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북한공산집단의 적화통일 책략수행을 위한 인간도구로 개조되어 이 사건 범행에 투입된 한낮 꼭둑각시에 불과할 뿐”(2017060009, 60쪽). 1988년 4월 12일, 정부가 김현희에 대한 특별사면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KAL858기 “사건의 실질적인 주범은 김일성 부자라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정부는 김현희가 “사건의 진상을 생생하게 증언해 줄 유일한 생존자로서 … 북한공산집단의 폭력성과 침략적 근성을 생생하게 입증할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 대한민국 품안으로 과감히 수용하므로써 …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대국적 차원에서” 사면을 한다(60∼61쪽).

“유일한 생존자 … 역사의 산 증인”

외무부는 이 조치가 왜 필요한지 국제사회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그 대상 가운데 하나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다. “김현희 사면조치의 부당성 지적과 비난이 있을 경우 그 강도를 최소화시키고자” 했다(90쪽). 국제규범에 따라 김현희는 엄하게 처벌받아야 했지만 이를 피했기 때문이다.

정당화 논리는 법무부가 제공한다. “[국제]조약은 국내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특별사면은 헌법상 인정된 대통령의 특권행사라고 할 것이므로 법률간의 충돌문제는 발생하지 아니함”(79쪽). 이를 바탕으로 외무부는 항공기구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려 했다. “사면은 국제법적 논리보다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남북한대치라는 특수상황에서 아래 정책적 고려에 따라 취해진 대통령의 통치 행위임. … 사형 집행시 증거 인멸이 됨. … 진상을 자백한 후 전향함. … 반공교육 자료로 활용함”(90∼91쪽).

1988년 4월 17일, 캐나다 몬트리올 주재 총영사는 항공기구 관리들을 찾아가 면담했다. 사무총장과 법률국장은 사면에 대해 “한국현실에 비추어 잘된 판단” 또는 “국가의 주권사항(SOVERIGN MATTER)으로서 외부에서 간여할 사항이 아닌것으로” 봤다(101쪽). 외무부의 우려와 달리 한국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법률국장 말 가운데 다음이 주목된다. “확정적인 증거가 많지않은 상황하에서 김현희는 산증인(LIVING EVIDENCE)로서의 가치가 계속 인정됨”(100쪽). 이는 김현희 사면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그만큼 사건에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일러준다.

김현희 사면, 충격 받은 항공기구 의장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회 의장은 김현희 특별사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회 의장은 김현희 특별사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국제민간항공기구 최고 책임자는 면담 때 출장 중이었다. 몬트리올 주재 총영사는 며칠 뒤 항공기구 이사회 의장을 찾아갔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가. 자신은 금번 해외 여행중 방콕에서 김현희 사면보도를 듣고 “충격(SHOCK)”을 받았음(현지 신문보도들을 스크랩하고 있었음). 나. 자신은 87년당시 아국대표단의 요청에 따라 ICAO 이사회로 하여금 858기 추락관련 강력한 비난결의를 채택하도록 한바 있으며, … 사면은 이러한 ICAO 기본정책에 “나쁜영향(JEPORDIZE)”을 주지않을까 우려하는 바임”(104쪽).

이는 위의 사무총장 및 법률국장과는 매우 다른 반응이다. 물론 의장도 “대통령의 사면권은 주권국의 권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사형 언도후 얼마 않되어 감형이 아닌 전면 사면한 것은 선뜻 납득키 어려우며 동 규정[몬트리올 협약]에 좋지않은 선례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리하여 의장은 사면 관련된 구체적 내용을 서면으로 알려주라고 요청한다.

외무부의 연락을 받은 법무부는 답변을 보내오고,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감형을 택하여 교도소에 단독으로 수용하는 경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검거 당시에도 자살을 기도한 전력이 있음에 비추어 자해등 신변에 위해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농후 … 북한에 의하여 신변상의 위해가 가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기관의 특별관리아래두고자 특별사면의 방법을 취하게 된 것임”(118쪽).

