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전 중국대사가 통일부 장관에 내정되자마자 지난 6월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비밀접촉을 가졌다는 <경향신문>보도가 터져나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다음 수순은 공식적인 남북 고위급회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경향신문>은 대북 소식통을 인용 “5월 남북간 비밀접촉 공개와 예비군 훈련장 표적지 사건이 불거져 남북관계가 충돌 직전의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것을 사실상 류 내정자가 개인적인 대북 라인을 동원해 막았다”며 “국방위원회 대신 통일전선부 라인을 통했고 상대는 통전부 2인자인 원동연 부부장(64, 차관급)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비밀접촉 장소는 베이징이며, 시점은 6월 9일쯤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류우익 내정자측 관계자는 1일 “내정자가 주중 대사직을 마치고 지난 5월 7일 귀국했다”며 “귀국한 이후 현재까지 출국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지난 6월 1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대변인 대답 형식으로 남북간 비밀접촉을 폭로한 것은 이른바 ‘김부자 표적지’ 사건이 발화점이 됐으며, 이같은 남북간 대치 상황이 일촉즉발에 이르렀을 6월에 남측 고위 인사가 방북해 북측 고위 인사를 만난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북측은 6월 29일 ‘백골부대 구호’ 사건이 발생하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이례적으로 청와대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그에(표적지 사건에) 대해 남측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으며 ‘관할 부대들에 해당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우리 측에 사실상 사죄의 뜻을 표시해왔다”고 명기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사죄’를 해놓고 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북측이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풀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31일 “남북 간에 물밑접촉을 통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문구 조율을 마쳤고, 남북 장관급회담 같은 고위급회담을 거쳐 남북관계가 정상화 될 것이라고 들었다”며 “현실적으로 정상회담 추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이지만 이마저도 남측에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북측이 폭로해 알려진 지난 5월 9일부터의 남북 비밀접촉에서 양측은 ‘지난날 발생한 비극적 사건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상호 노력하며,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가족과 희생자들에게 애도와 유감을 표명한다’는 선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매듭짓기로 합의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그러나 보도 당시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천안함.연평도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북에서 거부해서 결렬됐다”며 이같은 합의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

남북간에 최대 걸림돌인 천안함.연평도 문제가 큰 틀에서 지난 5월 합의 수준 언저리에서 물밑 합의됐다면 남는 절차는 공개적 남북회담이다.

실제로 최근 북측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판이 사라졌고, 남측도 서해상으로 넘어온 북측 어민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돌려보내는 등 남북간 물밑 조율의 흔적이 나타났으며,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 비핵화회담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이 외에도 민간단체의 대북 밀가루지원 허용과 적십자사를 통한 우리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한나라당에서 현인택 장관 교체불가피론이 피어나온 끝에 류우익 전 중국대사가 통일부 장관에 내정됐다.

또한 워싱턴에서의 김계관-보즈워스 북미 고위급회담을 비롯해 최근 일련의 북-중, 북-러 정상회담 등 대외적 기류도 남북간 관계정상화를 떠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언제 어떤 형식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개최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셈이라는 관측이다.

5.24조치와 금강산관광 문제 등으로 꼬여있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실무회담 수준의 남북협의로는 해결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지난 2월 실무협의 과정에서 실패로 돌아간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먼저 열어야 할 것이라는 해석과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정치적으로 돌파해야 할 것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31일 통일부 기자들과의 첫 대면에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할 생각”이라면서도 “다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유연성을 낼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리를 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우리가 국제정세와 국민들의 기대, 이런 것들을 종합 판단해서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통일부 본연의 역할은 충실히 할 생각”이라면서 러-북-남 가스관 연결 문제에 대해 “남북관계를 잇는 인프라가 남한이나 북한에 공히 득이 되는 일이라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향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에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히 남아있다.

류 내정자가 ‘대북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현인택 장관도 이례적으로 현직에서 곧바로 대통령 통일특보로 발탁되는 등 기존의 대북정책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다.

설사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더라도 지금처럼 남북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선 천안함 사과' 등 수순이나 내용을 둘러싸고 얼마든지 판이 흔들리거나 깨질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류우익 내정자가 ‘원칙’과 ‘유연성’ 사이에서 어디에 방점을 찍을 지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어떻게 대북정책을 마무리지을 지에 따라 남북 고위급회담 성사의 성패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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