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장관이 결국 교체되었다. 그런데 통일부장관 교체를 둘러싸고 희한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그간 정부 당국자는 현인택 통일장관 교체 얘기만 나오면 북측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버텨왔다. 이는 이명박(MB)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일관하게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즉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주의인데, 이 정책을 이끌어온 현 장관을 교체하면 북측에 대결에서 대화로 선회하는 듯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보다 장관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투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30일, MB는 류우익 전 주중대사를 통일부 장관에 내정하고 일부 개각을 단행했다.

마침 29일 야 4당 소속의원 99명의 국회의원이 현인택 장관 해임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30일에는 통일단체들이 현 장관 경질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통상 MB는 개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또 무언가에 밀려서 장관을 바꾸는 일은 없다고 공언해 왔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현 장관 교체설이 도는 가운데 야당에서 해임결의안을 제출하고 또 통일관련 단체에서 경질 요구 집회를 열자, 일각에서 저러다가 오기 있는 MB가 통일장관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꿨다. MB의 인사스타일을 고려하면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보수의 아이콘’ 현 장관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래도 역시 MB는 MB다. 교체 이전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홍 대표가 통일장관 교체를 건의하고 MB가 이를 받아들이는 연출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외부의 힘에 밀려서 교체하는 게 아니라 여권의 바람에 의해 순리적으로 교체한다는 모양을 갖춘 것이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가관인 것은 그 다음이다. 현 장관을 장관직에서 해임하면서 ‘대통령 통일정책특보’로 임명한 것이다. 아마 MB는 마지막까지 현 장관을 외부 힘에 밀려서 후퇴시키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교체가 되더라도 ‘특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옆에 있게 되니 건재를 과시하는 게 된다. 필요에 따라 자리만 바꾼 셈이라는 것이다. 참 희한한 셈법이다.

희한한 일은 계속된다. 청문회가 남아 있는데도 언론이나 야당도 류우익 내정자를 그리 괴롭히지 않는다. 현 장관이 바뀌었으니 누가돼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당장 남북관계 변화를 점친다. 류 내정자에 대해 검증할 게 많을 텐데도 그렇다. 류 내정자는 31일 첫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할 생각”이라면서도 “다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유연성을 낼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리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도 희한한 경우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둥근 사각형’이라는 말처럼 형용모순일 뿐이다.

최근 한 월간지에 따르면, MB 정부 관계자가 “북한을 1년 6개월만 누르면 무릎 꿇고 나올 줄 알았다”고 했다가 그게 안 되자 “다시 3년을 누르면 붕괴할 줄 알았다”고 밝혔다. 이는 희한한 정도가 아니라 불행이다. 지금 어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계에 보란 듯이 러시아와 중국을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 게다가 내년 2012년에는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라며 널리 알리고 있다. 이런 판에 대북 문외한이 윗자리에 앉아 북한문제를 다루니 남북관계가 잘 풀릴 리가 없다. 이 같은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본질은 놔두고 주변만 건드리기 때문이다. MB 정부의 3년 6개월 간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MB 최측근’, ‘돌아온 실세’, ‘왕장관’으로 불릴 만큼의 류 내정자니 아예 화끈하게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밝히고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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