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이번 문서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1990년에 있었던 버마(미얀마) 현지 수색이다. 왜냐하면 이는 2021년의 상황을 어느 정도 떠올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2월 현지 조사를 하려 했다(그런데 버마의 쿠데타로 계획을 연기했다고 한다).
1990년 3월 그 유명한 올림픽 표식이 있는 KAL기 잔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2개월 뒤 서울로 옮겨진다(진위 논란에 대해서는 박강성주, 『눈 오는 날의 무지개: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비밀문서』, 218∼219쪽). 그 후속조치로 대한항공은 “잔해 추가 인양을 위해 … 재수색 작업을 수행코자 한다”고 교통부에 알려왔다(2016070044, 128쪽).
교통부는 1990년 5월 16일 외무부(현 외교부)와 안기부에 인양작업 관련 공문을 보낸다. 이에 따르면 인양 대상은 “유골, 유품 및 항공기 잔해”였다(129쪽). 작업 기간은 “약10일간(’90.5.27이후 조속한 시일내 출발)” 예정이었다.
수색, 1990년과 2021년
작년 1월 어느 방송사가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를 촬영해왔는데, 정부가 늦게나마 수색을 추진했다. 외교부는 현지 조사 관련해 2021년 1월 22일∼26일 입찰 공고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조사단은 “확인된 기체 … 확인이 분명치 않은 물체에 대해 동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리되어 있는’ 잔해물과 부품 회수” 등의 작업을 한다(“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 수색·탐사 및 기체 확인 용역” 과업지시서, 5쪽). 시작 날짜는 계약 뒤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로 되어 있다(9쪽).
1990년 수색에서 배는 버마에서 빌리려 했는데 다음과 같은 모형이 요구됐다. “모선 : 선복량 90t급 이상의 TRAWL선으로서, # SONAR[소나], RADAR[레이다], SSB 장비를 장착하고, # 220V 전원공급이 가능한 선박”(2016070044, 130쪽).
이 큰 배에 딸린 “자선”의 경우 “220V 전원공급이 가능한 선박으로서, # DIVER(6명) 활동 및 DIVER용 장비 선적이 가능한 소형 선박”이어야 했다. 내가 알기로 “”TRAWL[트롤]선은 보통 저인망 어선이라고 하며, “SSB[Single sideband]”는 해상에서 쓰이는 선박용 통신장비라 하겠다.
새로운 수색에서도 처음에는 버마 배를 이용하려 했고, 시기는 2020년 11월로 이야기됐다. 그러나 그곳의 “배를 쓸 수가 없다”고 뒤늦게 답변이 와 계획이 무산된다(“4·16재단이 재난 참사 피해자를 만나다 - KAL858기 실종사건 3편”, 5쪽). 그래서 실시된 입찰 공고에 따르면, 배는 “2,500톤 이상”급을 적절한 규모로 봤다(제안요청서, 11쪽). 그리고 “30인(선원 등 업체측 승선 인원 제외) 이상”의 생활이 가능한 선박으로 SWL(안전작업하중) 10톤급 크레인 등의 시설이 있어야 했다(과업지시서, 6쪽). 아울러 배는 “Decompression Chamber[감압실]” 등이 포함된 잠수 장비와, “Side Scan Sonar(SSS) … Remotely Operated Vehicle(ROV)” 등의 탐사 장비를 갖춰야 했다. 이 가운데 ROV는 ‘로봇 팔’이 달린 원격조종 잠수정으로, 바닷속 탐사·인양 과정에서 잠수사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우기가 끝나면”
다시 1990년으로 돌아가자면, 조사단은 6월 12일∼29일에 작업을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 안전관리실에서 쓴 보고서를 보면, 그때 인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작업은 이후에 진행될 인양을 위한 예비조사 성격을 지녔던 듯하다.
