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경미한 형량’, 외교부 등 ‘응분의 형량’ 주장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KAL858기 사건의 폭파범으로 체포된 김현희를 한 번도 감옥에 수감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문과정시 자백한 북한의 사주 사실 번복 가능성’ 등을 이유로 경미한 형량을 주자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29일 공개하면서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1987-90년 김현희의 사법처리와 1989-90년 KAL기 수색 및 잔해 인수 관련 공문이 포함됐다.

‘KAL기 폭파사건 관련범인 처벌문제논의를 위한 관계부처회의 결과’에 따르면, 1988년 11월 10일 안기부에서 관계부처회의가 열렸고, 외교부는 국제기구조약국장이 참석했다. (2017060009-0029)

외교부가 30년을 경과한 외교문서를 29일 공개했다.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의 형량문제를 두고 안기부와 외무부 등의 상반된 주장이 담긴 문서도 공개됐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외교부가 30년을 경과한 외교문서를 29일 공개했다.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의 형량문제를 두고 안기부와 외무부 등의 상반된 주장이 담긴 문서도 공개됐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이 자리에서 ‘처벌방침(형량문제)’를 두고 안기부는 ‘가급적 경미한 형량’을 주장했고, 그 근거로 △신문과정시 자백한 북한의 사주 사실 번복 가능성 △범인의 협조자세 유지 △범인의 대공심리전 활용이 제시됐다.

안기부 조사 결과 폭파범으로 확정된 김현희가 법정에서 ‘북한의 사주 사실’을 번복할 경우 물증이 없는 안기부와 검찰측이 곤란한 처지에 몰리게 될 수 있어 ‘범인의 협조자세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 한 마디로 이 재판은 물증은 없고 김현희 입에 달려있어 김현희가 ‘갑’의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이에 비해 외무부 등은 △국제협약상 의무 △ICAO 등 관련 국제기구의 관심 △유가족의 관심 △국제테러리즘에 대한 강경 대처 추세 △주한 외국 특파원의 지대한 관심 등을 근거로 “응분의 형량이 주어져야 하고 처벌후 사법적 구제는 추후 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외교부는 “김현희가 사면이 될 경우 아국의 국제법 위반이 명백하고 지금까지 858기 사건 처리시 우방을 동원하여 북한을 규탄한 근거를 상실한 결과가 됨. 또한 추후 858기 사건과 유사한 사건의 재발시 아국은 우방과 국제기구에서의 사건 규탄 입지를 상실할 우려가 있음. 따라서, 현재 불구속 기소중인 김현희를 일단 수감하여 일정기간 복역(예: 84년 중공 민항기 납치범)케한 후, 단계적으로 특별감형, 형집행정지 또는 특별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0054)

실제로 외교부 등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김현희는 1,2심에 이어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김현희는 단 하루도 수감되지 않은 채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4월 12일 특별사면을 받았다.

항공기 테러범이 감형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즉각 특별사면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당시 안기부 수사발표에 따르면 김현희와 김승일(자살)은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KAL) 858편에 폭탄을 설치해 115명 전원을 사망케한 북한 공작원이다.

바레인·ICAO, ‘사법처리’에 관심...유족회, ‘공개재판·사형’ 요구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현희를 체포해 한국에 넘겨준 바레인과 국제 항공사고를 담당하는 몬트리올에 본부를 둔 ICAO(국제항공기구)는 김현희의 사법처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했고, 우리 정부는 특별사면을 실시한 후 이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설득’하는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위해 외교부 본부와 바레인 대사관, 몬트리올 총영사관 사이에 오고간 공문서만도 여러 건이다.

김현희(오른쪽)는 유일한 증인이자 '대공 심리전 활용' 목적 등의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국정원발전위 재조사 등에 응하지 않았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에 개입했다. 사진은 2009년 3월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일본인 납북자 가족을 만나 기자회견을 가졌고, 이듬해 일본 정부가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현희(오른쪽)는 유일한 증인이자 '대공 심리전 활용' 목적 등의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국정원발전위 재조사 등에 응하지 않았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에 개입했다. 사진은 2009년 3월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일본인 납북자 가족을 만나는 모습. 이듬해 7월 일본 정부가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바레인 외무부의 유력 간부가 “동 사건으로 인한 희생규모등에 비추어 김현희는 당연히 사형이 집행되져야 하는것이 아닌가”라고 주문했는가 하면(0053), ICAO 의장(KOTAITE)은 해외 여행 중 방콕에서 김현희 사면보도를 듣고 “충격(SHOCK)”을 받아 “ICAO 기본정책에 “나쁜영향(JEOPARIDZE)”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0104)

우리 정부는 “금번 사면은 국제법적 논리보다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남북한대치라는 특수상황에서 아래 정책적 고려에 따라 취해진 대통령의 통치 행위”라고 해명하고 “김현희는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므로 사형 집행시 증거인멸이 됨”, “김현희는 국가테러의 도구로 이용된 하수인으로서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고 사건 진상을 자백한 후 전향함”, “북한의 만행을 계속적으로 알려 반공교육 자료로 활용함”을 설득 근거로 제시했다.(0090-91)

