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는 지난 2004년 11월 발족이래 조사내용을 망라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했다.

국가정보원(원장 김만복, 이하 국정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종합보고서는『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題下 총 6권으로 구성됐으며 1권은 ①위원회 설립과 활동 ②조사결과 ③성과와 한계 ④권고사항 및 국정원측의 다짐 등 진실위 관련 활동사항을 엮은「총론」이며 2권·3권은 “①부일장학회 헌납·경향신문 매각 사건, ②인민혁명당·민청학련 사건, ③동백림 사건, ④김대중 납치사건, ⑤김형욱 실종사건, ⑥KAL858기 폭파사건, ⑦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등 7개 개별사건 조사결과, 또한 4·5·6권은 “정치·사법·언론·노동·학원·간첩분야”에서 지난시절 中情·安企部가 통제·개입·사찰해온 행적에 대한 조사결과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중 처음으로 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김대중 납치사건’과 지난해 8월 중간 조사결과 발표를 한 바 있는 ‘KAL858기 사건’이 주요 관심대상이다.

국정원은 “보고서 내용과 관련 本위원회는 10.26(金) 10:00부터 국가정보원에서 기자설명회를 개최하여 추가적인 질문이나 문의사항에 응답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종합보고서 6권은 모두 국가정보원 홈페이지(www.nis.go.kr)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국정원, 김현희 연락처 제공 요청 거부

먼저 KAL858기 사건에 대해서는 “진실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KAL858..기 폭파사건의 실체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하였다”며 “이 사건의 배후에 북한의 대남 공작 조직이 있었으며, 그 조직의 공작원인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자행된 사건임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과 근거들을 확인하였다”고 결론지었다.(3권 55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라는 거의 유일한 근거인 ‘화동사진’과 관련해 “김현희가 1972.11.2 평양 헬기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면서도 “김현희가 왜 두 차례나 자신이 아닌 소녀를 자신이라고 진술했는지에 대해서는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해 신빙성에 의문을 남겼다.(364쪽)

특히 국정원 발전위는 김현희와의 직접 면담을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국정원은 ‘신변 안전문제’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위해 등을 이유로 진실위의 김현희의 연락처 제공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져 국정원의 진상규명 의지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219쪽)

“KAL858기 '산산조각' 났다고 볼 근거 희박"

그러나 “김현희가 사용했다는 폭탄의 양과 종류는 1988.1.15 안기부 수사발표와는 달리, 그 양이 더 적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KAL858기가 산산조각 났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고, 대한항공이나 정부의 공식 입장도 ‘산산조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472쪽)

특히 “라디오를 휴대 탑승한 것은 사실로 여겨지나, 또 다른 위장폭탄인 '약주병'의 존재를 확인하는 문건이 없고, 수사발표일인 1988.1.15 이후 전문인 1988.2.17 이라크 파견관의 전문 내용에도 ‘약주병’의 존재 여부에 대해 검색원이 ‘없다’라고 진술한 점으로 보아, ‘약주병’의 존재는 부정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혀 폭파의 직접적 원인으로 발표된 바 있는 액체폭약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424쪽)

뿐만 아니라 “폭탄의 유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으나 KAL858기 실종 상황 상 폭탄테러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이며 김현희가 폭탄의 존재를 진술했고, 해당 진술들이 사실에 부합하는 점 등을 근거로 폭탄이 있었다고 추정된다”고(425쪽) 밝혀 추론에 입각해 무리한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비판의 소지를 남겼다.

국정원 발전위는 KAL858기 사건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7가지 분야의 148개 항목 별로 ‘의혹내용’과 ‘조사 결과’ 국정원 발전위의 ‘판단’을 400여 쪽에 걸쳐 서술해 일부 의혹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해명을 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KAL858기의 실종 원인, 김현희.김승일의 신분과 폭탄테러 여부 등 핵심적인 의혹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규명을 내놓지 못했으며, 몇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혹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예를들어 “바레인에서의 다른 비행경로가 있었음에도 왜 굳이 로마 경유를 고집하여 늦게 출발하려 했는가”라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김현희와 김승일의 행동에 대해 “동 의혹과 관련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11:30 이용하려던 바레인 출발 로마행 노선의 좌석이 매진됐다면 당일 출발하는 다른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상식이나 로마 경유 비행편을 고집한 것은 의문”이라고 ‘판단’했다.(307쪽)

김대중 납치사건, “중정에서 주도, 박대통령에게 보고”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중앙정보부 이후락 부장의 지시로 중정 0국이 ‘KT공작계획안’에 따라 저질렀다며 “명백한 증거자료를 통해 ‘김대중납치사건’은 중정에서 주도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바이다”고 발표했다. 또한 “납치공작이 한참 진행 중이던 73.7.27 박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그 증거로 △전직 중정 직원 및 용금호 선원들의 납치사건 가담 인정 증언 △0국과 파견관간 납치실행 추진상황 송수신 전문내용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관리대책 방안 문건 등을 제시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대중 납치사건은 “정치적 위상이 높아진 김대중이 박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함으로써 본격적인 정적 관계가 형성”됐으며, “김대중이 미국과 일본의 정계..언론계..학계 등 유력인사들과 접촉 박정권 지원중단 협조요청과 함께 ‘한민통’을 결성하여 정권 타도 투쟁을 전개하면서 망명정부 수립 의사까지 밝혔다는 보고를 받은 박대통령 및 이후락으로서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을 것”이라고 그 정치적 배경을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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