그리하여 현지에서 6월 26일 배와 관련된 계약이 맺어진다. 일본 시즈오카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선박으로, 계약 주체는 버마의 수산청과 한국의 대한항공이었다(2016070044, 145∼146쪽). 기간은 11월 1일∼30일 사이 예정되었고, “[원문은 한자] 대한항공 인양작업팀장의 지시”에 따라 작업이 진행되도록 했다(143∼144쪽).
그런데 가장 중요한 보고서의 결론 및 건의사항 부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다. 어찌됐든 계약서와 함께 대한항공이 쓴 편지도 첨부되어 있는데, 다음 내용이 주목된다. “우기가 끝나면(WHEN MONSOON IS OVER), 인양 계획을 실행하고자 합니다”(154쪽). 버마는 보통 5월부터 10월까지가 우기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작업 기간이 11월로 잡혔던 듯하다.
올해 연기된 수색 역시, 아무리 빨라도 11월에야 이루어질 듯싶다. 우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려되는 점이 있는데 11월 또는 그 이후의 경우, 시기상 내년 3월 대선과 가깝다. 어렵게 계획된 수색이 혹시 있을지 모를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그리고 입찰 결과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업체가 선정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계약서까지 작성됐는지 모르겠으나, 이 업체는 “준비점검팀(정부 대표단) 지휘·감독” 아래 동체 확인 작업을 하게 된다(과업지시서, 4쪽).
‘정부·대한항공 이미지’가 과거 수색의 첫째 목적
1990년 작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8월 ‘인양작업 실천 계획서’를 만든다(내용 가운데 조사단의 구성과 비용 등은 빠져 있다). 첫 번째 목적은 다음과 같다. “[원문은 한자] 정부및 대한항공의 대 국민 이미지 손상을 방지”(2016070044, 171쪽). 이 문구 뒤에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한 말이 나와 있긴 하지만, 정부와 회사의 이미지가 수색의 최우선 고려사항이었다는 점은 고민이 필요하다.
구체적 방침은 모두 여섯 가지로 첫 번째는 다음과 같다. “[원문은 한자] 사고의 원인이 이미 규명된 현시점에서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는 하등의 경제성이 없는 기체의 인양은 지양하고 인양대상물을 유골 및 유품에 국한한다.”
사고 원인이 밝혀졌다는 대목이 주목된다.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적은 양의, 그것도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된 잔해만으로 어떻게 원인이 규명됐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정부의 공식 결과에 따른 논리다. “다행히도 “범인”[김현희]이 잡히면서 사고기 폭발의 결정적인 단서가 규명”됐다는 얘기다(18쪽). 그러므로 보통 조사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잔해 인양은 “하등의 경제성이 없는” 것이 된다.
“하등의 경제성이 없는 기체의 인양”
이런 관점에서 보면 두 번째 방침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원문은 한자] 최소인원으로 최단기간내에 수행함을 원칙으로 하며, 현지 여건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171쪽). 경제성이 없는 작업이기에 적은 인원으로 빨리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대한항공과 정부가 재수색에 나섰던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봤듯, 그때 작업은 뚜렷한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어떻든 작업은 예정대로 11월에 이루어졌다. “선발대 2명에 이어 … 13명(유족 2명, 간호원 1명, 다이버 6명 포함) … 총15명이” 조사 현장으로 떠난다(235쪽). 1990년 11월 12일 문서는 수색 상황을 전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아무런 잔해를 발견치 못하였다”(236쪽).
결국 11월 16일 작업이 끝났는데, “인양작업팀은 … 15일간 계속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수색지역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이유등으로 더 이상의 수색작업을 벌이더라도 요행이 아니고는 기체 잔해를 찾을 확율이 거의 희박하다는 판단에 따라 작업을 종료키로 결정하였다”(237쪽).
이 결과는 대한항공과 정부로서는 크게 나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인양작업 계획서에 나왔듯, 대한항공과 정부 ‘이미지’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재수색에 나선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등의 경제성이 없는 기체의 인양”은 그렇게 없던 일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