 장치, 이념이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도출해낸 것들로, 이를 통해 KAL858기 사건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또한 분단권력과 백낙청 교수가 제기한 분단체제와의 차이성에 대해서도 백 교수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나름대로 차별성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분단권력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는 학술적 성과에서 보다는 KAL858기 사건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왜곡된 공론화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사건 발생 직후(1987년)부터 국정원 발전위의 공식적인 재조사(2005년)까지를 일관된 틀로서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사건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간 소홀히 다루어져왔던 북측의 입장이나 국제관계에 대해 비중있게 정면에서 다룬 것은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북의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원자료를 통해 북측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특히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문제나 이은혜 문제로 인한 북일 수교회담에 미친 영향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마도 이 논문이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유엔 안보리 회의(1988.2.16-17)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고, 국내 언론들은 이를 어떻게 보도하였는가를 세세하게 보여준 것은 이 논문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유엔안보리 회의에서는 국내 언론들이 왜곡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을 제외한 다른 참가국들의 부동의로 한국이 요청한 대북 규탄 결의를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가 부록으로 첨부한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한항공 858기 사건’은 당시 유엔 안보리 회의 속기록을 번역, 요약한 자료로서 학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노력의 흔적으로 평가할만 하다.

저자는 석사논문 외에도 ‘KAL858기 사건 연구자’로서 이 사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중요한 상황 전개시 언론매체들에 기고하는 등 여느 연구자들과 달리 실천적 글쓰기에 나서고 있다.

저자가 KAL858기 사건과 ‘운명적 만남’을 가진 계기도 특별하다. 2002년 통일부가 주최한 전국 대학생 통일논문 현상공모전에 응모해 당선된 저자의 논문이 KAL858기 사건의 재조사 필요성을 언급해 이 때문에 수상이 취소되는 과정을 겪으면서부터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쓰는 편지’와 ‘행복한 논문쓰기’, ‘나는 나약했다’ 등 여러 글들 속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마음가짐, 고뇌하며 자기 중심을 잡아가는 성장과정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드러내 보인다.

“‘고통’을 논문으로 다루는 입장에서 나는 감히 웃을 수 없었다. 바로 ‘고통에 대한 예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내 자신을 너무 ‘억압’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그만큼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는 저자의 자기고백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이른바 ‘주류 사회’와 분단권력이 진실을 호도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퍼트리기에 급급한 현실 속에서, 즉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진리 앞에서 ‘진실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두려움의 힘’으로 진실을 찾아나선 용기 있는 저자의 발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KAL858기 사건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물론,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진지한 자세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예의'와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깊은 공명을 안겨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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