'KAL858기 가족회'는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2003년 16주기 추도식 직후 국정원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KAL858기 가족회'는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2003년 16주기 추도식 직후 국정원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희생자 가족들도 여러 차례 정부에 공개재판과 사형을 주문했다. ‘대한항공 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회장 권기옥)는 1988년 6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 “순수한 민간인 115명 전원을 희생시킨 살인자 김현희를 하루속히 공개재판하여 사형에 처하십시오”라고 요구했다. 1988년 12월 19일 교통부장관에게 보낸 탄원서에서도 “살인범 김현희는 공개 재판을 하여 극형에 처하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2016070044-0011, 0021)

유족회는 이 외에도 정부가 약속한 위령탑 건설과 보험금과 보상금 지급 등을 촉구했다. 특히 경찰을 동원해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보상금 7천 9백만원을 수령하도록 강요했고, 대한항공사측 해결사원 3,4명씩을 분담시켜 개개인 유족으로부터 합의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0015)

미얀마 해역서 잔해 무더기 발견...재수색은 실패

유족회는 여러 차례의 탄원서에서 “김현희의 말대로 폭파된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KAL858기 잔해및 희생자들의 시신을 찾는 일에 성의를 다해 주십시오”, “모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 재수색을 하여 희생자의 유해와 유품을 찾아줄 것을 호소하며, 이 문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계속 투쟁할 것을 호소합니다”(0016, 0020)라고 재수색을 강하게 요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90년 3월 미얀마 해역에서 발견된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 안기부는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고 폭파 흔적을 찾지 못하자 슬그머니 폐기처분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실제로 1990년 3월 미얀마 해역에서 태국 어선이 올림픽 마크와 ‘서울 1988’ 등이 새겨진 KAL858기 잔해로 추정되는 다수의 항공기 잔해(60점)와 승객 소지품(가방 1개) 등을 수거했고, 우리 정부는 태국과 미얀마 등을 상대로 총력 외교를 펴 잔해들을 인수해 국내로 가져왔다. 유가족 62명은 방콕 현지에서 유품을 확인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올림픽 마크가 선명한 KAL858기 동체 잔해 두 개(각 2m 50cm) 등은 안기부가 국과수에 감정을 맡겼고, 감정 결과 폭발 흔적을 찾지 못했는데 국과수에서 폐기처분해 의혹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주태국 대사(정주년)는 “(태국)항공국이 확인한 KAL 잔해의 인양지역은 위도 13도 30분 경도 98도와 위도 14도 30분 경도 95도 30분의 두곳으로서 미얀마 영해이며, 87.11. 사고당시 운항보고지점 URDIS에서 TAVOY로 가는 도중 교신이 끊겼는데 동 TAVOY도 미얀마 영토이므로, 항공국은 KE858 사고가 미얀마 영공에서 발생한 것이 확실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함”이라고 보고했다.(0052) 이후 두 페이지의 공문서가 ‘공란’ 처리돼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리 정부가 주도한 미얀마 안다만 해역 수색은 1990년 11월 1일부터 한 달간 잔해가 인양됐던 타보이 반도 남단에서 진행됐지만 소득이 없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우리 정부가 주도한 미얀마 안다만 해역 수색은 1990년 11월 1일부터 한 달간 잔해가 인양됐던 타보이 반도 남단에서 진행됐지만 소득이 없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김건 외교부 차관보는 지난해 11월 25,26일 미얀마를 방문해 KAL858기 추정 물체에 대한 현지수색과 관련한 미얀마 당국의 협조를 구했다. 30여년 만에 다시 추진된 현지수색은 미얀마 정치상황 변화로 다시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건 외교부 차관보는 지난해 11월 25,26일 미얀마를 방문해 KAL858기 추정 물체에 대한 현지수색과 관련한 미얀마 당국의 협조를 구했다. 30여년 만에 다시 추진된 현지수색은 미얀마 정치상황 변화로 다시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후 우리 정부가 주도한 미얀마 안다만 해역 수색은 1990년 11월 1일부터 한 달간 잔해가 인양됐던 타보이 반도 남단(북위 13도 30분, 동경 098도 근해)에서 진행됐지만 소득이 없었다.

지난해 1월 대구MBC가 안다만 해역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비행기 동체 추정 물체를 촬영해 방영했고, 지난해 11월 김건 외교부 차관보가 미얀마를 방문해 현지 수색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협조를 얻어냈지만 수색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미얀마 군부가 집권하면서 기존 정부와의 약속은 물거품이 된 상태다. 30여년을 기다려온 가족들은 다시 기약없는 고통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처지다.

외교부 “공개율, 예년에 비해 높아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1994년부터 시작된 외교문서 공개는 이번이 28차이며, 총 3만여 권(약 423만쪽)의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해 왔고 올해는 1990년 문서 2090권(약 33만쪽)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국민의 알권리와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가급적 공개한다는 원칙으로 심사하고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공란이나 먹으로 처리된 비공개 부분에 대해서는 “비공개 퍼센티지는 10% 남짓”이라며 “생각하는 것보다 공개율이 높다... 예년에 비해 높아졌다”고 답했다. 다른 관계자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서 민감한 사안을 빼고는 거의 공개하는 쪽”이라며 “작년은 개인정보가 들어있으면 다 비공개했다면 이번에는 지울 부분만 지우고 나머지는 공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 △한-소련 수교 △한국의 유엔가입 추진 △노태우 대통령 미국 방문 △한국과 불가리아, 체코, 동독, 루마니차 수교 △제1차 한-아세안 공동위원회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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