그런데 외무부는 항공기구 의장 요청에 당혹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몬트리올 협약에 따른] 동법적 처리와는 다른 차원인 국가원수의 사면을 반드시 통보할 의무가 있는것은 아니라고 해석 … 따라서 아국이 김현희의 사면내용을 ICAO에 서면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나, 귀직 판단으로 서면 통보가 필요할 경우에는 백지에 상기 1항 내용만을 작성하여 (non-paper 형식) 전달하기 바랍니다”(113쪽).

몬트리올 주재 총영사는 의장을 다시 만나기 전 법률국장을 면담하는데, 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현희가] 무죄(INNOCENT)가 되는것도 아닌만큼, 한국정부 조치에 대해 법적으로 별도의 이견이 없다는 당초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KOTAITE 의장의 생각은 법률적인것 보다 정치적인 관점인듯하며, 사견임을 전제(OFF THE RECORD), 자기는 의장과 인식을 달리한다고 분명히 함”(119쪽).

또한 그는 서면 통보 관련해서 의장이 “아직도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나 시일이 지나면 당초 당혹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만큼 재요청이 있을때까지 그대로 두는것도” 괜찮겠다고 덧붙인다.

국제항공조종사협회, 사면에 비판적

국제항공조종사협회(IFALPA) 회장도 김현희 사면에 비판적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국제항공조종사협회(IFALPA) 회장도 김현희 사면에 비판적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편, 국제항공조종사협회(IFALPA) 대표도 항공기구 의장과 같이 사면에 비판적이었다. “테러범을 처벌하지 않고 놓아준 [한국] 정부의 결정에 굉장히 고민하게 됩니다(greatly distressed). … 완전한 사면은 미래 테러범들에게 유인책(incentive)을 줄 수 있으며 죄 없는 희생자 가족들의 감정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입니”"(122쪽).

어떻게 보면, 정부보다는 국제기구가 가족들을 더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가족들은 호소문 등을 통해 사형을 요구했었다. “살인범 김현희는 공개 재판을 하여 극형에 처하여야 할 것이다”(2016070044, 11쪽). “살인마 김현희를 하루속히 공개재판하여 사형에 처하십시오”(21쪽).

아울러 김현희가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했다는 소식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올림픽 반대의 목적으로 115명을 참혹하게 희생시킨 장본인으로 이번 올림픽 개회식에 위장시켜까지 관람시키면서 우리 유족에게 관람권 1매는 커녕 위로의 전문 하나 없었다함은 참으로 슬픔을 금할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과 유족에 뜻에 따라 공개재판할 것을 호소합니다”(16쪽).

이상으로 올해 공개된 문서의 주요 내용을 살펴봤다. 이번 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된 것은, KAL858기가 사라지고 수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외교 문서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에도 나와 있다.

예컨대, 2007년 KAL858기 가족회가 행정 소송으로 얻어낸 검찰 수사 기록이다. 사건 당시 조사단 관계자는 수색단이 철수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항공기 사고조사 책임은 [한국이 아니라] 항공기추락 발생국가에 있기 때문에 … 그런 도중에 항공기 폭파범이 잡혔다는 연락을 듣고, 과거 소련해역에 추락한 칼기의 인양을 위하여 수색을 열심히 했으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도 그러한 상태일 것으로 생각하고 철수”(KAL858기 사건 검찰 수사 기록, 490쪽).

그리고 조사에 참여했던 교통부 관계자에 따르면, “교통부로서는 동사건 발생직후 실무사고조사반을 편성하여 항공기 사고측면에서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김현희의 검거로 테러폭발사건임이 확인됨에 따라 더이상의 조사는 중지”했다(4,130쪽).

2021년의 고민

수색/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는, 위에서 알 수 있듯 김현희의 존재였다. 이 김현희는 사형 확정 뒤 사면되고, 몇 달 뒤 정부는 재수색을 한다. 이번 문서로 비교적 새롭게 확인된 부분이다. 바로 1990년 11월, 재수색이 있었다. 이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보도 역시 검색 결과 <매일경제>가 유일하다(1990년 11월 2일).

이 수색의 실질적 주체는 대한항공이었다. 김현희 자백으로 사고 원인이 밝혀졌으므로 대한항공은 “하등의 경제성이 없는 기체의 인양을 지양”한다고 했다. 그렇게 경제성을 따진 결과 오늘날 어떻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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